사람칼럼

[엄상익 칼럼] 지도자의 품격, 강영훈 전 총리한테 배운다

왼쪽부터 이한동 강영훈 정원식 전 총리

나는 가끔 친구들로부터 생생한 정보를 얻고, 거기서 깊은 의미를 발견하기도 한다. 소년 시절부터 친하게 지낸 두 친구가 우연히 강영훈 국무총리의 보좌관을 맡았던 적이 있다. 어느 날 개인적으로 만난 편안한 자리에서 그중 한 친구가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분이 총리직을 마치고 원래 살던 집으로 돌아가셨는데, 그 집이 오래된 낡은 적산가옥이었어. 6·25전쟁 전에 구한 집인데, 기와가 무너져 내릴 것 같아 수리 없이는 도저히 살 수 없는 상태였지. 그런데 총리께서 돈이 없으신 거야. 그래서 보좌관이었던 내가 은행에 대출을 받으러 갔지. 그런데 담당 대리가 집을 담보로 잡아야 하는데, 건물도 땅도 담보 가치가 없다고 하더라고.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내가 보증을 섰지. 내 동생도 보증은 안 서줄 사람인데 말이야. 강 총리를 모셔보니 정말 청빈한 분이셨어.”

지도자의 본모습은 가까운 사람의 입을 통해 자연스럽게 흘러나오기 마련이다. 그는 말을 이어갔다.

“한번은 총리가 여름휴가를 저도라는 섬으로 가셨는데 내가 수행했지. 미리 예산을 배정받고 보고를 드렸어. 총리가 되면 휴가지 근처 부대나 기관에 금일봉을 주는 관례가 있거든. 개인 돈으로 줄 수는 없잖아? 원래 돈도 없으신 분이고. 그런데 총리께서는 ‘내 돈을 쓰면 되지, 예산 받을 필요 없어’라고 하시더라고. 그래도 보좌관인 내가 우겨서 예산을 만들고 집행했지. 강 총리는 예산을 써도 남은 돈은 전부 국고에 반납하시는 분이셨어.”

청렴한 공직자의 전형적인 모습이었다. 나는 그의 말을 조용히 들었다.

“어느 날, 총리가 아는 차관이 심장마비로 갑자기 돌아가셨어. 총리께서 그걸 안타깝게 여기시며 막 우셨어. 그렇게 울음이 많으면서도, 체육부 장관이 북한에 가서 술자리에서 뱀장사 쇼를 했다는 얘기를 듣고는 화가 나셔서 총리실 밖까지 들리도록 소리를 지르시기도 하더라고. 또 내가 북한에 수행해 갔을 때 총리의 진면목을 봤어. 총리는 이북 출신이신데, 북한 당국이 밤에 몰래 총리의 동생을 데려왔더라고. 이산가족이 많은데 자신만 특혜를 받을 수 없다며 단호히 거절하시더라고. 속으론 얼마나 만나고 싶으셨겠어.”

그 자리에 있던 다른 친구, 역시 보좌관을 지낸 이가 말을 보탰다.

“내가 해외 공관에 있을 때 총리께서 그곳에 오셨어. 그런데 행색이 너무 초라하신 거야. 그래서 내가 음식점으로 모시고 가서 설렁탕을 사드렸지. 그런 분이야.”

보좌관을 지낸 두 친구는 그 무렵 강 총리의 장례식을 도맡아 정성껏 치르고 있었다. 친구들을 통해 나는 좋은 지도자의 진면목을 보게 된 셈이었다.

대통령 선거를 앞둔 지금, 이 나라는 좋은 지도자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여야를 막론하고 대통령 후보들을 보면 괜찮은 인물들이 많다. 힘든 환경을 뚫고 자라 북향의 바람을 견디며 거목이 된 사람들이 눈에 띈다. 아직 젊은 후보자들도 시간이 흐르면 충분히 숙성되어 좋은 지도자가 될 가능성이 보인다. 인도의 간디나 명치유신을 이끈 일본의 사이고 다카모리처럼 말이다.

내가 생각하는 좋은 지도자는 구약 성경의 모세다. 그는 노예근성을 버리지 못한 대중의 변덕을 인내하며 민족을 이끌었다. 시기와 반역은 물론, 여성 스캔들을 들추는 측근의 모략도 있었다. 그럼에도 그는 마침내 민족을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까지 인도하고, 자신의 역할은 거기서 멈췄다. 벳브올 골짜기에서 사라진 그의 무덤은 지금도 찾지 못한다고 한다. 그런 모습이 바로 위대한 지도자의 전형 아닐까.

지금 이 나라에서 그런 지도자가 나올 수 있을까. 솔직히 말해 우리는 지도자를 길러내지 못하는 풍토에 살고 있는 것 같다. 뉴스를 보거나 청문회를 보면 시기심 어린 검은 연기만 자욱하다. 지도자가 되려는 사람에게 침을 뱉고 돌을 던지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대중은 지도자가 구름 위에서 떨어져 시장의 진흙탕에서 허우적대는 모습을 즐기는 듯하다. 인물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 정치 풍토, 인물이란 만들어지는 것인데, 웬만한 인물이 나타나도 만신창이가 되고 만다.

국민은 지도자가 될 사람을 길러내는 기름진 땅이 되어야 한다. 단점보다는 장점을 보아야 한다. 장점이 더 길기 때문이다. 더러운 흙이 묻은 뿌리보다는 피어난 꽃을 바라보아야 한다. 성경 속 어느 지도자도 흠이 없는 사람은 없었다. 우리나라에도 정신까지 끌어올릴 수 있는, 모세 같은 지도자가 나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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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상익

변호사,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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