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상익 칼럼] 1960과 2016, 그리고 2025: 다시 묻는 민주주의

내가 일곱 살 때였다. 어른들 사이에서 ‘부정선거’라는 말과 함께 ‘데모’라는 소리가 허공에 떠돌았다. 나는 그 의미를 알 수 없었다. 동네 아이들과 함께 신설동 로터리로 데모 구경을 나갔다. 시위대의 맨 앞에는 찦차 한 대가 천천히 움직이고 있었다. 본넷 위에는 하얀 머리끈을 두른 남자가 도끼를 들고 서 있었다. 무서워 보였다. 시위대와 함께 붉은 페인트를 칠한 소방차에 사람들이 매달린 채 동대문 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시간은 그곳에서 멈춰선 듯했고, 그 장면은 나의 기억 속에 선명하게 각인되었다. 그것이 독재와 부정선거에 맞서는 민중의 혁명이었다는 사실을 나는 알지 못했다. 얼마 후, 어른들은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총을 든 군인들이 한강 다리를 건너왔다는 것이다. 어른들의 얼굴엔 두려움이 섞여 있는 듯했다.
그로부터 56년이 흐른 2016년 11월 15일경이었다. 나는 한 달에 한 번씩 열리는 고교 선배들의 모임에 나갔다. 그중 한 선배가 이런 말을 꺼냈다.
“아들이 교수인데, 제자들이 촛불시위에 가자고 해서 따라갔대. 4.19 혁명 땐 대학생이던 우리가 몸으로 저항했는데, 요즘 애들은 손가락으로 하나 봐. SNS 하느라 바쁘더라는 거야. 백만 명이 모인 촛불시위는 외국에서도 아주 신기하게 본대. 쓰레기까지 치우고 가는 평화시위니까 말이지.”
그 선배는 4.19 혁명 당시 서울법대생으로 직접 시위에 참여했던 경험을 들려주었다.
“4.19 때도 촛불집회처럼 시위대의 마지막 집결지는 내자동이었어. 우리가 거기 모이니까 경무대에서 발포 명령이 떨어졌지. 총소리에 시위대는 혼비백산이었어. 남자들은 대부분 골목으로 숨거나 땅에 엎드려 기었는데, 그때 나는 놀라운 여성을 봤어. 숙명여대 대표로 나온 여학생이었는데, ‘대통령은 하야하라’는 피켓을 들고 총알이 날아드는 와중에도 꼿꼿이 경무대를 향해 걸어가더라고. 결국 그 자리에서 죽었지. 정말 대단한 마지막 모습이었어. 위기 상황에서는 여성들이 훨씬 강해.”
그 순간 짜릿한 감동이 마음속 깊은 곳에서 너울처럼 일었다. 어떻게 그런 용기가 있을 수 있을까. 그런 분들이야말로 이 땅의 혁명을 일으키고 민주화를 이끈 주인공들이 아니었을까.
내가 어렸던 시절은 시대 자체가 가난했지만, 그 속에서도 정의를 위해 목숨을 바치고, 이웃의 고통에 함께 눈물 흘리던 어른들이 있었다.
내가 초등학교 5학년이던 1964년경, 아버지가 사진기자로 일하시던 조선일보에 한 가족이 가난 때문에 자살한 사건이 보도되었다. 그 기사를 보고 함석헌 옹이 ‘3천만 앞에 부르짖는 말씀’이라는 제목으로 이런 글을 기고했다.

“여러분, 인정이 깊은 여러분! 한 가족이 먹을 게 없어 목숨을 끊었는데, 나 혼자만 밥을 먹고 있는 게 너무 미워 차마 그대로 있을 수가 없습니다. 죽은 아이의 공책에 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아버지가 먹고 싶은 빵을 사오겠지. 엄마는 왜 안 오나? 보고 싶어. 아가가 자꾸만 울어.’ 저는 연필을 손에 쥐고 그 말을 공책에 써내려간 아이의 손가락이 보이는 것 같아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아버지는 독이 든 빵을 사 와서 아이들에게 먹이고, 스스로 목을 매어 세상을 떠났습니다. 지금 제 가슴은 쇠꼬챙이로 긁는 것처럼 아픕니다. 저는 오늘부터 며칠간 밥을 먹지 않으려 합니다. 그 밥을 그들 앞에 놓고, 그 가족의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싶습니다.”
당시 63세였던 함석헌 옹은 그 글을 통해 국민들의 마음을 하나로 모았다. 가난했지만, 이웃의 아픔에 함께 아파하는 시대였다. 당시 지도자가 된 박정희 대통령은 ‘잘 살아보세’라는 깃발을 들고 굶어 죽는 사람이 없는 세상을 만들고자 했다. 그리고 이 나라는 결국 민주화에도 성공했다. 하지만 우리는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인가’를 배우지 못했다. 예수는 “인간은 빵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라고 했다. 국가는 더더욱 그러해야 하지 않을까. 민주주의란 다름을 인정하고, 심지어는 나를 증오하는 사람들과도 공존해야 하는 제도라는 것을 우리는 아직 잘 알지 못한다.
세월은 흘렀고, 내가 일흔을 넘긴 2025년. 사회 원로인 안병직 교수는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국민정신의 성숙도에 문제가 있어요. 우리가 너무 허겁지겁 달려온 탓에 국가의 정체성에 대한 성찰이 부족했습니다. 지금의 여당과 야당은 서로 꿈꾸는 나라가 다릅니다. 앞으로 어떤 국가를 세워야 할 것인지에 대한 공개적인 토론이 꼭 필요해요. 선진국다운 더 나은 국가를 만들기 위한 발전적인 싸움이 이뤄져야죠.”
요즘 다가오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사회적 열기가 뜨겁다. 어제 한 방송 화면에서 한동훈 후보가 “막가파들과 진흙탕의 개싸움에서 이기겠습니다!”라고 외치는 장면을 보았다. 그는 시대교체를 외치는 미래 정치의 주인공처럼 보였다. 나는 그런 사람들에게 4.19 혁명 당시 총을 향해 꼿꼿이 걸어가던 숙명여대 대표 여학생을 소개하고 싶다. 그리고 가난한 이웃의 아픔 앞에서 눈물 흘리며 사랑을 외쳤던 함석헌 옹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다가오는 선거가 단지 권력 투쟁이 아니라, 진정한 민주주의를 확인하고 함께 즐기는 축제가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