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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산책] ‘빽 없는 그대에게’…조용연 전 치안감의 자존과 연대의 기록

<빽 없는 그대에게> 2판 1쇄(2018.1) 표지는 파란색 바탕에 과녁이 있어 이보다 세련돼 보인다. 이건 1판 1쇄 본

자전거 여행작가 조용연의 체험적 통찰, 조직과 인간에 던지는 질문

“갈등 속 조직에서 품격 있는 생존법은 무엇인가?”
‘빽’ 없는 사람에게 세상은 매몰차다. 보이지 않는 배경, 줄을 타야 편안한 자리를 얻는 현실 속에서, 누군가는 끊임없이 의심받고 견뎌야 한다. 조용연 전 치안감의 <빽 없는 그대에게 – 빽과 자존에 관한 다큐에세이>(비엘프레스, 2016년 11월 21일 출간)는 바로 그 “빽 없는” 이들에게 바치는 진심 어린 통찰이자 위로다.

이 책은 경찰공무원으로 33년을 몸담았던 저자가 경찰조직 안팎에서 겪은 수많은 사건, 그리고 그 속에서 겪은 인간적인 기쁨과 상처, 갈등과 성찰을 바탕으로 한 체험적 기록이다. 단순한 회고록이 아니다. 이 책은 ‘빽’이라는 단어의 사회문화적 상징부터, ‘자존’과 ‘인간관계’라는 보편적 주제에 이르기까지, 누구나 자신의 삶과 연결지을 수 있는 서사의 구조를 갖추고 있다.

‘빽’의 사전적 의미 너머를 읽다

‘빽’은 영어 단어 ‘back’에서 유래한 한국식 표현이다. 일반적으로는 ‘배경’, ‘연줄’, ‘후원자’를 의미하며, 누군가의 성공에 있어 ‘눈에 보이지 않지만 실질적으로 존재하는 권력의 힘’을 뜻한다. 저자는 이 익숙하고도 불편한 단어를 정면으로 응시한다. ‘빽’ 없이 조직에 들어와 살아남은 사람으로서, 때론 외롭고 억울했으며, 때론 그 ‘빽’이 아닌 자신의 실력과 자존으로 인정받고 싶었던 마음을 담담히 풀어놓는다.

조용연은 말한다. 빽이 없다는 이유로 ‘될 일도 안 되는’ 현실은 슬프지만, 그 슬픔을 자존으로 이겨내야만 했다고. 그리고 자존이란 체면이나 허영이 아니라, 꾸준한 성실성과 관계 속 신뢰에서 쌓인다는 점을 독자들에게 일깨운다.

경찰 조직, 선후배 관계 속 인간의 민낯

이 책의 백미는 조용연 전 치안감이 직접 겪은 조직 내부의 리얼한 이야기들이다. 치안감까지 올라가는 동안 그가 겪은 상명하복의 위계문화, 선후배 간의 오해와 화해, 리더와 부하의 관계 설정 등이 진솔하게 그려진다. 특히 자신보다 윗선에 서 있는 이들에 대한 관찰, 아랫사람을 배려하는 리더십, 그리고 불의에 맞서며 조직의 논리를 넘어 인간의 도리를 지키려 한 순간들은 독자로 하여금 깊은 울림을 안겨준다.

이러한 맥락에서, 이 책은 단지 경찰이라는 특수조직을 다룬 책이 아니다. 병원, 언론, 기업, 학교 등 다양한 조직 속에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해당하는 ‘관계의 윤리’와 ‘내면의 품격’을 다룬다. 특히 공직자, 중간 관리자, 조직의 막내나 입사 1~3년차 젊은이들이 읽는다면, 실질적인 인간관계의 지혜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진정성, 그리고 묵직한 인생 조언

그는 2006년 북경 주재관에서 어느 날 경찰청 보안국장으로 승진 발령받아 경찰청과거사위원회 경찰측 간사위원을 맡았다. 민간위원 간사였던 기자와 저자는 한마디로 ‘죽도 배짱고 잘 맞았다.’ 아마 이런 걸 두고 ‘이심조심’이라고 해도 될 것 같다. 그 20년 인연의 시간 조용연 저자는 여전히 한결같이 솔직하고 소탈하다. 스스로를 미화하지 않고, 감정에만 기대지도 않으며, 적당히 체념하지도 않는다. 대신 그는 자신이 겪은 실패, 후회, 때론 화가 나서 불끈했던 순간까지도 솔직하게 풀어놓는다. 그 정직함이 바로 이 책이 가진 가장 큰 미덕이다.

퇴직 이후 그는 <한국의 강둑길>, <대중가요의 골목길> 등을 집필하며 여행작가이자 문화기획자로 활동 중이다. 최근은 여주 남한강변에 푹 빠져 지낸다. 글쓰기와 자전거 여행, 그리고 강연을 통해 여전히 사회와 소통하며 살아간다. 그는 “퇴직은 끝이 아니라 또 하나의 시작”이라고 한다. 조직 밖의 삶도 또 다른 무대라는 점에서, 이 책은 퇴직을 앞둔 중장년층에게도 특히 유익하다.

또한 전자책(e-book)으로 출간된다면 직장인 독자들, 특히 2030세대 직장인들에게 더욱 가깝게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출퇴근길에 스마트폰으로 읽기 적합한 분량과 문체, 그리고 공감 가는 주제를 갖췄다.

<빽 없는 그대에게>는 화려하지 않다. 하지만 진실하다. 이 책은 조직 속에서 흔들리는 우리 모두에게 말한다. ‘당신이 가진 자존은 누가 만들어준 게 아니라, 당신이 만든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묵묵히 쌓아온 신뢰와 진심이 결국 가장 큰 ‘빽’이 된다는 걸 말이다.

정직하게 살아가는 것의 가치, 품격 있는 인간관계, 그리고 무엇보다 스스로의 삶을 존엄하게 만드는 힘. 그것이 이 책이 던지는 가장 큰 메시지다.

이상기

아시아엔 기자, 전 한국기자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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