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억압을 넘어선 평화의 여정
이슬람권 최초의 여성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시린 에바디 변호사의 자서전 <히잡을 벗고, 나는 평화를 선택했다>(시린 에바디, 아자데 모아베니 지음 황지연 옮김, 황금나침반 2007.6.28)는 이란 현대사의 격동 속에서 여성과 아동의 인권을 지키기 위한 한 여성의 용기 있는 삶을 담아낸 책이다. 이 책은 단순한 회고록을 넘어 억압적인 체제 속에서 존엄성과 정의, 평화를 향해 나아간 치열한 여정을 생생하게 그려낸다.
책은 총 12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흔들리는 테헤란, 나의 유년 시절’부터 ‘평화의 비행’까지 그녀가 경험한 시대적 변화를 담고 있다. 프롤로그는 “신이여, 감사합니다”, 에필로그는 “자유와 저항을 위한 글쓰기”라는 제목으로 시작과 끝을 장식한다. 프롤로그에서 에바디는 자신의 인생이 단지 개인의 기록이 아니라, 억압받는 이란 여성들과 시민 전체의 목소리였음을 고백한다.
[목차]
프롤로그: 신이여, 감사합니다
1장 흔들리는 테헤란, 나의 유년 시절
2장 여대생, 판사, 그리고 혁명의 나날
3장 히잡을 강요당하다
4장 법정 밖으로 쫓겨난 판사
5장 내 딸을 위한 투쟁
6장 인권은 이슬람과 양립할 수 있는가
7장 이란 감옥과의 싸움
8장 우리들의 작은 사무실
9장 소외된 이들을 위한 변론
10장 정부의 감시 아래서
11장 노벨평화상을 받다
12장 평화의 비행
에필로그: 자유와 저항을 위한 글쓰기
이 책은 인권과 민주주의, 여성의 권리에 관심 있는 독자들에게 깊은 울림을 준다. 특히 이란이라는 지역적 맥락을 넘어, 전 세계 독재 체제에서 인권을 위해 싸우는 이들에게도 공감과 영감을 제공한다. 다만, 이란 정치와 종교 체제에 대한 배경 설명이 부족해 일반 독자가 접근하기에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 읽는 내내 연표로 정리해놓았으면 이해하기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 시린 에바디는 1947년 이란 하마단에서 태어나 테헤란대에서 법학을 공부했고, 1975년 이란 최초의 여성 판사로 임명되었다. 하지만 1979년 이슬람 혁명 후 여성이라는 이유로 판사직에서 해임되었고, 이후 변호사와 인권 운동가로 활동해왔다. 2003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했으며, 2009년 만해대상(평화부문)을 수상했다.
영국에 망명 중인 시린 에바디 변호사는 지금도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작년 5월엔 제네바에서 열린 세계 언론 자유의 날 행사에 참석해 ‘코피 아난 만평 용기상’을 수여했고, 올 2월에는 옥스퍼드 유니언에서 이란 여성 인권 문제에 대해 연설했다. 또한 유엔 인권 대표에게 공개 서한을 보내 이란 내 정치범과 여성 활동가들의 상황을 알리고 국제사회의 대응을 촉구했다. 이처럼 에바디는 여전히 이란 인권 운동의 상징적 인물로 세계적 무대에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히잡을 벗고, 나는 평화를 선택했다>는 책을 읽다 보면 독자들은 자연스럽게 그녀가 걸었던 길을 따라가 보고 싶은 마음이 된다. 테헤란의 거리, 그녀가 일했던 법정, 인권 단체의 작은 사무실이 단순한 공간을 넘어 인류 보편의 가치를 실현하려는 뜨거운 장소로 느껴진다. 이 책은 단지 이란의 이야기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인권과 자유를 지키기 위한 메시지로 다가온다.

필자의 시린 에바디 여사와의 인연을 덧붙인다. 시린 에바디 변호사는 2009년 8월 8일 만해평화상 수상(평화부문)을 위해 한국에 두번째로 왔다. 당시 필자는 만해상심사위원으로 그를 추천해 한국 방문을 성사시켰다. 그녀의 반정부 활동으로 영국과 미국 등을 떠돌던 그녀가 한국에 오는 게 만만치 않았다. 이에 대해선 다른 기회에 기록으로 남길 예정이다.
그의 방한을 계기로 필자는 이 책 200권을 출판사에 주문해 ‘아자 초청 2003 노벨평화상 수상 시린 에바디 변호사 특강’ 참석자와 방한 기간 중 만난 정진석 추기경, 봉은사 명진 주지스님, 김성주 MCM 대표, 삼성전자 이인용 홍보실장, 구룡마을주민회, 대한변협 회장단 등에게 선물하시도록 했다. 8월 12일 인제 내린천센터에서 열린 만해상 시상식 뒤 시린 에바디 변호사와 그해 또다른 수상자인 이소선 여사(실천부문)를 만난 조오현 큰스님은 내게 이렇게 말했다. “부처님과 만해 선사께서 올해 무척 기분이 좋으실 것 같아요. 저런 분들이 많이 나오면 좋겠어요.”
당시 세브란스병원에 입원 중이던 김대중 전 대통령 문병을 마치고 백담사로 내려온 시린 에바디 변호사는
자신이 쓴 <히잡을 벗고, 나는 평화를 선택했다> 20여권에 직접 서명을 하며 “이 책을 한국의 리더들이 많이 읽어 이란 상황을 잘 이해하도록 전해달라”고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