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칼럼

착한 사람을 넘어 거듭난 사람으로…예수님이 니고데모에게 주신 답

독일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왼쪽)와 영국의 진화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 니체는 인간의 도덕적 행위 이면에 숨은 자기중심적 동기를 탐구했고, 도킨스는 진화와 유전자의 관점에서 이타적 행동을 설명했다. 두 사상가의 인간 본성에 대한 통찰을 요한복음 3장의 ‘거듭남’과 연결해 형상화했다. AI 생성 합성 이미지.

.잠깐묵상 요한복음 3장…세련된 위선으로부터의 구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요 3:3)

순수한 이타심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그것은 고도로 세련된 이기심에 불과합니다. 타인을 돕는 헌신이나 자기희생조차 우월감의 증명, 죄책감 해소, 혹은 자기만족이 다른 형태로 발현된 것에 불과합니다. 인간은 이기적인 목적을 은밀하게 달성한 뒤 자신의 행위를 선한 것으로 교묘하게 위장합니다. 이것은 인간의 심연에 대한 니체의 신랄한 해부입니다.

리처드 도킨스 역시 비슷한 맥락의 이야기를 합니다. 우리가 숭고하다고 믿는 모성애, 타인을 위한 희생, 이타적인 협력조차도 개인의 도덕적 선택이 아니라 내 안에 있는 유전자가 자신의 복제본을 더 많이 퍼뜨리기 위해 치밀하게 계산한 ‘생존 전략’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이 두 학자의 이야기는 그들의 사상적 의도가 어떻든 간에 인간의 지독한 자기중심성에 대한 섬뜩할 정도의 정확한 통찰을 보여줍니다.

윤리든, 철학이든, 종교든, 교육이든 세상의 모든 시스템은 끝없이 인간을 ‘수정’하려 듭니다. 이기심을 다듬고 자기중심성을 적절하게 조정하려 애씁니다. 그러나 그렇게 한다고 인간의 이기적 본성이 개선될까요? 훈련된 이기심은 세련된 위선자를 만들어낼 뿐입니다.

어쩌면 니고데모도 바로 이 절망적인 벽에 부딪혔던 게 아닐까요? 유대 종교의 정점을 찍은 사람으로서, 율법과 도덕으로 평생 자신을 다듬었지만 결국 벽에 부딪힌 느낌. 그 해결되지 않는 고민을 안고 그는 야심한 밤,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예수님은 그의 윤리, 도덕적으로 부족한 부분을 지적하거나 더 깊은 차원의 수련이나 수양을 요구하지 않으셨습니다. “네가 가진 조건들을 조금만 더 다듬어 보라”고 위로하지도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의 선고는 단호했습니다. “다시 태어나라.”

이는 개선이나 수리에 대한 요구가 아닙니다. 사형 선고입니다. 인간의 죄악된 본성은 완전히 폐기하고 처음부터 다시 창조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종교는 인간의 본성을 다듬어 착한 사람이 되라고 하지만, 예수님은 죽었다가 다시 태어나라고 말씀하십니다. 복음은 타락한 자아를 적당히 달래주는 교양 강좌가 아닙니다. 십자가에서 나를 완전히 죽이고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 오직 그 재창조의 능력만이 우리를 세련된 위선자의 굴레에서 벗어나게 하는 유일한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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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문섭

베이직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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