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시아문화

방글라데시 ‘두르가 푸자’…소녀에게서 여신을 보고, 인류의 평화를 빌다

꽃으로 둘러싸인 어린 여신, 평화를 기원하다. 형형색색의 꽃으로 장식된 제단에 어린 소녀가 두르가 여신을 상징하는 차림으로 앉아 있다. 쿠마리 푸자는 어린 소녀에게서 신성함을 발견하고 생명의 존엄성을 되새기는 힌두교 전통 의식이다.

사원에 소라 나팔 소리가 울려 퍼진다. 꽃과 향 냄새가 경내를 채우고, 화려한 조명 아래 두르가 여신과 사라스와티, 락슈미, 카르티케야, 가네샤의 신상이 모습을 드러낸다. 어린아이부터 노인까지 신도들이 하나둘 모여든다. 두 손을 모으고 고개를 숙인 사람들이 기원하는 것은 자신과 가족의 행복만이 아니다. 나라의 안녕과 인류의 평화도 함께 빈다.

방글라데시 수도 다카의 가을 풍경이다.

10월 16일, 방글라데시 힌두교 공동체의 최대 종교 축제인 ‘샤라디야 두르가 푸자(Sharadiya Durga Puja)’가 시작됐다. 첫날 샤슈티 푸자 의식과 함께 두르가 여신을 맞이한 신도들의 얼굴에는 기쁨이 가득하다.

다카의 다케슈와리 국립사원과 라마크리슈나 미션을 비롯해 전국 곳곳의 사원에서 예배와 의식, 음악 공연이 이어지고 있다. 종교의식이 열리는 공간마다 꽃과 조명이 장식되고, 악기와 소라 나팔 소리가 축제 분위기를 더한다.

악을 물리치는 두르가 여신, 선의 승리를 기리다. 방글라데시 두르가 푸자 축제에 등장한 두르가 여신상. 여러 팔에 무기를 들고 사자와 함께 악을 상징하는 마히샤수라를 물리치는 모습을 형상화했다. 두르가 푸자는 선이 악을 이기는 승리를 기념하며 공동체의 평화와 안녕을 기원하는 힌두교 최대 축제 가운데 하나다.

두르가 푸자는 선이 악을 이기는 승리를 기리는 힌두교의 대표적인 축제다. 신도들에게 두르가 여신은 악에 맞서는 힘과 보호의 상징이다. 축제는 종교적 신앙을 표현하는 시간이면서 가족과 이웃, 공동체가 함께 모이는 자리이기도 하다.

이번 축제에서 특히 눈길을 끄는 의식은 19일 열린 ‘쿠마리 푸자(Kumari Puja)’다.

쿠마리 푸자는 어린 소녀를 두르가 여신의 현신으로 여기고 예를 올리는 의식이다. 신도들은 소녀 앞에 모여 경의를 표하며, 어린 생명 안에 깃든 신성함을 되새긴다. 이들에게 소녀를 존중하는 행위는 인간의 존엄성과 여성에 대한 존경을 표현하는 종교적 실천이기도 하다.

한 소녀를 여신으로 받드는 풍경에는 종교를 넘어 생각해 볼 만한 의미가 담겨 있다. 나이와 지위, 재산이나 권력과 관계없이 인간이 존중받아야 할 존재라는 믿음이다. 축제에 참여한 신도들이 쿠마리 푸자를 인간 존중과 여성의 존엄성을 상징하는 의식으로 받아들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두르가 푸자는 19일 마하 아슈타미 의식에 이어 20일 마하 나바미로 계속됐다. 이 기간 신도들은 금식하고 ‘안잘리(anjali)’라는 의례적 공양을 올리며 가족과 이웃, 국가와 인류의 안녕을 기원한다.

21일은 축제의 마지막 날인 ‘비자야 다샤미(Vijaya Dashami)’다. 두르가 여신상을 물에 보내는 의식과 함께 오후 3시부터 전국 곳곳에서 승리의 행렬이 펼쳐질 예정이다. 여러 날 이어진 축제가 막을 내리는 순간이지만, 신도들에게는 여신의 가르침과 보호에 대한 믿음을 일상으로 가져가는 시간이기도 하다.

올해 축제 규모도 상당하다. 방글라데시 푸자 축하위원회에 따르면 전국에 마련된 푸자 행사장은 3만3851곳에 이른다. 정부는 축제 지원을 위해 5000만 타카를 배정했으며, 축제 기간 특별 경비 대책도 시행하고 있다.

방글라데시는 이슬람교도가 다수를 차지하는 나라다. 그 안에서 힌두교 공동체는 고유한 신앙과 문화를 이어오고 있다. 두르가 푸자는 힌두교 신도들의 종교행사이면서 방글라데시 사회가 오랫동안 간직해 온 문화유산의 일부이기도 하다.

축제에는 힌두교 신도뿐 아니라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들도 함께한다. 서로 다른 신앙을 가진 이들이 이웃의 명절을 축하하고 기쁨을 나누는 모습은 방글라데시가 지향하는 종교적 공존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물론 축제의 풍경만으로 한 사회의 종교적 갈등이 모두 해소됐다고 말할 수는 없다. 종교적 소수자의 안전과 권리, 서로 다른 공동체 사이의 신뢰는 축제가 끝난 뒤에도 지속적으로 지켜나가야 할 가치다. 전국적인 특별 경비 대책 역시 종교행사의 안전이 얼마나 중요한 과제인지를 보여준다.

다카의 사원에서는 오늘도 신도들이 두 손을 모으고 기도한다. 어린 소녀에게서 여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자신이 속한 공동체를 넘어 인류의 안녕을 기원한다.

서로 다른 종교가 함께 살아가는 사회에서 중요한 것은 신앙의 차이를 없애는 일이 아니라 그 차이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는 일일 것이다.

방글라데시의 두르가 푸자가 전하는 메시지도 그와 다르지 않다. 자신이 믿는 신에게 기도하면서 다른 이의 평화도 함께 기원하는 것. 가을 사원에 울려 퍼지는 소라 나팔 소리에는 그러한 염원이 담겨 있다.

방글라데시 수도 다카에서 열린 두르가 푸자 축제에서 어린 소녀가 두르가 여신의 현신을 상징하는 모습으로 단장한 채 앉아 있다. 주변에 모인 힌두교 성직자와 신도들이 인간의 존엄과 여성에 대한 존경을 담은 쿠마리 푸자 의식에 참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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