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균 개인전 ‘사상파고’…산과 물결, 뿌리에 담은 시대의 애도

산은 제자리에 서 있고, 물은 그 아래를 흐른다. 우리가 익숙하게 바라보는 풍경이다. 그러나 산이 무너지고 물이 넘치면 풍경은 순식간에 달라진다. 사람이 살던 터전도, 오랫동안 뿌리를 내렸던 나무도 그 흐름을 피하기 어렵다.
수원을 중심으로 활동해온 이해균 해움미술관 대표가 오는 10월 14일부터 20일까지 서울 인사동 갤러리 나무아트에서 개인전 ‘사상파고’를 연다. 전시에서는 ‘사상파고’ 연작과 함께 나무의 뿌리, 구름, 공동묘지, 문상 가는 길 등을 소재로 한 작품을 선보인다.
화가 이해균의 이번 전시는 그 익숙한 풍경을 다시 바라보게 한다. 산과 바다, 나무를 그려온 그의 화면에서 자연은 생명력을 품은 대상이면서, 인간이 다 알거나 감당할 수 없는 힘으로 다가온다. 물결의 움직임은 산의 굴곡과 이어지고, 땅속의 뿌리는 거친 물살을 연상시킨다. 단단하게 보이는 것 안에도 움직임이 잠재해 있다.
그의 작업을 살펴본 미술평론가 이선영은 평론 ‘단단함이 유동적인 것이 될 때’에서 산과 물, 뿌리와 구름을 관통하는 흐름에 주목했다. 오랫동안 굳어 있던 형태에서도 움직임을 읽어내고, 그 움직임이 인간의 예측과 통제를 벗어날 때 재난으로 다가올 수 있다는 해석이다.
이해균은 국내외의 산과 바다, 나무를 그려왔다. 네팔을 비롯한 오지 여행도 그의 작업 배경을 이룬다. 특정 사건을 곧바로 화면에 옮기는 방식은 아니지만, 그가 바라본 땅과 풍경은 그곳에서 살아온 사람들의 역사와 떨어져 있지 않다.

이번 ‘사상파고’ 연작에서는 물결 같은 움직임이 화면을 가로지른다. 파동이 겹치고 이어지지만, 무엇이 그 움직임을 일으켰는지, 어디에 이르게 될지는 드러나지 않는다. 그 때문에 고요함과 불안이 함께 느껴진다. 관객은 물의 흐름을 보다가 산의 능선을 떠올리고, 다시 그 능선 안에서 흔들리는 기운을 읽게 된다.
이선영은 이러한 풍경을 기후 위기와 재난의 현실에 연결해 읽는다. 산과 물이 제자리를 지킬 때의 아름다움과, 그 경계가 무너졌을 때의 참혹함이 같은 자연 안에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의 평론에서 이해균의 산은 오랜 시간의 흔적을 간직한 형상이면서, 역사 속 희생과 억울한 죽음을 품은 땅으로도 해석된다.

황토로 그린 ‘아우성’은 그 시선을 더욱 선명하게 한다. 산세는 고요히 멈춰 있기보다 요동치는 듯하다. 산의 굴곡은 누군가의 외침처럼 읽힌다. 이선영은 여기에서 민초들의 봉기와 희생, 기후 위기까지 이어지는 여러 층위의 의미를 짚었다.
‘뿌리’에서는 오래된 나무가 땅을 붙잡고 살아온 시간이 드러난다. 뿌리는 아래로만 내려가지 않는다. 옆으로 뻗어나가고, 주변 흙을 밀어 올리며, 때로는 자신의 일부를 지상에 드러낸다. 움직이지 않는 듯한 나무도 그 자리에서 끊임없이 생존의 영역을 넓혀온 셈이다.

아크릴과 황토가 더해진 화면에서 뿌리의 결은 산맥을 닮기도 하고 물살을 닮기도 한다. 형태는 서로 다르지만, 오랜 시간 힘이 지나간 흔적이라는 점에서 맞닿는다. 이해균의 풍경을 따라가다 보면 산과 나무, 물을 따로 바라보던 시선이 조금씩 겹쳐진다.

구름을 그린 ‘cloud5’에서도 자연의 움직임은 계속된다. 하늘을 채운 구름 아래로 인공 구조물이 부분적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이선영은 이를 자연의 거대한 힘과 인간 문명의 일부를 대조한 화면으로 읽었다. 사람은 땅 위에 구조물을 세우고 생활의 질서를 만들지만, 그 질서가 자연의 변화 앞에서 얼마나 버틸 수 있는지는 또 다른 문제다.

풍경을 따라가던 시선은 ‘이유 없는 죽음’과 ‘문상가는 길’에서 죽음과 애도의 자리로 옮겨간다. ‘이유 없는 죽음’에는 공동묘지와 그 위의 석양이 담겨 있다. 어떤 일이 있었는지 설명하는 장면은 없지만, 나란히 놓인 무덤들은 그곳에 묻힌 이들의 삶과 죽음을 생각하게 한다.

‘문상가는 길’의 하늘에는 아름다운 색과 우울하고 불길한 기운이 함께 놓여 있다. 누군가를 떠나보내러 가는 길에서 바라본 풍경은 평소와 같을 수 없다. 재난과 전쟁이 이어지는 세계에서 이 작품은 상실을 겪은 사람들의 마음과 만나게 된다.
이해균은 이번 작품에서 구체적이고 설명적인 묘사보다, 단순한 표현 안에서 감응할 수 있는 대상의 깊이에 집중했다고 밝혔다. 화면에 많은 이야기를 덧붙이기보다 물결의 결, 뿌리의 움직임, 구름의 흐름과 무덤의 풍경을 통해 관객이 스스로 다가가도록 하는 작업이다.

‘사상파고’는 그렇게 풍경에서 시작해 사람의 삶으로 이어진다. 물결을 바라보다 삶의 불안을 떠올리고, 뿌리를 바라보다 터전을 생각하며, 무덤 앞에서 이름을 알지 못하는 이들의 죽음을 헤아리게 한다. 인사동에 펼쳐질 이해균의 풍경에는 자연을 바라보는 화가의 눈과,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향한 애도가 함께 담겨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