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이강렬의 북유럽 미술관 기행] 예술작품 속의 할아버지와 손주…”어떤 온기를 남길 것인가?”

북유럽 미술관 기행 중 만난 특별한 모티브, ‘할아버지와 손주’의 따뜻한 순간들을 기록해 본다. 스웨덴 예테보리에서 노르웨이 오슬로로 이어지는 가을 여정 속에서, 우연인 듯 필연처럼 내 시선과 마음을 강하게 붙잡은 세 작품이 있다. 다른 시대, 다른 장소, 다른 재질로 만들어졌지만 모두 ‘세대를 잇는 무조건적인 사랑’을 이야기하고 있다.

예테보리 미술관에서 만난 페르 하셀베리(Per Hasselberg)의 <할아버지(Farfadern)>(1895)는 하얗고 매끄러운 대리석으로 피어난 가장 평온한 안식처다. 주름지고 쇠약해진 할아버지의 품에서 어린 손자가 아무런 걱정 없이 깊은 잠에 빠져 있다.

뼈가 도드라진 거친 손으로 아이의 머리와 몸을 소중히 감싼 할아버지의 몸짓에서, 부서질 듯 연약한 새 생명을 향한 경외심과 헌신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보고만 있어도 마음이 아련해지는 고요한 사랑의 순간이다.

오슬로 비겔란 공원에서 만난 구스타브 비겔란(Gustav Vigeland)의 <할아버지와 아이들>에서는 거칠고 단단한 화강암 속에서 뿜어져 나오는 생명력을 느꼈다. 비겔란이 깎아낸 노년은 여전히 강인하고 든든한 울타리다.

한 품에 다 안기지도 않을 만큼 여러 명의 손주들을 한꺼번에 꽉 끌어안고 부대끼는 할아버지의 모습이 눈길을 붙잡는다. 오랜 세월 풍파를 견뎌낸 듯한 거친 돌의 질감은 다음 세대를 위해 아낌없이 내어주는 우직하고 단단한 사랑의 무게를 더욱 묵직하게 느끼게 한다.

헤니 온스타드 미술관에서 만난 카이 피엘(Kai Fjell)의 <할아버지와 손자>에는 또 다른 온기가 있었다. 캔버스 위 거친 붓 터치와 어두운 색채 속에서 다정한 눈맞춤이 피어난다.

노란빛의 따뜻한 조명 아래, 할아버지는 지긋이 고개를 숙이고 어린 손자는 커다란 눈망울로 그를 올려다본다. 손을 꼭 맞잡은 채 서로의 존재를 온전히 마주하는 두 사람의 모습에서, 화려한 미사여구 없이도 흐르는 가족 특유의 끈끈한 유대감과 삶의 온기가 묻어난다.

이 작품들은 내게 질문을 건넨다. “우리는 다음 세대에 무엇을 남길 것인가.”

일흔을 넘긴 나이, 화가인 아내와 오슬로에 사는 딸, 그리고 사랑스러운 손녀 엘리와 손을 잡고 걸으며 마주한 이 작품들은 내게 단순한 예술 그 이상이었다.

하셀베리의 섬세한 대리석, 비겔란의 강인한 화강암, 피엘의 따스한 회화. 이들이 세대를 초월해 남겨둔 ‘가족’과 ‘내리사랑’의 기억은 오늘날 우리 가족이 함께 누리는 소중한 선물이자 위로가 되었다.

나 역시 사진으로, 글짓기로, 그리고 무엇보다 할아버지라는 이름으로 우리 아이들의 삶에 어떤 온기를 남길 수 있을지 깊이 고민하게 된 가을날 오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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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렬

이강렬 미래교육연구소 소장, 국민일보 편집국장·대기자·논설위원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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