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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항기 65주년 헌정무대’…“여러분 덕분에 나는 행복합니다”

2016년 EBS ‘스페이스 공감-노래하는 곳에’ 공연 무대. 목회 일선에서 물러난 뒤 다시 대중음악 무대로 돌아온 시기의 모습이다. 사진 EBS

서유석·장미화·최백호·김수희·조항조·유현상·전영록·인순이·소찬휘 등 한자리에
1959년 미8군 무대에서 키보이스·싱어송라이터·목회자 거쳐 다시 무대로
10월 24일 오후 6시 마포아트센터…후배들이 다시 부르는 윤항기의 노래

“오랜 세월 동안 저 윤항기를 기억해주시고, 제 노래를 사랑해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가수 윤항기가 자신의 이름을 내건 헌정공연을 앞두고 관객에게 보내는 글이다. 공연 제목은 ‘여러분 덕분에 나는 행복합니다’. 그의 대표곡 ‘여러분’과 ‘나는 행복합니다’를 한 문장에 담았다. 한 시대를 살아온 음악인의 회고이면서, 지금까지 자신의 노래를 기억해준 사람들에게 보내는 감사이기도 하다.

‘윤항기 65주년 기념 헌정공연-여러분 덕분에 나는 행복합니다’는 10월 24일 토요일 오후 6시 서울 마포아트센터 아트홀맥에서 열린다. 공연시간은 인터미션 15분을 포함해 120분이다.

무대의 중심에는 윤항기가 있지만 혼자 서는 공연은 아니다. 서유석·장미화·최백호·김수희·조항조·유현상·전영록·인순이·소찬휘, 기타리스트 최희선이 스페셜 캐스트로 이름을 올렸다. 김기표 팝스밴드가 함께하고 윤신호가 총감독을 맡는다.

이들이 한 무대에 서는 이유는 단순히 원로가수 한 사람의 연륜을 축하하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윤항기가 지나온 길은 한국 대중음악의 변화와 겹쳐 있다. 록과 그룹사운드가 생소하던 시절부터 밴드음악을 했고, 1970년대에는 직접 노래를 만들고 부르는 싱어송라이터로 활동했다. 이후 목회자의 길을 걸으며 오랫동안 대중무대를 떠났다가 다시 가수로 돌아왔다.

특히 서유석·장미화·최백호·유현상은 윤항기가 2014년 오랜 목회생활을 정리하고 가수로 다시 출발할 때 곁에 있었다. 당시 윤항기가 55주년 기념앨범 ‘걱정을 말아요’를 발표한 쇼케이스에 이들이 참석해 그의 복귀를 축하했다. 12년 뒤 다시 헌정무대에 함께 선다는 점에서 이번 공연은 단순한 출연진 조합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1971년 부산 광복동 무대에 선 ‘윤항기와 키브라더스’. 그룹사운드 시대를 거쳐 싱어송라이터로 영역을 넓히던 시기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윤항기의 음악인생은 10대 때 시작됐다. 그는 부모를 일찍 잃은 뒤 여동생 윤복희와 힘든 성장기를 보냈다. 1959년 작곡가 김희갑이 이끌던 미8군 ‘에이원쇼’ 무대에 서면서 본격적으로 음악인의 길에 들어섰고, 1960년 해병대 군악대를 거쳐 1963~64년 무렵 김홍탁·차중락·차도균·옥성빈 등과 키보이스를 결성했다. 1964년 나온 키보이스 음반은 한국 록과 그룹사운드 초기 역사를 말할 때 빠지지 않는 음반으로 평가된다.

1970년대에는 ‘윤항기와 키브라더스’를 이끌며 솔로 활동을 병행했다. ‘별이 빛나는 밤에’ ‘장밋빛 스카프’ ‘나는 어떡하라구’ ‘친구야’ ‘나는 행복합니다’ ‘이거야 정말’ 등은 윤항기의 이름과 함께 오랫동안 불려온 노래들이다. 록과 팝, 발라드, 한국적인 선율을 넘나든 그의 음악은 한국 대중음악이 미8군 무대와 그룹사운드 시대를 지나 방송과 음반산업 중심으로 이동하던 과정을 그대로 보여준다.

2010년 음악인생 50주년 공연을 준비하며 함께한 남매. ‘여러분’은 오빠가 작사·작곡하고 동생이 불러 1979년 서울국제가요제 대상을 받은 곡이다.

그의 음악과 삶에서 여동생 윤복희를 빼놓을 수 없다. 1979년 서울국제가요제에서 대상을 받은 ‘여러분’은 윤항기가 작사·작곡하고 윤복희가 불렀다. 윤항기는 훗날 당시 개인적으로 힘든 시간을 보내던 동생을 위로하려고 이 곡을 썼다고 여러 차례 회고했다. 신앙적으로는 이사야서의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씀을 묵상하면서 노래를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여러분’은 이후 윤복희뿐 아니라 임재범 등 여러 세대의 가수들이 다시 부르면서 한국 대중가요의 대표적인 위로의 노래로 남았다.

윤항기에게 그 무렵은 인생의 방향이 바뀌던 시기이기도 했다. 1970년대 후반 폐결핵으로 생사의 고비를 넘기면서 신앙이 깊어졌다. 그는 1986년 음악활동을 사실상 접고 이듬해부터 신학을 공부했으며 미국에서 신학과 교회음악을 공부한 뒤 1990년 목사 안수를 받았다. 이후 음악신학교를 세우고 목회와 후배 양성에 힘을 쏟았다.

가수와 목사는 겉으로 보면 전혀 다른 삶처럼 보인다. 윤항기는 두 길을 분리하지 않았다. 2016년 연합뉴스 인터뷰에서 그는 “데뷔하고서 지금까지 단 하루도 음악을 떠나 산 적이 없다”고 말했다. 목회자로 활동하던 시간에도 음악은 그의 설교와 교육, 찬양의 도구였다. 그에게 음악은 직업이라기보다 사람에게 말을 거는 방식에 가까웠다.

2014년 목회 일선에서 은퇴한 뒤 그는 다시 대중가수로 돌아왔다. 스스로를 “신인가수 윤항기”라고 불렀다. 당시 발표한 ‘걱정을 말아요’에는 힘든 사람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고 싶다는 뜻을 담았다. 일흔을 넘긴 그는 “나이 먹었다는 이유로 나약해지는 사람들에게 용기가 되고 싶다”고 했다. 2016년에는 “나이 먹어서도 우리가 해야 할 일을 충분히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번 헌정공연도 그 연장선에 있다. 젊은 시절의 윤항기와 지금의 윤항기를 홀로그램으로 연결하고, 후배들이 ‘장밋빛 스카프’ ‘친구야 친구’ 등을 새롭게 해석하며, 마지막에는 ‘여러분’과 ‘나는 행복합니다’를 함께 부르는 구성이 준비되고 있다. 과거의 히트곡을 그대로 재현하기보다는 한 세대가 만든 노래를 다음 세대가 넘겨받는 방식이다.

기타리스트 최희선이 참여하는 것도 눈에 띈다.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의 리더로 오랫동안 한국 대중음악의 라이브 현장을 지켜온 연주자다. 보컬 중심의 헌정무대에 한국 밴드음악을 대표하는 기타리스트가 합류한다는 점은 키보이스에서 출발한 윤항기의 음악적 뿌리를 되짚는 의미도 있다.

윤항기의 다음 삶도 결국 ‘다시 돌려주는 일’에 가까워 보인다. 올해 그는 자신의 음악인생을 직접 기록하고 팬들과 소통하기 위해 ‘윤항기TV’를 시작했다. 후배 음악인을 위한 장학재단 구상도 갖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번 공연 수익 일부 역시 전쟁고아와 다문화가정 자녀 등을 돕는 데 사용될 예정이라고 주최 측은 밝혔다.

한 음악인의 마지막 장을 말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1959년 미8군 무대에서 시작해 그룹사운드와 싱어송라이터 시대를 지나 목회자가 됐고, 다시 마이크를 잡았다. 이제 그의 역할은 자신의 노래를 더 많이 부르는 데서 한 걸음 나아가 그 노래와 경험을 후배에게 넘겨주는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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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기

아시아엔 기자, 전 한국기자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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