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문화

허쉬초콜릿과 ‘굳세어라 금순아’가 불러낸 전쟁 뒤의 기억

촬영 황건 교수, 이미지 생성 AI.

전쟁기념관에 갔다. 6·25전쟁 76주년 기념 특별기획전 「그날, 나의 일상은 전쟁이 되었다」를 둘러보았다. 전쟁을 다룬 전시이지만, 나의 눈길을 잡은 것 들은 오래전의 일상을 떠올리게 하는 작고 사소한 물건들 이었다.

검은 피피선으로 엮은 장바구니가 있었다. 참 투박한 바구니였다. 그런데 이상하게 눈에 익었다. 물자가 귀하던 시절, 사람들은 무엇이든 버리지 않고 다시 쓰고, 손으로 엮고 고쳐서 생활에 필요한 물건을 만들었다. 조금 더 가니 5센트 가격이 찍힌 허쉬초콜릿(Hershey’s milk chocolate)이 있었다. 참스(Charmes) 사탕도 보였다.

나는 한참 그 앞에 서 있었다. 나는 1957년 12월에 태어났다. 휴전한 지 4년 남짓 지난 때였다. 전쟁을 기억할 나이는 아니었다. 그러나 전쟁이 지나간 뒤의 시간은 기억한다. 그 때는 물자가 귀했다.

초등학교 고학년 무렵, 우리 집 뒤쪽에는 미제 물건을 파는 아주머니가 있었다. 가족 가운데 누군가가 미군 PX와 관계가 있었던 모양이다. 정확한 사정은 알지 못한다. 아주머니는 가끔 우리집에 들러 보따리를 풀었다. 어머니는 우리에게 줄 군것질거리를 골라 샀다. 허쉬초콜릿이나 참스사탕 같은 것들이었다.

어느 날은 얼린 무지개 아이스크림도 있었다. 우리는 그것을 한꺼번에 먹지 않았다. 아껴 먹었다. 초콜릿은 조금씩 떼어 먹고, 사탕은 입안에서 오래 굴렸다. 귀한 것이 무엇인지 어린 마음에도 알고 있었던 것 같다. 그때 참 맛있었다.

몇 년 전에는 도봉산에서 내려오다가 미군 씨레이션(C-ration)을 파는 것을 보았다. 하나를 사서 집으로 가져왔다. 아내는 쓸데없는 것을 사 왔다는 듯 나를 바라보았다. 나에게는 쓸데없는 것이 아니었다. 상자를 열어 내용물을 하나씩 꺼내 보았다. 미군에게는 한 끼였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그것을 한꺼번에 먹지 않았다. 옛날 생각을 하면서 내용물을 조금씩 뜯어 먹었다. 조금씩, 아껴서. 미군에게는 한 끼였던 것이 내게는 어린 시절의 한 조각이었다.

작년에는 통일전망대에 갔다가 기념품 가게에서 국군 전투식량을 보았다. 국방색 비닐용기에 뜨거운 물만 부으면 먹을 수 있는 것이었다. 우리 병원 PX에도 비슷한 것이 있었다. 흔히 ‘뽀글이’라고 부르는 것이었다.몇 개 사 보았다. 외국 여행을 갈 때 컵라면과 함께 가져가려고 했다. 뜨거운 물만 있으면 낯선 곳에서도 한 끼를 해결할 수 있으니 꽤 쓸모가 있을 것 같았다.

돌이켜보면 내가 그런 것을 사는 데에는 조금 다른 이유도 있었던 것 같다. 먹을 것에 대한 오래된 기억 때문인지도 모른다. 오늘 전시장에는 밀가루 포대와 약병도 있었다. 어린 시절 보았던 것과 닮은 물건들이었다. 성조기를 배경으로 서로 악수하는 손이 그려진 밀가루 포대도 기억났다.

그때는 그 그림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몰랐다. 미군 PX에서 흘러나온 초콜릿과 사탕도 그저 맛있는 것이었다. 이제 와 생각해보니 전쟁은 전쟁터에만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밀가루 포대가 식탁으로 갔고, 약병은 아픈 사람 곁에 놓였으며, 초콜릿과 사탕은 아이들의 입속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피피선은 장바구니가 되었다. 전쟁이 사람들의 부엌과 식탁, 장바구니와 약병, 어린아이의 입맛에도 흔적을 남긴 것이다.

나는 6·25전쟁을 겪었다고 말할 수 없다. 다만 전쟁이 지나간 뒤의 시간을 살았다. 그리고 오늘 그 시간을 다시 만났다. 전시를 다 둘러보고 UN실로 갔다. 그런데 나오면서 문득 그 피피선 장바구니가 생각났다. 다시 특별전시실로 돌아갔다.

전시장 한쪽에는 옛 LP판 두개가 벽에 붙어 있었고 각각 헤드폰과 연결되어 있었다. 그 앞에 1군단 부대 마크를 어깨에 단 병사 세 명이 있었다. 두 사람은 앉아서 헤드폰을 하나씩 쓰고 있었고, 한 사람은 옆에 서 있었다. 그 판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는 〈굳세어라 금순아〉와 〈이별의 부산정거장〉이었다.

나는 서 있는 병사에게 물었다. “영화 〈국제시장〉 보았어요?” “네.” “그 영화에 〈굳세어라 금순아〉 노래 나오는데…” 살짝 일러주었다. 그는 아마 동료들에 이어 헤드폰을 쓰고 그 노래를 들어 기억을 확인해 보았을 것이다. 나는 그들을 뒤로하고 전시장을 나왔다.

어린 시절의 나는 전쟁을 몰랐다. 그저 어머니가 사준 초콜릿을 아껴 먹었고, 사탕을 오래 입안에 굴렸다. 오늘 만난 젊은 병사들도 그 노래가 지나온 시간을 모두 알지는 못할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그 노래를 들었고, 나는 그 중 하나에게 그 노래가 나온 영화를 살짝 일러주었다. 그것이면 충분한지도 모른다. 기억은 그렇게 전해지는 것이니까. 누군가는 겪고, 누군가는 기억하고, 누군가는 이야기를 듣고 다시 들어본다.

나는 전쟁을 기억하지 못한다. 그러나 전쟁이 남긴 일상은 기억한다. 그날의 일상이 버텨낸 시간 위에서, 오늘 우리가 누리는 당연한 하루가 시작된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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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건

이대 해부학교실 초빙교수, 인하의대 명예교수, '인류의 전쟁이 뒤바꾼 의학세계사'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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