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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대통령의 등 뒤 1미터…“보이지 않는 자리에서 누구를 지킨다는 것”

-박진이 전 청와대 경호관, 29년 9개월 20일의 현장 기록
-역대 대통령 8명 경호…모스크바·평양·테헤란 등 현대사의 현장 누벼
-제복 벗은 뒤 SR 상임감사로 ‘대통령 경호’에서 ‘국민과 조직의 안전’으로
-이명박 전 대통령 “자네들이라는 사람 울타리가 있어 겁 없이 일할 수 있었다”

“자동차는 내가 아니어도 누군가 만들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대통령을 지키는 일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대기업에서 자동차를 만들던 평범한 공학도 박진이는 어느 날 인생의 핸들을 돌렸다. 안정된 직장과 익숙한 삶을 내려놓고 권총과 무전기, 그리고 한순간도 긴장을 늦출 수 없는 대통령 경호의 세계로 들어갔다. 사랑하는 딸에게 “아빠는 대한민국 대통령을 지키는 사람”이라는 자부심을 물려주고 싶다는 마음도 그의 등을 밀었다.

1990년 3월 청와대 경호실에 첫발을 들인 그는 2019년까지 29년 9개월 20일 동안 역대 대통령 8명의 곁을 지켰다. 대통령과의 거리는 불과 1미터. 그러나 그 짧은 거리 안에는 한 사람의 생명뿐 아니라 대한민국의 안전과 국격, 역사의 방향까지 놓여 있었다.

박진이의 신간 《대통령의 등 뒤 1미터》는 그 30년 가까운 시간을 담은 기록이다. 오는 8월 31일 씽크스마트에서 출간되는 이 책은 대통령을 둘러싼 권력의 비화보다, 대통령이 현장에 나타나기 훨씬 전부터 위험요소와 이동 동선을 점검하고 최악의 상황까지 대비했던 ‘보이지 않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초점을 맞춘다.

카메라는 언제나 대통령을 향했지만, 박진이의 시선은 카메라 밖을 향했다. 대통령의 표정이 아니라 출입구의 위치를 살폈고, 환호하는 군중보다 그 군중이 갑자기 움직일 때 열어야 할 퇴로를 먼저 생각했다. 경호가 완벽하게 끝났다는 것은 경호관의 존재가 드러나지 않았다는 뜻이었다. 그가 터득한 경호의 본질은 총알 앞에 몸을 던지는 영웅적 행동이 아니었다. “진짜 경호는 총알을 막는 것이 아니라 총성이 울리지 않게 만드는 것이다.”

위협이 발생했을 때 얼마나 빨리 몸을 던질 것인가보다, 애초에 몸을 던져야 할 상황이 생기지 않도록 만드는 것. 위험을 미리 발견하고, 수없이 점검하고, 예상 밖의 변수에 대비해 또 하나의 계획을 준비하는 것이 박진이가 평생 지켜온 경호의 원칙이었다.

책에는 모스크바에서 평양까지, 베를린에서 테헤란까지 대한민국 현대사의 굵직한 장면들이 등장한다.

1990년 소련 방문 당시 박진이는 대통령보다 먼저 모스크바에 도착해 동선과 위험요소를 점검했다. 대통령 전용기 도착을 앞두고 소련 경호원들과 한국 기자단 사이에 충돌이 벌어지자 그는 현장 한가운데로 들어갔다. 긴 협의 끝에 한국 기자들이 대통령 내외의 역사적인 첫발을 가장 좋은 위치에서 촬영할 수 있도록 길을 열었다.

마침내 1호기의 문이 열리고 노태우 대통령 내외가 트랩 위에 모습을 드러냈다. 수십 대의 카메라 셔터가 모스크바의 잿빛 하늘 아래 일제히 터졌다. 박진이는 그 소리를 “냉전의 벽을 깨부수는 소리”처럼 들었다고 회고한다. 역사적인 장면을 담은 것은 기자들이었지만, 그 장면을 가능하게 한 것은 프레임 밖에서 오랫동안 쌓아온 신뢰였다. 그것이 한 경호관이 역사에 기여하는 방식이었다.

경호관 생활에서 가장 가슴 깊이 남은 순간은 긴박한 작전 현장만이 아니었다. 어느 봄날 청와대 관저 뜰에서 열린 가든파티에서 이명박 당시 대통령은 경호관들을 바라보며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밖에서는 나보고 무조건 밀어붙인다고 ‘불도저’라고 부르지만, 나라고 왜 외롭지 않겠나.” 이어 그는 경호관들을 향해 말했다. “청와대에 들어와서 가장 든든했던 건 바로 내 등 뒤에 있는 자네들이야. 방탄유리보다, 콘크리트 벽보다 더 단단한 자네들이라는 ‘사람 울타리’가 있었기에 내가 겁 없이 일할 수 있었어. 자네들은 단순한 경호관이 아니야. 나와 내 가족을 지키는 진짜 식구지. 늘 고맙네.”

그 말을 들은 순간 박진이의 귓속을 채우던 무전기 소리가 사라졌다. 20년 넘게 갑옷처럼 두르고 살았던 긴장이 봄볕에 눈 녹듯 풀렸다. 대통령과 경호관이라는 수직적 관계를 넘어, 서로의 외로움과 노고를 이해하는 사람과 사람의 온기가 남았다. 그는 그 한마디가 어떤 훈장보다 묵직하게 가슴에 내려앉았다고 적었다.

책의 이야기는 청와대에서 끝나지 않는다. 제복을 벗은 박진이는 민간 IT기업으로 자리를 옮겼다. 청와대 경호실에서는 어디서든 예우받았지만, 회사의 기술을 팔기 위해 고객사 대기실에서 기약 없이 기다리는 ‘을’의 삶은 낯설고 냉정했다.

대기실 소파에 앉아서도 그는 자신도 모르게 등을 곧게 펴고 두 발을 바닥에 붙인 채 출입구를 바라봤다. 30년 동안 몸에 밴 경계 자세였다. “나는 지금 경호관이 아니라 영업을 기다리는 부사장이지”라고 생각하며 일부러 등받이에 몸을 기댔지만, 그것조차 불편했다. 그는 새로운 자리에 맞는 새로운 자세도 훈련해야 한다는 사실을 배웠다. 이후 SR 상임감사로 일하면서 그의 경호 철학은 한 사람의 신변 보호를 넘어 국민과 조직, 시스템을 지키는 일로 확장됐다. 연간 2400만명이 이용하는 철도에서 모든 승객은 그가 지켜야 할 ‘VIP’였다.

그가 생각하는 감사 역시 잘못을 찾아내 처벌하는 데 머물지 않았다. 문제가 터진 뒤 책임자를 찾는 것보다, 사고와 부패가 일어나지 않는 구조를 만드는 일이 먼저였다. 대통령 경호 때 익힌 예방과 점검, 플랜 B의 원칙이 공공감사의 현장에서도 이어진 것이다.

박진이는 국내 감사 역량을 세계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일에도 힘을 쏟았다. 2024년 국제반부패아카데미(IACA)와 공식 교육협약을 맺고, 그해 11월 인천공항 인재개발원에서 국제 뇌물방지와 자금세탁 방지, 디지털 자산의 부패 추적 등을 다룬 글로벌 반부패 전문가 교육을 열었다. 그는 이 현장을 “개인의 직관이 아닌 글로벌 표준이라는 시스템이 우리를 지켜줄 수 있음을 확인한 순간”으로 기록했다.

그를 오랫동안 지켜본 이들의 추천사도 박진이의 삶을 더욱 입체적으로 보여준다. 신임 경호관 시절 그의 훈육관이었던 염상국 전 대통령경호실장은 박진이를 “질문하는 경호관”으로 기억한다. 그는 “왜 이렇게 해야 합니까?”보다 “더 나은 방법은 없겠습니까?”라고 물었던 사람이었다. 염 전 실장은 박진이가 모스크바와 베를린, 평양의 현장에서 선택한 것은 화려함이 아니라 완벽함이었다며, 이 책을 “자신의 사선 위에서 묵묵히 버텨온 모든 이들에게 말을 거는 기록”이라고 평했다.

김세호 전 건설교통부 차관·철도청장은 “대통령의 등 뒤를 지키던 사람이 이제 국민의 일상 속으로 걸어 들어왔다”며 “자리가 달라졌어도 그의 눈이 향한 곳은 언제나 사람의 안전이었다”고 했다.

SR에서 박진이와 함께 일한 이종국 전 대표이사는 그를 “조직의 등 뒤를 경호한 사람”이라고 표현했다. 대표가 앞을 바라볼 때 박진이는 옆과 뒤를 살폈고, 대표가 속도를 낼 때 방향을 점검했다. 규정집보다 먼저 사람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감사였다는 것이다.

배우 박상원은 오랜 동생인 박진이에 대해 “화려하지 않고 목소리를 높이지 않지만, 그가 곁에 있으면 이상하게 든든했다”고 회고했다. 그는 “연기는 보여주는 일이지만 진이의 삶은 철저히 감추는 일이었다”며 “세상에는 드러나지 않아야 빛나는 삶이 있다”고 말했다.

《대통령의 등 뒤 1미터》는 대통령을 가까이서 지켜본 사람의 회고록이지만, 결국 대통령만을 위한 책은 아니다. 가족을 지키는 사람, 조직을 지키는 사람, 자신의 일을 지키는 사람, 누군가의 안전을 책임지는 사람에게도 저마다 쉽게 물러설 수 없는 ‘1미터’가 있다. 앞에 서야만 중요한 사람이 되는 것도 아니고, 이름이 알려져야만 가치 있는 일을 하는 것도 아니다.

누군가는 앞으로 걸어가고, 누군가는 그 사람이 넘어지지 않도록 뒤를 지킨다. 29년 9개월 20일 동안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지 않는 것을 직업적 완성으로 삼았던 박진이의 기록은 독자에게 묻는다.

“당신은 지금 누구의 등 뒤에 서 있는가. 그리고 당신이 끝까지 지켜야 할 1미터는 어디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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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기

아시아엔 기자, 전 한국기자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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