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만해대상…니시모리 시오조(평화)·박준영·안규리(실천)·정호승·박명성(문예)

만해실천대상(공동 수상)은 재심 재판을 통해 누명을 쓰고 옥살이를 한 사람들의 억울함을 풀어준 박준영 변호사와 30년째 이주노동자·노숙인·독거노인 등 사각지대의 소외된 이웃에게 의료 서비스를 제공해온 재단법인 라파엘나눔 안규리 이사장이 받는다.
만해문예대상(공동 수상)은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시 ‘수선화에게’ 중) 등 섬세한 시어로 현대인을 위로해 온 정호승 시인과 ‘한국 뮤지컬계의 맏형’으로 불리는 박명성 신시컴퍼니 예술감독이 선정됐다. 만해대상 심사위원회(위원장 강천석 조선일보 고문)는 최근 회의를 열고 올해 부문별 수상자를 이같이 결정했다. 각 부문 상금은 1억원이다.
2026 만해대상 시상식은 만해축전 기간인 9월 9일 오후 2시 강원도 인제읍 하늘내린센터에서 열린다. 만해축전은 설악·만해사상실천선양회와 강원도, 인제군, 동국대 그리고 조선일보사가 공동 주최한다.
다음은 공적서 전문.
2026 만해평화대상 추천서
니시모리 시오조(西森潮三) 전 고치현 의회 의장(86)
니시모리 시오조 전 일본 고치현 의회 의장은 30여 년간 지방정치인으로 활동하면서 한일 양국의 화해와 동양평화 실현을 위해 평생을 바쳐온 대표적인 일본인입니다.
니시모리 전 의장은 정치적 이해관계를 넘어 역사적 갈등을 직시하면서도 미래지향적인 한일관계를 만들기 위해 꾸준히 노력해 왔습니다. 그는 일본이 식민지 시대 한국에 저지른 역사적 잘못을 직시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한국을 방문할 때마다 가장 먼저 서대문형무소를 찾아 일본의 식민지배 역사를 배우고 이를 일본인들에게 알려왔습니다. 그는 “일본인은 한국에 가서 음식만 먹고 돌아와서는 안 된다. 왜 한국인들이 일본을 비판하는지 그 역사를 알아야 한다”고 강조해 왔습니다.
그는 1997년 고치현 의회 의장 시절, 전남 목포에서 일제말~6·25전쟁 이후까지 3000여 명의 고아를 돌본 윤학자(다우치 치즈코·1912~1968) 여사의 공적을 기리는 기념비를 고치현에 건립했습니다. 고치현 태생의 독실한 크리스천인 윤 여사는 조선총독부 관리였던 아버지를 따라 1919년 조선 목포에 왔습니다. 그는 목포에서 ‘공생원’을 세우고 고아를 돌보는 윤치호 전도사를 만나 1938년 결혼했으며 6·25전쟁 와중에 남편이 행방불명된 후에도 고아를 돌보아 ‘고아들의 어머니’로 불렸습니다. 1968년 그가 사망했을 때에는 목포 시민장으로 장례가 치러졌으며 시민 3만 여명이 참석했을 정도로 목포 시민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니시모리 전 의장은 윤학자 여사의 기념비 건립을 일회성 행사에 그치지 않고 이를 계기로 한일 지방교류를 꾸준히 확대했으며, 그 노력은 2016년 고치현과 전라남도의 자매결연으로 이어졌습니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2015년 외국인 최초로 전라남도 명예도민에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니시모리 전 의장은 특히 안중근 의사의 동양평화 사상을 일본 사회에 알리는 데 앞장서 왔습니다. 그가 회장을 맡고 있는 고치일한근대사연구회는 안중근 의사의 뤼순 재판에 관여했던 고치현 출신 재판관, 검사, 변호인, 형무소 관계자, 기자들과 안 의사의 유고인 『동양평화론』과 『안응칠 역사』를 필사해 후대에 남긴 고치현 출신 인물들의 존재를 발굴해 널리 알렸습니다. 이를 통해 한일 양국이 갈등의 역사뿐 아니라 화해와 이해의 역사도 함께 기억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꾸준히 전해 왔습니다.
또한 그는 안중근 의사의 유묵이 일본에 남아 있다는 사실을 확인, 아무런 대가 없이 한국으로 기증하도록 주선했습니다. 한국의 중요한 문화유산으로 인정된 ‘언충신행독경만방가행(言忠信 行篤敬 蠻邦可行)’을 비롯한 안 의사의 유묵이 한국으로 돌아오는 과정에는 그가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그는 안중근 의사의 동양평화 사상과 한일 우호를 기리는 ‘일한우호 동양평화 기념비’ 건립도 9년에 걸쳐 추진했습니다. 이 기념비는 안중근뿐 아니라 그의 사상을 계승하거나 후대에 전한 고치현 출신 일본인들을 함께 기리자는 취지에서 마련됐습니다. 그러나 지난 6월 일본 고치현 현지에서 제막 직후 일부 왜곡된 정보와 항의가 이어지면서 결국 6일 만에 철거되는 아픔을 겪었습니다.
그럼에도 니시모리 전 의장은 “안중근의 동양평화 사상과 사카모토 료마가 꿈꾼 이상은 결코 포기할 수 없다”며 “사실에 근거해 끝까지 설명하고, 한일 우호를 위해 내 목숨을 걸고 책임을 다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그는 기념비는 철거됐지만 동양평화의 정신까지 철거될 수는 없다는 신념으로 지금도 한일 화해를 위한 노력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니시모리 전 의장은 안중근 의사를 단순히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인물이 아니라 동양의 공존과 협력을 구상했던 평화사상가로 평가하고 있습니다. 또한 고치현 출신의 사카모토 료마 역시 대립하던 세력을 화해시켜 새로운 시대를 열고자 했던 인물이라고 보며, 두 사람 모두 갈등을 넘어 평화를 지향했다는 공통된 정신을 갖고 있다고 강조해 왔습니다.
2016년 일본 정부는 그의 지방자치와 공공봉사 공로를 인정해 욱일중수장을 수여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가장 큰 업적은 훈장이 아니라, 한일 양국이 가장 어려운 시기에도 대화를 포기하지 않고 역사와 미래를 함께 바라보려는 노력을 평생 실천해 온 데 있습니다.
니시모리 시오조 전 의장은 역사적 갈등을 외면하지 않으면서도 화해와 상호 이해, 동양평화라는 보편적 가치를 위해 헌신해 왔습니다. 그는 안중근 의사가 남긴 동양평화의 이상을 오늘날 한일관계 속에서 실천하려 노력해 온 보기 드문 일본인입니다. 이러한 공로는 만해 한용운 선생이 평생 추구한 평화와 화해, 민족을 넘어선 공존의 정신과도 깊이 맞닿아 있습니다.
2026 만해대상 실천부문 추천서
박준영(52) 변호사
박준영 변호사는 한국 사법 역사상 가장 많은 재심 무죄를 이끌어낸 ‘재심 전문 변호사’입니다. 그는 지난 20년간 가출 청소년, 노숙인, 탈북자, 무기수 등 스스로 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사회적 약자들의 손을 잡고 법정에 섰습니다. 익산 약촌오거리 살인사건, 삼례 나라슈퍼 강도치사 사건, 낙동강변 살인사건, 이춘재 연쇄살인 8차 사건, 순천 청산가리 막걸리 사건, 윤동일 강제추행치상 사건까지 그가 다시 연 법정에서는 예외 없이 무죄가 선고되었습니다.
그는 전남 완도 출신으로 목포대 전자공학과를 중퇴한 후 군복무를 마치고 사법시험을 준비해 5년 만에 합격했습니다. 재심 사건을 맡게 된 것은 특별한 사명감보다는 ‘유명해지고 싶어’(조선일보 인터뷰) 시작했다고 합니다. 시작은 2008년 수원역 노숙 소녀 상해치사 사건이었습니다. 누명을 쓴 청소년들을 위해 퇴근 후 수사기록을 분석해 온 청소년상담센터 교사들의 헌신을 지켜보며 그의 삶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박 변호사의 진가가 가장 돋보인 사건은 존속살해 혐의로 20년 가까이 옥살이를 해야 했던 무기수 김신혜 씨 재심입니다. 김 씨로부터 11차례 해임당하면서도 그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같은 완도 출신, 같은 70년대생, 새어머니 밑에서 자란 비슷한 성장환경. 자신의 아버지가 변사한 장소에서 1년 전 김 씨의 아버지도 변사체로 누워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그는 “닮아 있는 힘 약한 사물을 사랑한다”는 시구를 떠올리며 사건에 매달렸습니다. 공소사실과 어긋나는 부검 소견, 시간상 불가능한 동선, 조작된 진술조서를 십 수 년 간 끈질기게 파헤친 끝에 지난해 1월 김씨는 24년 10개월 만에 1심 무죄를 선고받았습니다. 박 변호사는 이 사건을 “22살 여성이 언어를 갖지 못해 약자가 된 사건”이라고 했습니다. 그는 사법 절차에서 말을 갖지 못한 이들이 겪는 현실에 가장 먼저 팔을 걷어붙인 법조인입니다.
박 변호사는 수많은 억울한 사연 중에서도 나름의 기준을 세워 사건을 가려 맡았습니다. 재산 범죄는 맡지 않는다는 원칙을 지켰고, 대신 아무도 말을 들어주지 않는 약자들의 간절한 목소리에 귀기울였습니다. 낙동강변 살인사건의 범인으로 21년을 복역했던 장동익씨가 무죄 확정 후 “5년간 고생한 수임료”라며 건넨 자동차를 처음엔 거절했다가 마지못해 받고, 16만㎞를 달리며 전국의 또 다른 억울한 이들을 찾아다닌 일화는 그의 변호가 단순한 직업이 아니라 신념의 실천이었음을 보여줍니다.
박 변호사는 수많은 재심을 동시에 진행하다 2016년 파산 위기에 직면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각 사건에 대한 후원을 받는 ‘스토리 펀딩’을 했고 90여 일간 5억 원에 이르는 성금이 모였습니다. 이후로 수임료를 사실상 거의 받지 않고 대중 후원이나 강연, 방송 출연으로 생계를 충당해왔습니다.
박 변호사는 2023년 재심에서 승소한 의뢰인들이 배상금 일부를 출연해 만든 ‘등대장학회’ 설립을 도왔습니다. 낙동강변 사건의 장동익·최인철 씨, 이춘재 연쇄살인 사건 윤성여 씨가 함께 만든 이 장학회는 전국의 위기 청소년에게 매달 생활비와 의료비를 지원하고 있습니다. 박 변호사는 “망망대해의 등대 불빛처럼, 자신을 믿어준 단 한 사람의 존재가 절실했던 의뢰인들의 마음을 청소년들에게 전하고 싶다”고 말합니다.
그의 발걸음은 지금도 멈추지 않았습니다. 한국어 능력이 부족한 외국인 피고인이 무기징역을 확정 받은 창원 서부 택시기사 살인사건의 재심도 새롭게 맡아 진행하고 있습니다. 강압 수사로 허위자백을 한 탈영병 출신 피고인이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대구 비디오 가게 살인사건도 맡아 올해 재심을 청구했습니다. 박 변호사는 “어느 진영이든 신뢰할 수 있는 변호사가 되어, 어느 국민도 사법제도로 인해 억울한 피해를 입지 않도록 하는 사법 시스템 구축에 힘을 보태고 싶다”고 말합니다.
박 변호사는 그저 무죄를 받아내는 변호사가 아니라, 사법 시스템이 가진 약자에 대한 구조적 무관심을 세상에 알리고, 잘못을 바로잡는 용기가 ‘지연된 정의’를 앞당긴다는 것을 몸소 보여준 인물입니다.
안규리 교수(라파엘나눔 이사장)
안규리 서울대 명예교수는 지난 29년간 의료 사각지대에 놓인 이웃들을 위해 자신의 삶과 전문성을 바쳐온 대표적인 실천가이다. 서울대 의대 교수로 재직하면서도 연구실과 병원 진료실에 머물지 않고 의료서비스가 필요한 이웃들을 찾아나서 헌신했다.
그가 돌본 대상은 이주노동자와 다문화가족, 해외 저소득국가의 환자와 의료인, 코로나 시기 홈리스와 취약계층에 이르기까지 가장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었다.
활동의 시작은 1997년 IMF 외환위기 때였다. 당시 이주노동자들은 의료보험 혜택은커녕 기본적인 진료조차 받기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었다. 안 교수는 자원봉사 의료진과 함께 서울의 한 고등학교 복도를 빌려 무료진료를 시작했고, 이것이 오늘날 국내 최대 규모의 이주민 의료지원기관인 라파엘클리닉의 출발점이 되었다.
1999년 정식으로 출범한 ‘라파엘클리닉’은 지금까지 100여 개국 출신 이주민과 다문화가족 32만 명 이상에게 의료서비스를 제공했다. 내과, 외과, 치과, 산부인과, 정형외과를 비롯한 전문 진료체계를 갖추고 의료 사각지대에 놓인 이들의 건강권을 보호해 왔다.
안 교수는 의료나눔활동을 아시아 전역으로도 확대했다. 2007년 설립한 라파엘인터내셔널을 통해 몽골, 미얀마, 방글라데시, 네팔, 라오스, 필리핀 등 저소득국가 의료진 교육과 의료체계 구축에 힘써 왔습니다. 특히 몽골과 미얀마에서는 지속적인 교육과 협력 사업을 벌여 현재는 현지 의료진이 신장 등 장기이식 프로그램을 운영할 수 있는 단계에 이르렀다. 지금까지 수백 명의 해외 의료인들이 한국에서 연수와 교육을 받았습니다.
코로나19 팬데믹 당시에는 의료사각지대에 방치된 노숙인 등을 돕기 위해 나섰다. 2021년 명동성당 인근 옛 계성여고 운동장에 야전병 같은 천막을 치고 ‘라파엘 나눔 홈리스클리닉’을 개설했다. 이 진료소에서는 지금까지 2만 명이 넘는 홈리스와 독거노인 환자가 내과, 치과, 피부과 진료를 받았다.
안 교수는 어려운 이웃을 위한 지속가능한 도움의 시스템 구축에도 헌신했다. 2015년 설립된 라파엘나눔재단과 라파엘아카데미는 의료인과 대학생, 일반 시민들이 봉사활동에 참여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은퇴 의료인들을 위한 시니어 아카데미는 경험 많은 전문가들이 제2의 인생을 사회적 가치 실현에 활용할 수 있도록 돕는 혁신적인 모델로 평가받고 있다.
2009년 설립한 사단법인 ‘생명잇기’를 통해 장기기증과 장기이식의 윤리적 기반을 마련하고, 아시아 각국 전문가들과 협력하여 투명하고 공정한 장기이식 체계 구축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350편이 넘는 학술논문과 다수의 특허를 발표했고, 세계이식학회 이사와 WHO 장기기증 태스크포스 위원으로 활동하며 국제 의료계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국적·종교를 따지지 않고 가난하고 병든 이들을 돌보아온 안 교수의 업적은 단순한 봉사가 아닌 인간존엄을 지키기 위한 활동이었다. 만해 한용운 선생의 삶으로 보여준 자비·평화·생명존중 정신을 아름답게 구현한 사례 가운데 하나라고 할 것이다.
2026 만해대상 문예부문 추천서
정호승 시인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시 ‘수선화에게’ 중에서)
누구나 한번쯤은 들어본 시 구절이다. 이 작품이 수록된 정호승 시인의 1998년 시집 ‘외로우니까 사람이다’는 1990~2000년대를 대표하는 베스트셀러 시집이자, 여전히 사랑받는 스테디셀러다. 특히 시 ‘수선화에게’는 외로운 현대인들의 상처 입은 가슴에 먹먹함을 남겼다.
정 시인은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서정시인 가운데 한 명이다. 그는 ‘슬픔이 기쁨에게’(1982) ‘서울의 예수’(1987) ‘사랑하다가 죽어버려라’(1997)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라’(1999) 등 대중의 기억에 남는 시집을 수두룩하게 남겼다.
유독 음악인들의 사랑을 받은 시인이기도 하다. 김광석·이동원·양희은·안치환 등이 그의 시를 노래로 만들어 불렀다. 이동원의 ‘이별노래’ 안치환의 ‘인생은 나에게 술 한 잔 사주지 않았다’ 양희은의 ‘수선화에게’ 등이 대표적. 그의 시 70곡 이상이 노래로 만들어졌다. ‘고래를 위하여’ ‘내가 사랑하는 사람’ ‘봄길’ ‘밥그릇’ 등의 작품은 중고교 교과서에도 실렸다.
1950년에 경남 하동에서 태어나 경희대 국문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1972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동시, 1973년 대한일보 신춘문예 시, 1982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소설로 당선됐다. 소월시문학상, 정지용문학상, 편운문학상, 가톨릭문학상, 상화시인상, 공초문학상, 김우종문학상, 하동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정호승은 오래 많은 독자의 사랑을 받아왔다. 그 비결은 뭘까. 그의 시가 무엇보다 쉽다는 점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누구나 읽고 전율할 수 있는 시다. 특유의 단정한 단문은 슴슴하지만, 깊은 맛을 낸다. 따뜻하고 정갈한 언어로 인생의 소중함을 일깨운다.
정호승의 시에는 종교적 시어가 많다. 그는 독실한 가톨릭 신자다. 그러나 불교적 이미지도 적지 않다. 작년 조선일보 인터뷰에서 그는 “인간은 종교적 존재”라며 “예수님과 부처님이 내 인생의 스승이자 내 삶의 어떤 표상과 지향점을 가르쳐 준다”고 했다. “부처님께서는 자족(自足)하는 사람이 가장 큰 부자라고 하셨습니다. 자족은 마음의 세계잖아요. 만족한다는 마음은 무엇일까. 시란, 인간의 마음을 알아가고자 하는 과정입니다. 이런 저의 생각이 종교성과 연결되는 것 같습니다.”
등단 50년을 넘긴 시인은 여전히 단단한 구력을 자랑한다. 작년 열다섯 번째 시집 ‘편의점에서 잠깐’을 펴냈다. 시집에 실린 125편 중 100편이 미발표 신작 시였다. 2023년에 펴낸 열네 번째 시집 ‘슬픔이 택배로 왔다’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수록된 시 115편 중 106편이 미발표 작품이었다.
시인은 10여 년 간 기자 생활을 했다. 그런 이력이 시대의 사회상을 자연스레 시에 녹이는 배경이 되었을 수 있다. ‘택배’나 ‘편의점’ 같은 시어로 동시대성을 단단히 쥘 줄 아는 시인에게 나이 듦은 어쩌면 이점인지도 모른다.
‘슬픔이 택배로 왔다/ 누가 보냈는지 모른다/ 보낸 사람 이름도 주소도 적혀 있지 않다/ 서둘러 슬픔의 박스와 포장지를 벗긴다/ 벗겨도 벗겨도 슬픔은 나오지 않는다/ 누가 보낸 슬픔의 제품이길래/ 얼마나 아름다운 슬픔이길래 사랑을 잃고 두 눈이 멀어/ 겨우 밥이나 먹고 사는 나에게 배송돼 왔나…’ (시 ‘택배’ 중에서)
그는 “시라는 장르는 나이 든 삶과 함께 간다”며 “바닷물에서 물이 다 증발하고 소금만 남은 시기인데, 그 소금 같은 것”이라고 했다. 시인은 “그 장점으로 시집 한 권을 더 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한국 시단에서 서정시는 점점 귀해지고 있다. 그러나 정호승은 꿋꿋이 한국 서정시의 명맥을 잇는다. 시인은 “내가 아무리 21세기를 사는 현대인이지만, 전통적인 서정을 이어가는 한국 시인이고 싶다”고 했다. 그에게 서정(抒情)이 무엇인지 묻자 그는 이렇게 답했다. “시에서 서정은 밥할 때 마지막에 붓는 물과 같습니다.” 물을 붓지 않으면 밥을 지을 수 없듯, 그에게 서정은 시를 가능하게 하는 필요조건이다. 그는 “인공지능의 시대에도 서정은 있을 것”이라며 “2030 젊은 시인들도 현대를 살면서, 또 다른 서정성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등단 반세기가 넘었음에도 시대를 놓치지 않는 감수성과 성실함으로 독자들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고 있는 정호승 시인을 2026 만해대상 문예부문 수상자로 추천한다.
박명성(63) 신시컴퍼니 예술감독
박명성 신시컴퍼니 예술감독을 빼고는 한국 뮤지컬의 역사를 말 할 수 없다. ‘빌리 엘리어트’ ‘마틸다’ ‘맘마미아!’ ‘시카고’ ‘아이다’ ‘렌트’ 등 누구보다 놀라운 흥행 신화를 써내려온 제작자였지만, 동시에 무엇이 우리 공연계 미래에 도움이 될지 고민 하고 내다보며 고되고 어려운 길을 선택한 무대 예술가들의 맏형 역할을 해왔다. 그는 지금 본고장 최고 권위의 토니상을 휩쓸고 브로드웨이에서 1억 달러 매출을 돌파하며 주목받고 있는 ‘K뮤지컬 성공 신화’의 첫발을 뗀 산파역이었으며, 여전히 한국 공연예술을 든든하게 지탱하는 기둥이다.
공연 제작자의 역할은 작품 선정부터 충실한 제작, 개막 이후 쫑파티까지 모든 과정을 책임지는 것. 박명성 감독은 제작자를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먼 꿈을 꾸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1990년대까지 한국 뮤지컬은 사실상 ‘무법천지’였다. ‘캣츠’ 등 브로드웨이 인기 뮤지컬을 무단 복제해 공연하다 해외 제작사에 소송을 당해 거액을 물어내는 창피를 당하기도 했다. 박명성 프로듀서는 1998년 정식 판권료를 지불하고 브로드웨이 뮤지컬 ‘더 라이프’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공연해 대성공을 거뒀다. 대기업이 아닌 민간 제작사의 첫 라이선스 작품이었다.
뮤지컬은 배고픈 예술이자 연극의 곁가지 장르라고 생각하던 시기, 신시컴퍼니가 브로드웨이 공연 4년 만에 라이선스로 무대에 올린 ‘렌트’는 설앤컴퍼니의 메가 히트작 ‘오페라의 유령’과 함께 국내 뮤지컬 시장의 판도를 바꿔 놓았다. 그뿐 아니라 그는 ‘맘마미아!’ ‘빌리 엘리어트’ ‘마틸다’ 등의 작품을 흥행시키며 뮤지컬 관객을 중년층과 가족, 남녀노소로 넓힌 주역이기도 하다.
2001년엔 ‘렌트’를 쓴 극작가 조너선 라슨의 자전적 유작 ‘틱, 틱… 붐!’을 서울의 대·중·소극장에서 동시에 개막하는 최초의 ‘미친 짓’을 벌였다. 다음 해엔 유럽 뮤지컬 ‘겜블러’를 극단 산울림 임영웅 대표의 연출로 일본 14개 도시에서 40여 일간 순회 공연하는 새 역사를 썼다. 한국 사실주의 연극의 ‘태두’였던 극작가 차범석의 대표작 ‘산불’을 해외 창작진과 함께 뮤지컬 ‘댄싱 섀도우’로 만들어 막대한 적자를 보기도 했다.
이후 박명성 감독의 제작사 신시컴퍼니는 공연계에서 이른바 ‘돌려막기’의 대명사가 됐다. 안정적 수익 창출에 안주하는 대신 도전적이고 실험적인 작품을 만들어 손해를 보고, 스테디셀러 히트작을 무대에 올려 손해를 벌충하길 반복했다. 민간 상업 제작사임에도 돈을 벌어 쌓아놓지 않고 사람과 공연에 재투자하는 일종의 ‘비영리 공익 단체’같은 행보다. 이 때문에 박 감독의 신시컴퍼니 작품에 출연하는 배우들은 으레 다른 작품보다 낮은 출연료를 감수하며 기꺼이 새로운 도전에 함께 한다. 공연계에 ‘신시 페이’라는 유행어가 생긴 이유다.
1963년 전남 해남에서 태어나 서울예술대 무용과와 단국대 연극영화과를 나왔고, 단국대 대중예술대학원 석사 과정을 마쳤다. 1982년 극단 동인 극장에 입단한 뒤 1987년 신시 창단 멤버로 본격적인 연극 활동을 시작했다. 1999년 신시컴퍼니 대표를 맡아 뮤지컬의 대중화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켰고 2011년부터 현재까지 신시컴퍼니 예술감독을 맡고 있다.
공연계에선 “신시컴퍼니의 차별화된 행보의 근간엔 연극에서 출발한 ‘신시의 정신’이 있다”(원종원 순천향대 교수)고 말한다. 극단 체제가 아닌데도 극단 못지않은 끈끈함, 공연과 무대를 대하는 태도와 의리, 사명감이 박명성 감독의 유별난 행보를 뒷받침해왔다. 그 자신 연극으로 출발해 늘 연극인으로서 마음 자세를 잃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금전적 수지를 따지는 제작자들은 엄두도 못 낼 연극 작품들을 무대에 올리는 것도 그의 역할이었다. 5.18 광주를 다룬 차범석희곡상 수상작 ‘푸르른 날에’를 비롯, 연극계 대배우들의 열연으로 매 시즌 화제를 모은 셰익스피어 ‘햄릿’, 뛰어난 작품성으로 수많은 배우를 발굴하고 스타로 만든 ‘아버지와 나와 홍매와’, ‘레드’, ‘렛미인’ 등도 그가 제작한 작품들이다.
박 감독이 생전에 양아버지처럼 따르며 극진히 모셨던 한국 사실주의 연극의 대표적 극작가 차범석 선생의 유지를 받들어, 차범석연극재단과 매년 시상하는 차범석희곡상을 마치 자신의 일처럼 돌본다는 건 공연계에서 널리 알려진 이야기.
독실한 불자로서 불교적 가르침을 담은 작품도 다수 제작했다. 원효 대사의 일대기를 다룬 ‘무애무무애가’, 연극 ‘바라나시’와 ‘싯다르타’, 그리고 만해 한용운의 일대기를 뮤지컬화 한 ‘님의 침묵’ 등 다양한 불교적 소재를 현대 무대 미학으로 승화시켰다.
연극인들 삶이 어려운 걸 누구보다 잘 아는 그는 재단법인 한국연극인복지재단 일에도 진심이었다. 후원회장을 맡아 음으로 양으로 재단을 돕던 그는 2023년 재단 후원회 ‘복덕방’을 결성하고 후원회장으로서 매년 연말 ‘시어터치 콘서트’ 등 모금 행사를 직접 기획하는 등 본격적으로 기부 유치의 물꼬를 텄다. 2020년부터 그가 조성한 기부금이 총 8억 5000만 원 이상이다. 박 감독은 올해 6월 29일 한국연극인복지재단 초대 이사장으로 취임했다.
2015년 광주하계유니버시아드 개·폐회식 총감독, 2017년 FIFA U-20월드컵 개막식 총감독, 2023년 전국체전 장애인체전 개·폐회식 총감독 등을 맡았다. 서울연극협회장과 한국공연프로듀서협회 초대 회장, 한국 뮤지컬협회 이사장 등을 역임했다. 대한민국 문화예술상(대통령상·2010년)과 대한민국 예술원상(2023년)을 받았다. 옥관문화훈장을 수훈했다. 박 감독은 외부 행사 연출이나 예술감독직 수행으로 받는 급여 역시 연극인복지재단과 차범석연극재단에 기부한다.
좁고 척박한 시장, 갖가지 악조건에도 불굴의 끈기와 도전으로 외길을 걸어온 박명성 예술감독은 만해 한용운 선생의 삶과 예술에 대한 열정을 기리는 2026 만해문예대상 수상자로 손색이 없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