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문화

1961년 베를린장벽 탈출 사건, 신문에서 VR까지… ‘읽는 역사’에서 ‘경험하는 역사’로

스물한 살의 동독 국경수비병 콘라트 슈만은 철조망을 뛰어넘어 서베를린으로 탈출하는 장면을 사진기자 페터 라이빙이 카메라에 담고 있다. 오른쪽은 필자 <사진 KF XR 갤러리 스탭 촬영>

1989년 겨울,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다는 소식은 신문 1면을 장식했다. 장벽 위에 올라 망치를 휘두르며 환호하던 사람들의 모습은 지금도 선명하다. 얼마 뒤 제약회사 화이자는 학회장에서 작은 문진을 나누어 주었다. 투명한 수지 속에는 “베를린 장벽에서 가져온 벽돌 조각”이 들어 있었다. 손바닥 위의 작은 파편은 냉전의 종식을 손에 쥐게 해 준 작은 기념물이었다.

10여 년 전 베를린에서 열린 국제성형외과학회에 참석했을 때는 체크포인트 찰리에서 당시 군복을 빌려 입고 기념사진을 찍었다. 장벽은 이미 사라졌지만, 그 흔적은 도시 곳곳에 남아 역사를 증언하고 있었다.

그리고 어제, 서울 을지로 KF XR 갤러리에서 VR 작품 ‘Der Sprung(도약)’을 체험했다. 이 작품은 시간을 거슬러 1961년으로 우리를 데려간다. 베를린 장벽이 세워지기 시작한 지 이틀째 되던 날, 스물한 살의 동독 국경수비병 콘라트 슈만은 철조망을 뛰어넘어 서베를린으로 탈출했다. 그 결정적인 순간을 사진기자 페터 라이빙이 포착했고, 그 한 장의 사진은 냉전을 상징하는 역사적 이미지가 되었다. VR은 그 사진 속으로 관람객을 초대한다. 헤드셋을 쓰는 순간 나는 더 이상 관람객이 아니었다. 눈앞에는 철조망이 펼쳐졌고, 그 너머에는 한 청년이 자신의 운명을 바꾸는 결단의 순간이 기다리고 있었다.

귀가하는 길에 문득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영화 『라쇼몽』과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덤불 속」이 떠올랐다. 같은 사건을 여러 사람이 각기 다르게 말하는 이야기다. 그러나 ‘Der Sprung’은 조금 달랐다. 작품은 콘라트 슈만, 사진기자 페터 라이빙, 그리고 현장에 있던 서베를린 경찰관의 시선을 차례로 따라간다. 세 사람의 시선은 서로를 부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하나의 역사적 순간을 입체적으로 완성해 주었다.

신문은 역사를 전했고, 기념품은 그것을 손에 쥐게 했으며, 여행은 그 장소에 나를 세워 주었다. 그리고 VR은 마침내 그 역사의 한순간 속으로 나를 걸어 들어가게 했다.

역사는 기록으로만 남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기술을 통해 다시 경험되는 시대를 맞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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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건

이대 해부학교실 초빙교수, 인하의대 명예교수, '인류의 전쟁이 뒤바꾼 의학세계사'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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