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왕위에 있은 지 제삼 년에 그의 모든 지방관과 신하들을 위하여 잔치를 베푸니 바사와 메데의 장수와 각 지방의 귀족과 지방관들이 다 왕 앞에 있는지라”(에 1:3)
에스더서는 첫 장부터 술 냄새가 진동합니다. ‘잔치’로 번역된 히브리어 ‘미쉬테’는 본래 ‘술자리’를 의미합니다. 이 단어가 구약 전체에 마흔 번 남짓 나오는데, 그중 절반 가까이가 짧은 에스더 한 권에 몰려 있습니다. 에스더서는 잔치로 시작해서 잔치로 끝납니다. 역사의 모든 중요한 결정이 술자리에서 이루어집니다.
첫 잔치부터 규모가 어마어마합니다. 아하수에로 왕은 무려 180일 동안이나 잔치를 엽니다. 온갖 비싸고 진귀한 것들을 다 끌어다 선보였습니다. 반년 동안 잔치를 매일같이 벌이려면 상상을 초월하는 막대한 국가 재정이 지출되었을 것입니다. 목적은 단 하나, 왕의 자기 과시였습니다. 잔치가 벌어지는 기간 동안 온 수산 성이 왕의 부와 권력을 찬양했습니다.
지금도 온 세상이 잔치 중입니다. 저마다 자기만의 화려한 식탁을 차리고, 가진 것을 늘어놓고, 세상의 박수를 기다립니다. 사람들은 남들보다 더 누리고, 더 돋보이고, 더 많은 찬사를 받는 잔치가 180일이 아니라 평생 계속되기를 바랍니다. 잔치의 주인공이기 위해 온갖 종류의 비용을 치릅니다.
그런데 에스더서는 슬그머니 다른 이야기를 흘립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술에 취해 흥청거리던 바로 그 잔치 자리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었는지 상상이나 했을까요? 왕이 술김에 와스디를 불러냈고, 이를 거부한 와스디는 폐위당했으며, 결국 그 빈자리에 포로 민족 출신 고아 소녀 에스더가 들어오게 됩니다. 잔치를 벌인 자들은 자기가 주인공인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사실 그들은 섭리의 무대에 마련된 무대 장치에 불과했습니다.
하나님과 가장 멀어 보이는 타락한 자리에서도 하나님의 섭리가 한 치의 오차 없이 작동하고 있었습니다. 찬양의 대상이 오직 왕이고 화제의 중심이 인간의 탐욕뿐인 그 쾌락의 절정에서 말입니다. 에스더서 전체를 통틀어 ‘하나님’이라는 이름은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지만, 하나님은 그 술 냄새 나는 현장에서 단 한 번도 자리를 비우신 적이 없었습니다.
에스더서는 부림절이라는 잔치로 마무리가 됩니다. 부림절은 이스라엘 민족의 구원을 축하하는 자리였습니다.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께서 친히 베푸신 은혜의 잔치였습니다.
지금도 온 세상은 잔치 중입니다. 모두가 흥청망청입니다. 술에 취하고, 돈에 취하고, 성에 취하고, 성공에 취하고, 자아에 취해 비틀거립니다. 나는 과연 어느 테이블에 앉아 무엇을 기대하고 있는 걸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