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사람

오늘 인천상륙작전기념일…아, 맥아더 장군이여

지난 5월 9일 인천상륙작전기념관을 방문하였다. 인천 지역에 오래 근무하면서도, 월미도의 자유공원은 여러 번 찾았지만 정작 이 기념관은 늘 지나치기만 했던 곳이었다. 기억을 더듬어 보아도 내부를 천천히 둘러본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안보견학 버스는 있었지만, 전시관 안은 놀랄 만큼 한산했다. 전쟁의 기억은 여전히 국가적 상징으로 남아 있지만, 그것을 직접 마주하려는 사람은 점점 줄어드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가장 오래 머문 곳은 당시 1급비밀로 분류되었던 전문(電文)들이 전시된 공간이었다.
1950년 6월 24일 밤 주한 미국대사의 보고 전문, 6월 26일 유엔 한국위원단의 보고, 6월 27일 트루먼 대통령의 군사지원 성명, 그리고 무엇보다도 6월 30일 맥아더 장군의 전선 시찰 보고 전문이 눈을 붙들었다.

그 문서 속에는 전쟁 발발 불과 닷새 뒤의 대한민국이 적나라하게 기록되어 있었다.

맥아더의 눈에 비친 한국군은 이미 무너진 군대였다. 지휘체계는 붕괴되었고, 보급망은 끊어졌으며, 병사들은 중화기를 버린 채 소총 한 자루만 들고 흩어져 남하하고 있었다. “심한 혼란상태”, “상호 연락체계의 완전 두절”, “보급품과 중화기의 상실”이라는 표현은 패전의 기록이라기보다 붕괴 직전 국가의 임상기록처럼 읽혔다.

그러나 놀라웠던 것은 그 다음 문장이었다. 그의 기록은 피난민들의 모습으로 이어졌다. “공산주의 통치를 거부하는 피난민의 행렬.” 그들은 혼란 속에서도 질서를 유지하고 있었고, 미국에 대한 신뢰와 자유에 대한 희망을 가지고 있었다고 적혀 있었다.

나는 그 대목에서 오래 멈추었다. 어쩌면 맥아더가 움직인 이유는 단순히 군사적 계산 때문만은 아니었을지 모른다. 이미 붕괴된 군대보다도, 폐허 속에서도 자유를 포기하지 않으려는 민간인들의 행렬이 그로 하여금 “이들은 지켜야 할 사람들”이라는 판단을 내리게 한 것은 아니었을까. 자유민주주의는 완전무결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보상이 아니라, 그것을 잃지 않으려는 의지를 가진 이들에게 허락되는 체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전시장 안쪽에는 맥아더 장군의 흉상이 놓여 있었다. 다섯 개의 별이 달린 군복을 한참 바라보았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그가 없었다면, 내가 태어난 1957년의 이 땅은 아마 ‘자유’라는 단어 자체를 배우지 못한 곳이었을지도 모른다. 지금 내가 의심하고, 토론하고, 글을 쓰고, 누군가를 비판할 수 있는 이 평범한 일상 자체가 사실은 누군가의 결단과 희생 위에 세워진 것임을 새삼 느끼게 되었다.

기념관을 나오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자유는 단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지킬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들에게만 유지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자유는 헌법 속 문장이 아니라, 그것을 지키려는 사람들의 태도 속에서 살아남는다.’

아, 대한민국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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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건

이대 해부학교실 초빙교수, 인하의대 명예교수, '인류의 전쟁이 뒤바꾼 의학세계사'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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