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칼럼

평시에 실전을 사는 사람들…총성 없는 전장, 수술실의 전우들

Hic et Nunc, Intra Nos’

나는 군 병원 수술실 10번방을 자주 쓴다. 예정 수술이 있는 날도 있지만, 응급수술이 잡히면 가장 먼저 긴장이 감도는 곳도 그 방이다. 문이 닫히면 바깥의 시간은 잠시 멈추고, 안에서는 오직 환자의 맥박과 혈압, 출혈량과 산소포화도만이 시간을 말해준다.

그 방에는 늘 함께 움직이는 이들이 있다. 민간 간호사 한 명, 군 간호장교 세 명. 그중 한 명은 소령으로, 응급수술이 몰릴 때면 여러 방의 배정을 조정하며 전장을 지휘하듯 수술실 전체를 움직인다. 두 명의 중위 간호장교는 누구보다 빠르게 상황을 읽고, 말이 떨어지기 전에 필요한 기구를 준비한다. 그리고 나까지, 다섯 사람이 한 팀이 된다.

며칠 전 우리는 함께 핸드볼 포스트시즌 준결승 경기를 보러 갔다. 선수들에게서 사인볼도 받았다. 경기 후에는 작은 식당에 들러 뒤풀이를 했다. 웃음이 많았고, 군복 대신 평상복을 입은 얼굴들은 한결 젊어 보였다. 그러나 나는 식탁 한쪽에서 문득 평소 하지 못한 말을 꺼냈다.

“여러분은 내게 단순한 스크럽 간호사나 순환간호사가 아닙니다. 전우입니다.”

조금 뜻밖의 말이었는지 모두 잠시 웃었다. 그러나 나는 진심이었다. 수술실에서 사람은 가장 위급한 순간에 함께 있는 사람을 잊지 못한다. 환자의 혈압이 떨어지고, 출혈이 예상보다 커지고, 몇 초의 판단이 결과를 가를 때, 그 자리에 함께 선 사람은 직책 이상의 존재가 된다.

라틴어로 hic et nunc라는 말이 있다. “여기, 그리고 지금.” 수술실은 늘 그렇다. 어제의 명성도, 내일의 계획도 소용없다. 지금 여기에서 환자를 살려내는 일만 남는다.

또 다른 라틴어 intra nos는 “우리끼리만 아는 사이에”라는 뜻이다. 수술실에는 설명하기 어려운 침묵의 언어가 있다. 눈빛만으로 다음 기구를 건네고, 한숨의 길이만으로 긴박함을 읽는다. 누가 먼저 말하지 않아도 서로의 긴장을 안다. 그것은 바깥사람에게는 잘 보이지 않는 신뢰다.

그날 식사 자리에서 소령 간호장교가 의미 있는 말을 했다. 육군대학에서 보병, 포병, 기갑, 공병, 통신 등 여러 병과 장교들과 함께 교육을 받다 보면 모두 자기 병과의 중요성에 큰 자부심을 갖는다고 했다. 당연한 일이다. 각 병과는 군을 움직이는 기둥이다.

그러나 그녀는 이어 말했다.

“그들은 비상시에 대비한 훈련을 합니다. 하지만 우리 의무병과는 실제 환자를 받으며 늘 실전처럼 움직입니다.”

나는 그 말을 오래 생각했다. 많은 병과가 전쟁을 대비한다. 그러나 의무병과는 평시에도 이미 전쟁의 언어를 안다. 다만 그 전쟁은 적과의 전쟁이 아니라, 출혈과 감염, 통증과 시간 지연, 그리고 죽음과의 전쟁이다.

총성이 없는 전장도 있다. 메스와 봉합사, 흡인기와 모니터 알람으로 가득한 전장이다. 그곳에서는 누군가 쓰러지면 모두가 자기 자리에서 즉시 움직인다. 그리고 일이 끝나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음 환자를 맞는다.

그래서 나는 그들을 전우라 불렀다. 평시에 실전을 사는 사람들. 여기, 지금, 그리고 우리끼리만 아는 방식으로. (Hic et Nunc, Intra N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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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건

이대 해부학교실 초빙교수, 인하의대 명예교수, '인류의 전쟁이 뒤바꾼 의학세계사'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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