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칼럼

부처님오신날, ‘설법전’과 ‘수술실’의 공력(功力)

오늘 연등 하나를 달며 나는 묻는다. 나는 내 자리에서 어떤 공력을 쌓고 있는가. 내공은 환자를 향한 자비와 책임의 다른 이름일 수 있을까. 형상보다 본질을, 장식보다 마음을 더 가까이하고 있는가. 부처님오신날, 밝힌 등불들이 우리 마음에도 작은 길 하나를 열어 주길 바란다. 그리고 그 길에서 우리가 쌓아 가는 내공이 누군가의 고통을 조금이나마 덜어 주는 빛이 되기를 소망한다.-본문에서 <AI 생성 이미지>

부처님오신날이다. 도심의 절마다 연등이 꽃처럼 피어 있고, 사람들은 한 송이 마음을 달아 부처님의 탄생을 기린다. 누군가는 불상 앞에서 합장하고, 누군가는 조용히 등을 밝힌다. 그러나 어떤 절에는 불상이 없다.

진신사리가 모셔진 법당, 혹은 설법전은 오히려 더 비어 있고 더 맑다. 형상이 사라진 자리에는 설법자의 공력(功力)이 자리한다.

나는 이 장면이 오래전부터 수술실을 떠올리게 했다. 수술실 역시 장식이 없다. 장엄한 불상 대신, 홀로 서서 칼을 잡은 외과의가 있을 뿐이다. 남는 것은 장비도, 겉모습도 아니다. 환자 한 사람을 위해 쌓아 온 내공(內功)이다.

불교의 무불상(無佛像) 전통은 단순한 절제나 상징이 아니다. 부처님을 모신다는 행위의 본질이 “상(像)을 의지하지 말고, 가르침(法)을 의지하라”는 뜻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형상은 부드럽게 뒤로 물러나고, 그 자리를 수행자의 공력이 채운다. 그래서 설법전에는 법력이 뛰어난 스님이 설법할 때, 불상이 없는 것이 오히려 자연스럽다. ‘살아 있는 부처’가 바로 앞에서 법을 펴고 있기 때문이다.

의사들 사이에서도 “내공 있다”는 말을 흔히 쓴다. 기술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흔들리지 않는 마음, 정확한 판단, 순간의 결단, 누적된 삶의 경험…. 그 모든 것이 모인 힘을 말한다. 수술실의 침묵을 채우는 것은 바로 이러한 내공이다.

부처님오신날을 맞아 다시 생각한다.

설법전이 불상 없이도 설법자의 공력으로 가득 차듯, 수술실도 외과의사의 내공으로 환자의 삶을 다시 밝힌다. 이 두 공간은 전혀 다른 듯하지만, 사람을 살리고 길을 밝히며 고통을 덜어 주려는 마음에서는 닮아 있다.

오늘 연등 하나를 달며 나는 묻는다. 나는 내 자리에서 어떤 공력을 쌓고 있는가. 내공은 환자를 향한 자비와 책임의 다른 이름일 수 있을까. 형상보다 본질을, 장식보다 마음을 더 가까이하고 있는가.

부처님오신날, 밝힌 등불들이 우리 마음에도 작은 길 하나를 열어 주길 바란다. 그리고 그 길에서 우리가 쌓아 가는 내공이 누군가의 고통을 조금이나마 덜어 주는 빛이 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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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건

이대 해부학교실 초빙교수, 인하의대 명예교수, '인류의 전쟁이 뒤바꾼 의학세계사'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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