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

‘늙음’을 지우려는 시대…문학과 의학이 경고하는 ‘노인혐오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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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국군수도병원 성형외과 황건 전문의가 발표한 논문 「The Last Revolt Through the Lens of Anti-Aging and Plastic Surgery」의 내용을 바탕으로, 최근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노인혐오와 노인학대 문제의 구조적 배경을 독자 여러분께서 보다 쉽게 이해하실 수 있도록 재구성한 것입니다. 원 논문은 노화 공포와 안티에이징 문화가 인간의 가치 인식과 의료 선택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분석하고 있으며, 본 글에서는 이러한 문제의식을 오늘날 한국 사회의 고령화 현실과 연결해 살펴보고자 합니다. <편집자>

최근 우리 사회에서 노인혐오와 노인학대 문제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고령화 속도가 세계에서 가장 빠른 나라 가운데 하나인 한국에서 노인은 존중의 대상이라기보다 부담의 대상으로 인식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이러한 분위기는 단순한 세대 갈등을 넘어 사회 구조와 문화, 그리고 인간관 자체가 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나는 최근 프랑스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 <최후의 반란(The Last Revolt)>을 읽으면서, 그리고 의료 현장에서 노화와 관련된 환자들을 진료하면서 오늘의 현실과 놀라울 정도로 닮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 작품은 미래 사회에서 노인이 사회적 부담으로 간주되어 격리 시설에 보내지는 이야기를 그린 디스토피아 소설이다. 그러나 그 내용은 허구라기보다 지금 우리가 가고 있는 방향을 과장하여 보여주는 경고처럼 느껴진다.

소설 속 사회에서는 젊음이 하나의 종교처럼 숭배된다. 사람들은 주름과 흰머리를 숨기기 위해 집착하고, 늙는다는 사실 자체를 실패로 받아들인다. 노인은 보호해야 할 존재가 아니라 관리해야 할 존재로 취급된다. 결국 주인공들은 노인 수용 시설에서 탈출해 산속으로 들어가 저항을 시작하지만, 국가 권력은 군대와 무기를 동원해 그들을 진압한다. 마지막에 남는 말은 단 하나다.
“너도 늙는다.”

이 장면을 읽으며 지금 우리 사회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 최근 뉴스에서는 요양원 학대, 독거노인 방치, 가족에 의한 노인폭력, 고령자 차별 같은 사건들이 끊이지 않는다. 노인을 돌봄의 대상이 아니라 비용의 대상으로 보는 시선이 점점 강해지고 있다. 노인혐오라는 말이 더 이상 과장이 아닌 현실이 된 것이다.

성형외과 의사로서 나는 또 다른 측면에서 이 문제를 본다. 병원을 찾는 많은 환자들이 주름을 없애고 싶다고 말한다. 물론 외모 개선은 개인의 선택일 수 있다. 그러나 때로는 그 선택이 개인의 의지라기보다 사회적 압력에서 비롯된 경우도 적지 않다. 늙어 보이면 경쟁에서 밀린다는 두려움, 젊지 않으면 가치가 떨어진다는 불안이 사람들을 시술실로 오게 만든다.

소설 속에서도 노인들이 젊은 사람으로 보이기 위해 머리를 염색하고 신분을 숨기지만 결국 손의 주름 때문에 들통나는 장면이 나온다. 얼굴은 가릴 수 있어도 손은 속일 수 없다는 설정이다. 실제 의료 현장에서도 손 주름 치료나 안티에이징 시술을 원하는 환자가 늘고 있다. 그만큼 사회가 노화를 자연스러운 과정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의학은 인간의 고통을 줄이기 위해 존재한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늙는 것 자체를 질병처럼 여기기 시작했다. 노화를 치료해야 할 문제로만 보는 시각은 결국 노인을 사회에서 밀어내는 문화와 연결될 수 있다. 젊음을 절대적인 기준으로 삼는 사회에서는 늙는 순간 가치가 줄어들기 때문이다.

이러한 분위기는 의료 현장에서도 느껴진다. 최근 진료했던 해면정맥동 동정맥루 환자는 안구 돌출과 충혈 때문에 심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치료를 통해 증상은 좋아졌지만, 환자가 가장 힘들어했던 것은 통증보다 외모 변화였다. 질병 자체보다 타인의 시선이 더 큰 고통이 되는 경우를 우리는 자주 본다. 외모 중심 사회가 만들어 낸 또 다른 고통이다.

문학과 의학은 서로 다른 분야처럼 보이지만 인간을 이해한다는 점에서 연결되어 있다. <최후의 반란>이 보여주는 노인혐오 사회는 과장이 아니라 우리가 경계해야 할 미래일 수 있다. 고령화가 진행될수록 노인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체의 윤리 문제로 바뀐다.

노인은 약해지기 때문에 존중받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결국 그 자리에 가기 때문에 존중받아야 한다. 오늘의 젊음은 내일의 노년이기 때문이다. 노인을 두려워하는 사회는 결국 자신의 미래를 두려워하는 사회다. 노인을 배제하는 사회는 결국 자신을 배제하는 사회가 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강한 안티에이징 기술이 아니라, 늙음을 받아들이는 성숙한 문화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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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건

이대 해부학교실 초빙교수, 인하의대 명예교수, '인류의 전쟁이 뒤바꾼 의학세계사'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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