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은 단순한 자서전이 아니라, 인간의 내면과 신앙을 탐구한 영적 대서사시입니다. 어린 시절의 회상에서 시작해 청년기의 방황, 마니교와 철학의 영향, 그리고 회심과 세례, 어머니 모니카와의 이별을 거쳐, 마지막에는 시간과 창조, 삼위일체의 신비에 이르기까지 여정을 담고 있습니다. 시리즈는 그의 삶과 사상을 따라가며, 인간의 연약함과 은총의 깊이를 동시에 보여줄 것입니다. <편집자>

아우구스티누스는 열아홉 살 무렵 고향 타가스테를 떠나 지중해 연안의 대도시 카르타고로 유학을 떠났다. <고백록> 제3권은 그가 이 도시에서 겪은 청년기의 격정과 영적 방황을 담고 있다. 그는 “나는 모든 세계가 끓어오르는 용광로 같은 도시, 가증스러운 사랑으로 들끓는 도시 속으로 뛰어들었다”고 고백한다. 카르타고는 번영과 퇴폐가 공존하는 국제도시였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이곳에서 학문적 야망을 키우는 동시에, 쾌락과 허영에 깊이 빠져들었다.
학문과 문학, 그러나 공허한 열정
카르타고에서 그는 수사학과 철학을 본격적으로 공부했다. 웅변술과 논증 능력은 출세의 지름길이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학문적 야망에 불타며, 세속적 성공을 위해 글과 말의 기술을 연마했다. 그러나 그는 곧 학문적 열정이 공허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당시 학생들 사이에는 싸움, 조롱, 도덕적 타락이 만연했고, 학문은 진리 탐구보다 명예와 이익을 위한 수단에 불과했다.
그는 또 연극과 문학에 심취했다. 특히 베르길리우스의 <아이네이스>에 등장하는 아이네아스와 디도의 비극적 사랑 이야기는 그에게 큰 감동을 주었다. 그러나 그는 나중에 이 경험을 회상하며, 허구의 눈물에 빠지면서도 자기 영혼의 병에는 무심했다고 자책했다. “나는 극장에서 울면서도, 내 영혼의 상처에는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다”고 고백한 대목은 오늘날에도 문학과 예술의 역할을 성찰하게 한다.
키케로의 <호르텐시우스>, 그리고 진리에 대한 갈망
아우구스티누스는 이 시절 로마의 정치가이자 철학자 키케로의 저술 <호르텐시우스>를 접한다. 이 책은 철학적 사색의 가치를 역설하며 독자에게 지혜를 사랑하라고 권유하는 내용이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이 책을 읽고 큰 충격을 받았다. 그는 처음으로 세속적 출세가 아니라 진리를 추구해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러나 문제는 성경이었다. 그는 철학적 탐구에 눈을 떴지만, 당시 라틴어 성경은 문체가 거칠고 단순했다. 웅변술과 수사학에 훈련된 그의 눈에는 성경이 조잡하고 수준 낮게 보였다. 그리하여 그는 성경을 멀리하고, 대신 더 세련되고 철학적인 가르침을 좇기 시작했다. 바로 이 틈을 파고든 것이 마니교였다.
마니교와 악의 문제
마니교는 페르시아 출신 선지자 마니(216~277)가 창시한 종교로, 선과 악의 이원론을 주장했다. 마니교에 따르면 선한 신이 세상을 창조했지만, 악이라는 또 다른 실체가 존재하여 빛과 어둠이 영원히 대립한다고 본다. 아우구스티누스는 “만일 하느님이 전지전능하시다면, 왜 악이 존재하는가?”라는 물음에 답을 찾지 못하고 있던 차에 마니교의 논리에 매료되었다.
마니교는 성경의 문자적 모순과 구약의 윤리적 난제를 비판하면서 지성인들에게 설득력을 발휘했다. 예컨대 아브라함의 일부다처제, 모세의 살인 사건 등은 기독교 신앙을 조롱하는 데 자주 사용되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이러한 공격 앞에서 변호할 수 없었고, 오히려 마니교의 수사학적 화려함에 빠져들었다. 그는 마니교의 ‘청자’ 등급 신도가 되었는데, 이는 정식 교도보다 낮은 단계였으나, 이미 그의 사상은 크게 기울어 있었다.
마니교의 매력과 한계
마니교는 아우구스티누스에게 두 가지 매력을 주었다. 첫째는 학문적 체계와 화려한 문체였다. 단순한 성경 이야기보다 세련되고 철학적으로 보였다. 둘째는 악의 기원에 대한 설명이었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악의 문제로 괴로워했는데, 마니교는 악을 독립된 실체로 설명하며 하느님을 변호하는 듯 보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그는 마니교의 한계를 깨닫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마니교의 교리와 천문학적 사실이 일치하지 않았다. 예컨대 일식과 월식 현상은 당시 과학자들이 이미 예측할 수 있었는데, 마니교 교리는 이를 설명하지 못했다. 그는 점차 마니교의 모순을 인식했고, 깊은 회의에 빠졌다.
어머니 모니카의 눈물과 꿈
아우구스티누스의 방황 속에서 어머니 모니카는 끊임없이 기도했다. 그녀는 아들이 마니교에 심취하는 것을 슬퍼하며 눈물로 호소했다. <고백록>에는 모니카가 꾼 꿈 이야기가 등장한다. 그녀는 꿈에서 긴 연단 위에 서 있었고, 그 옆에 슬픈 얼굴을 한 아우구스티누스가 있었다. 그러나 한 청년이 다가와 “당신의 아들은 당신과 함께 있다”고 말했고, 곧 아우구스티누스가 모니카 곁에 서 있는 것을 보았다.
이 꿈은 아들의 회심에 대한 하느님의 약속으로 받아들여졌다. 아우구스티누스는 훗날 이 일을 회상하며, 자신이 아무리 방황했어도 하느님은 이미 구원의 계획을 준비해 두셨다고 고백한다.
<고백록> 제3권은 학문적 열정, 문학적 감수성, 철학적 갈망, 그리고 종교적 방황이 얽힌 청년기의 자화상이다. 그는 카르타고에서 쾌락과 허영에 빠지면서도, 동시에 키케로의 글을 통해 진리를 향한 갈망을 키웠다. 그러나 그 갈망은 성경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마니교라는 사이비 종교에 붙들렸다.
아우구스티누스의 방황은 단순한 개인적 실패가 아니다. 오히려 모든 인간이 겪는 진리 탐구의 우여곡절을 보여준다. 그는 나중에 마니교를 떠나면서, 악은 실체가 아니라 선의 결핍이라고 정의했고, 하느님만이 진리의 근원임을 확신하게 되었다.
이 시기의 기록은 독자에게 묻는다. “나는 무엇을 진리라 믿고 있는가? 그 믿음은 허영과 욕망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은 4세기 카르타고를 넘어, 오늘 우리에게도 여전히 도전과 성찰을 던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