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월 다녀온 바이칼과 몽골 기행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브리야트족의 국기와 몽골 민간 신앙에 흔히 남아 있는 해와 달, 그리고 지구 땅(土)을 표상하는 상징이었다. 이러한 상징은 한국의 언어와 음악, 춤, 풍물놀이의 철학적 배경이 되는 천지인 삼신사상과 맞닿아 있다. 삼신사상은 고대 그리스의 삼위일체 사상과도 비견된다. 삼신이란 다름 아닌 해와 달, 그리고 지구의 땅을 뜻한다. 이는 신비한 영적 세계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직접 감지하고 분별할 수 있는 물리적 측면의 이치다. 지구의 땅에 살아가는 모든 생명체는 삼신의 덕으로 생성되고, 이 작용을 통해 조화로운 삶을 이룰 때 은혜로운 삶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이 문명의 철칙으로 자리 잡았다.
이 삼신사상이 표상된 놀이가 바로 최근 전 세계적으로 화제가 된 ‘오징어게임’이다. 이 놀이는 하늘을 뜻하는 원(ㅇ), 땅을 뜻하는 네모(口), 그리고 이 둘이 충돌하여 합을 이루는 각(△)의 도형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두 편으로 나뉜 아이들이 가위바위보로 원팀과 네모팀이 되고, 이긴 쪽은 원에서, 진 쪽은 네모에서 출발한다. 원팀은 하늘에서 출발해 땅과 사람을 표상하는 세모 칸을 지나 각에 이르려 하고, 네모팀은 이를 막아선다. 양편은 서로를 끌어내리거나 밀어내며 힘겨루기를 하고, 결국 각의 정점에 도달해 만세를 부르는 자가 승리한다. 그러나 진정한 의미에서 승자는 따로 없다. 이긴 자와 진 자가 충기(沖氣)하여 조화를 이루고, 그 합을 통해 정신이 하나로 통일된다는 데에 핵심이 있다. 이것이 원·방·각의 삼신사상이며 삼위일체의 사상이다.
우리 선조들은 모든 생명은 극성이 다른 두 씨가 어머니의 자궁 같은 중(土)에서 합을 이루어 탄생한다고 보았다. 한국 언어 또한 하늘소리인 초성과 땅의 소리인 종성이 모음이라는 중성에서 합을 이루어 하나의 글자와 말씨를 만들어낸다. 인간의 솜씨와 맵씨, 그리고 생명의 탄생 원리도 이와 같다. 정자와 난자가 자궁에서 만나 새로운 생명을 잉태하는 것 또한 삼신의 덕으로 설명되었다.
모든 씨는 땅에서 합을 이루어 태어난다. 땅은 만물을 길러내는 어머니의 자궁이다. 그래서 성씨 성(姓)도 여(女)와 생(生)이 합쳐져 만들어졌다. 결국 모든 씨는 어머니의 자궁에서 나오며, 그 사주팔자의 씨앗으로 평생을 살아간다고 보았다. 한국문화는 이처럼 중(土), 곧 서로 다른 두 에너지가 부딪혀 새로운 생명을 만들어내는 장(場)을 중시했다. 전기장, 자기장, 중력장과 같은 힘의 장이 그것이다. 한국문화의 언어와 놀이, 풍습은 모두 이 장의 철학을 담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모든 것을 판 위에 올려 서로 어울려 조화를 이루는 ‘판 문화’를 발전시켰다. 판굿과 마당놀이는 모두 고락을 함께하며 더불어 사는 대동사상을 실현한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처럼 극좌와 극우가 날뛰어 판을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극성이 부딪히더라도 진리와 진실에 합당한 살판을 만들기 위해 지혜를 모아야 한다. 판굿과 판놀이는 그 마당에서 일어나는 희로애락을 소리와 몸짓으로 풀어내는 것이었다.
삼신의 덕은 곧 자연의 덕이며 하늘님의 은혜다. 나는 이번 기행에서 옛 조상들이 살았던 저 너른 극동의 뜰에서 이를 보고 듣고 가슴에 새겼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