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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소 고백록⑤] 청년 루소의 감정의 소용돌이…”삶을 즐기기도 전에 삶이 빠져나가다”

장자크 루소(1712~1778)의 <고백록>은 서구 근대 자서전 문학의 출발점이자, 인간 내면에 대한 가장 용기 있는 탐구의 기록입니다. 루소는 자신의 삶을 있는 그대로 고백하며, 부끄러움조차 숨기지 않고 진실을 드러냅니다. <아시아엔>은 루소의 원전을 바탕으로 그의 유년기부터 철학자로서의 성숙, 글쓰기를 통한 구원, 그리고 고립과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여정을 10회로 나누어 싣습니다. 연재를 통해 우리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를 넘어 ‘나는 고백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한 인간의 선언을 마주하게 됩니다. <편집자>

청년기 방황을 거친 후 루소는 에밀 등 여러 고전을 남긴다.

1730년대 초, 스물한 살의 루소는 바랑 부인과 동거를 계속하며 프랑스 동부 샹베리에서 토지측량사로 일했다. 그는 물감을 사서 꽃과 풍경을 그리는 데 몰입했지만 곧 자신에게 미술적 재능이 없음을 깨닫고 좌절한다. 그럼에도 그는 집착을 버리지 못하고, 결국 주변 사람들이 말릴 정도로 한 가지 일에 몰두했다. 이 성향은 훗날 고백록에서 그가 자주 언급하는 자기 성찰의 핵심이다. 그는 “늙어서도 여전히 전혀 이해하지 못할 공부에 빠져 있다”며, 자신의 몰입은 일종의 강박이라는 사실을 인정한다.

루소는 이 시기에 음악에 더욱 깊이 빠진다. 그는 “이 예술을 위해 태어난 것 같다”고 말하면서도, 정작 악보를 보고 노래를 제대로 부르지 못했다. 그러나 음악은 바랑 부인과의 접촉 수단이었고, 그는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바랑 부인은 음악을 좋아하지 않았지만, 루소는 “음악은 우리 관계의 연결점이었다”고 고백한다.

이 무렵 루소는 음악 교사로 일하며 상류층 여성들과 어울릴 기회를 얻게 된다. 그는 ‘장님 나라에서 애꾸눈’처럼, 뛰어난 재능이 아닌 상대적인 수준 때문에 인정받았다고 솔직히 쓴다. 그러나 교사로서 일정한 성과를 얻자 그는 이전보다 나은 생활을 경험하며 자신감을 갖게 된다. 아름다운 집안에서 노래하고 담소를 나누며, 루소는 “오랜만에 내가 삶의 중심에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 시절을 그는 “인생에서 내가 내 성향에 가장 충실했고, 내 기대가 배신당하지 않았던 거의 유일한 순간”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그러한 안정감 속에서도 루소는 감정적으로 불안했다. 그는 바랑 부인을 여전히 사랑했지만, 동시에 ‘연인’으로서는 더 이상 충족되지 않는 감정을 느낀다. 그는 내면의 공허함과 새로운 사랑에 대한 욕망 사이에서 갈등했다. “한 여자를 가졌을 때 내 감각은 평온했지만, 내 마음은 결코 평온하지 않았다.” 이 말은 그가 얼마나 깊은 내적 분열을 경험하고 있었는지를 보여준다.

이 감정적 혼란은 루소를 점점 우울과 무기력으로 몰아넣는다. 그는 “삶을 즐기기도 전에 삶이 나에게서 빠져나가는 느낌”을 받으며, 이전보다 집 안에 틀어박혀 지내기 시작한다. 우울감은 열정을 대신했고, 무기력은 슬픔으로 변해 갔다. 그럼에도 바랑 부인을 떠나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는 그녀에게 “당신은 내 존재 전체를 맡은 분”이라고 고백하며, 의존과 애정의 경계를 넘나든다.

1736년 건강이 나빠진 루소는 바랑 부인에게 전원으로 함께 나가 살 것을 제안했으나 거절당한다. 결국 그는 혼자 샹베리 근처의 레 샤르메트라는 시골집으로 들어간다. 루소는 그곳에서 “행복과 순수함이 머무는 집”을 발견했다고 적으며, 외부로부터의 해방과 내면의 평화를 동시에 얻고자 했다.

르 샤르메트에서의 생활은 루소가 인생에서 처음으로 온전한 행복을 느낀 시기였다. 그는 다음과 같이 회고한다. “행복은 무엇이라고 꼬집어 말할 수 있는 어떤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내 자신 안에 있기 때문에 한순간도 나를 떠날 수 없었다.” 그는 산책하고, 책을 읽고, 과일을 따며, 물가를 걷는 단순한 일상에서 기쁨을 찾는다.

그런데 이 시기의 루소는 단순한 생활만 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종교에 대해 깊이 있는 고민을 시작하고, 신에 대한 자신의 신념을 다듬는다. 그는 “나는 종교를 왜곡했지만, 신을 저버린 적은 없었다”고 단언한다. 루소에게 신은 형벌의 존재가 아닌 위안과 희망의 대상이었다.

또한 그는 학문에 대해 독특한 시각을 제시한다. 그는 학문들 사이의 상호보완성, 상호인력, 그리고 학제 간 연결을 강조하며, 이는 오늘날의 융복합 개념에 가까운 통찰이었다. 그는 이렇게 적었다. “한 학문은 다른 학문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하다. 이해력은 모든 학문을 섭렵할 수 없기에 하나를 전공하되, 다른 것들과의 연결을 절대 놓쳐선 안 된다.”

이런 시기에도 루소는 자신이 ‘학자형 인간’은 아니라며 겸손하게 돌아본다. 그는 집중력이 약하고, 오랜 시간 한 주제에 몰입하는 데 한계를 느꼈다고 털어놓는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독서를 통해 ‘쾌락보다 의무를 택하는 법’을 배웠다고 말하며, 책이 준 가장 큰 혜택은 ‘비교하고 반성하는 능력’이었다고 평가한다.

레 샤르메트 시기의 마지막에 이르러 루소는 바랑 부인에 대한 사랑을 다시 고백한다. 그녀와 다시 만나 단 한 번만이라도 눈을 마주할 수 있다면 죽어도 좋다고 말할 만큼, 그는 그녀의 존재가 삶의 기준이었음을 인정한다. 그는 “조금만 더 노력한다면, 우리는 다시 달콤한 우정 속에서 행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쓰며, 과거의 실수와 후회에 진심으로 사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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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재석

'조국 근대화의 주역들' 저자, 傳奇叟(이야기꾼), '국민일보' 논설위원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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