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수록 멀어지는 남과 북, ‘마음의 통합’ 가능할까

한국·북한·중국·독일 ‘접촉지대’ 탐구

분단된 한반도. 이념과 분쟁으로 70년 가까이 단절된 남북에 ‘접촉지대(contact zone)’가 있다면 어디쯤일까? 그 접촉지대에 혹시 ‘마음’은 있는 걸까? 체제 이념 논쟁 속에 왜곡돼 있는 북한의 실상을 북핵 위주의 거대 담론이 아닌 주민들의 일상생활에서 살펴보는 북한대학원대학교 북한미시연구소가 이 ‘마음’의 실체를 쫓아가 봤다. 지난 1월21일 북한미시연구소 개소 1주년을 맞아 열린 ‘한반도 접촉지대와 마음의 통합’이란 주제의 국제학술회의에서는 한국, 중국, 일본, 독일의 ‘접촉지대’가 소개됐다.

한국 “마음의 통합은 ‘지금’ 일어나는 일”

한국사회에 들어온 탈북자는 2만 6000명. 지금 남북한 사람들은 남한 내부뿐 아니라 개성공단과 같은 허가된 북한 내부에서도 서로 만난다. 남북의 경계지대에서 이뤄지는 남북협상, 해외 어느 지점에서 이뤄지는 6자회담도 있다. 제도화된 공간만이 아니다. 북방한계선(NLL) 이나 인도적 지원의 장에서는 비제도적인 만남이 있다. 공식 숫자에 포함되지 않은 탈북자와 해외 거주 탈북자도 수천 명에 이른다. 이들 접촉지대에서 남북한 사람들의 ‘마음’이 오간다.

윤철기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접촉지대와 남북한 마음체계’를 다룬 주제 발표에서 “남북한 사회통합은 통일 이후의 미래 과제가 아니라 현재의 문제다. 이미 만남이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라며 “마음의 문제가 어렵다고 해서 마음의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사적인 접촉이 금지된 개성공단에서조차 남북은 서로 영향을 주고 변화한다. 남한 내 탈북자들이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불평등을 인식하면서 소수자 집단에 동질감을 느끼는 것도 마음의 움직임이다.

마음의 통합이 과연 가능한 것일까? 마음의 통합은 미시적인 부분을 다룬다. 국가가 아닌 ‘아래’로부터의 통합이다. 기존의 정치 경제 통합론이 거시적인 것과 구분된다. 윤 교수는 “마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유다. 마음은 쉽게 숨길 수 있기 때문이다. 자유로운 개인이 동의해야 마음의 통합이 가능해진다. 그러기 위해서는 공론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마음의 통합에서 중심 가치는 ‘인본주의’다. 통합을 이룬다며 젊은이들의 희생을 강요해 온 거대담론 방식으로는 어렵다. 지금까지는 먼발치에서 “너희가 먼저 달라진 모습을 보여라. 그래야 만난다”말해왔다. 서로 주권을 인정하지 않으면서 회담을 진행해야 하는 모순이 남북회담 반복 결렬의 이유다. 하지만 ‘마음의 상실감’을 최소화하려면 만나야 한다. 무엇이 다른지 알아봐야 한다. 만남이 어떤 결과를 초래하더라도 마음의 통합 준비에는 도움이 된다. 적어도 통일에 대한 공포 확산은 막을 수 있다. 이제 이 사회가 본격적으로 논의해야 할 시점이 왔다.

중국 “북한 문화 ‘있는 그대로’ 인정하기”

북한과 중국의 접경지대에서는 접촉지대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염송심(廉松心) 중국 북화대학교 동아연구센터 교수는 ‘사회문화 교류를 통한 북한과의 접촉’을 주제로 중국 장백조선자치현에서 태어나 길림시에서 살며 경험한 북한과의 접촉 사례를 전해줬다. 그는 “길림시에 있는 룡악산식당이나 은방울식당 등 북한식당에서 일하는 종업원은 북한에서 특별히 뽑혀온 여대생들”이라며, “마음을 열고 대화하긴 힘들었지만 예전보다는 개방적인 모습”이라고 소개했다. 중국어가 능숙하고 예술적 재능도 뛰어난 이 종업원들은 3년마다 바뀌는데, 의무적인 봉사활동에 해당해 노동효율은 낮을 수밖에 없다.

염 교수는 지난 2011년 여름 북한으로 관광 다녀온 경험을 소개했다.

“신의주에서 출발한 기차는 달리다 멈추다를 반복하며 6시간 만에 220km 떨어진 평양에 도착했는데, 다른 관광팀들은 전기가 없어서 2~3일씩 걸리기도 했다더라. 가는 길에서 마주친 지방은 아스팔트길은커녕 차량도 거의 없고, 사람들은 대부분 자전거를 타고 다녔다. 나무 바퀴로 만들어진 우차도 많았다. 도착해서는 먹을 것도 잘 나왔고 일본제 호화관광버스를 타고 다니며 평양을 둘러볼 수 있었다.”

이 때 만난 북한 안내원은 무료로 이뤄지는 북한의 교육, 의료, 주거 체계를 자랑스러워했다고 했다. 북한은 배우자에 대해 남자는 ‘바지’, 여자는 ‘치마’로 부르는데, 바지는 ‘당바지(로동당), 군바지(군인), 학바지(대학졸업), 장바지(키 큰 남자)’로 나뉜다. 4가지를 다 갖춘 남성은 북한 여성들의 이상형이다. 염 교수는 “나름대로의 문화가 형성된 두 집단이 마음을 통합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 자존심과 존엄을 인정해주는 것이 전제돼야 할 것”이라며, “기존의 시선을 바꾸고 서로 사이좋은 이웃으로 시작해야 하지 않겠나”라고 강조했다.

일본 “체제 아닌 ‘개인’ 인정하면 한계 낮아져”

외국인과 북한 주민이 ‘사람과 사람’으로 만나기까지의 경험도 소개됐다. 지난 20년간 북한을 25번 정도 방문하며 사업을 해오고 있는 미무라 미츠히로(三村光弘) 환일본해경제연구소 연구부장은 ‘경제와 관광을 통한 북한과의 접촉’이라는 주제 발표에서 “북한도 사람 사는 사회이니 인간으로서 존중해줘야 그들도 우리를 존중해 준다”는 점을 강조했다. 항일투쟁이 정권의 정당성 근거가 될 만큼 반일감정이 극심한 일본인에 대해 북한도 처음부터 마음의 문을 연 것은 아니다. 그는 “냉전이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일본 입장에서는 적국이지만 북한은 통일된 한반도의 일부가 될 곳이다. 동북아 지역공동체를 생각한다면 북한은 우리와 동반자 관계다. 즉 북한의 미래는 일본의 미래와 연관돼 있다”고 밝혔다.

미무라 연구부장이 제시한 또 다른 원칙은 북한 주민과 체제를 구분해 북한 사회의 특징을 파악하고 상대방을 보호해줘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외국인에게 공개되지 않는 평양의 뒷골목을 돌아본 일화를 들려줬다. “처음에는 안내원이 소개하는 식당만 가다가, 값싸고 맛있는 ‘평양의 맛집’을 소개해 달라고 했다. 해마다 북한을 방문했지만 뒷골목 식당을 가게 된 것은 5년 정도 신뢰가 쌓인 뒤였다. 사진 찍지 말라는 그들의 입장도 이해해주면서 한계를 알면 사람 사이 일이므로 조금씩 가까워질 수 있다.”

또한 그는 비정치적인 접근법을 언급했다. “큰 치수의 수영복이 필요하니 시장에 데려가 달라고 하면 시장에서 경제상황을 조사하겠다는 것이 아니니 ‘감시하는’ 북한의 체면도 살려주고, 우리도 둘러 볼 수 있는 길이 생긴다”며, “여기서 중요한 건 규정 안에서 재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무리하게 요구하지 않아야 인간관계가 유지된다는 것이다. 즉 그들 개인이 아닌 체제가 감시하는 것이다. 개인은 나를 보호해 주려고 노력한다”고 조언했다.

독일 “문화교류가 ‘마음’ 전한다”

독일은 통일 20년이 지났지만 ‘마음의 통합’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정치·경제 통일이 가치관과 정서, 감정, 태도 등에 대한 갈등을 해소하진 못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독일이 한반도 통일에서 강조하는 지점은 명확하다. 슈테판 드라이어(Stefan Dreyer) 주한독일문화원장은 ‘문화와 공공외교를 통한 북한과의 접촉’을 주제로 한 발표에서 “정치적 차이를 내세우는 것 보다 문화교류가 가깝게 다가서는 방법이다. 서로 신뢰가 쌓여야겠지만 문화가 마음과 정신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전 세계 93개국에 145곳의 지사가 있는 독일문화원은 국제문화협력 활동을 지원한다. 평양에도 어학당이 있지만 회의실은 2009년 폐쇄됐다. 그는 “북한에 여러 번 방문했지만 지난해 가을에는 외국인에 대한 통제가 많이 완화된 느낌이었다. 아침에도 8km나 되는 길을 안내원 없이 혼자 조깅했고, 휴일 오후에는 산책하면서 사진도 찍었다. 이런 분위기가 관광 활성화와 경제살리기의 일환 아닌가 추정해 본다”고 말했다.

독일은 2년마다 열리는 평양국제영화제에도 참가하고 있다. 슈테판 원장은 “지난 2012년엔 영화제 몇 달 전에 사정이 있어 참가를 못하겠다고 북한 당국에 이메일을 보냈는데 3시간 만에 답장이 와서는 취소 못한다며 일정을 연기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평소 외국 영화를 상영하지 않는 평양 대동문 극장에서는 당시 독일 영화 6편을 1주일간 16번 상영했는데, 각계각층에서 1만여 명이 관람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영화 상영 후 질의응답 시간을 갖겠다고 하니 ‘독일에서 북한 관객에게 뭘 물어보려고 하냐’고 묻더라. 그래서 ‘그게 아니라 관객들이 우리에게 묻는 것’이라고 얘기해줬고, 우여곡절 끝에 질의응답이 이뤄졌다”고 했다. 문화는 표면적인 의미 이상이 담긴다. 그 문화에 담긴 마음은 서로에게 전달되기 마련이다. 그곳에서 마음의 통합이 가능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