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지도 놓칠 수 없다…‘북극 방정식’ 복잡

중국, 아이슬란드에 교두보…4번째 남극 기지 착공

얼음이 풀리고 있는 북극을 놓고 ‘이권 잔치’가 한창이다. 북극권에 묻혀 있는 무궁무진한 자원 개발에 눈독 들이는 나라들의 각축이 본격화하고 있는 것이다. 북극에 영토나 영해를 가진 나라, 즉 북극 나라(Arctic country)들이 유리한 입장인 것은 틀림없지만 그렇다고 비북극 나라(non-Arctic country)들이 구경만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비북극 나라 중 북극 권리를 가장 적극적으로 추구하고 있는 나라는 단연 중국이다. 중국은 북극을 끼고 있지 않다는 제약을 돌파하기 위해 북극 나라와 동반자관계 구축에 공들여 왔다. 두드러진 구애 대상이 아이슬란드다. 인구 32만 명으로 중국의 4000분의 1에 불과한 이 작고 외진 나라 수도 레이캬비크에 중국이 최근 완공한 대사관은 무려 500명이 일할 수 있는 규모다. 이 나라에 중국 다음으로 큰 규모의 공관을 차린 나라는 미국인데 그 인원이 70명 가량이다.

2012년 여름 중국 쇄빙선 쉘롱(雪龍)호가 북극항로를 완주해 처음으로 유럽에 닿았다. 그 종착지이자 유일한 방문국이 아이슬란드였다. 쉘롱호가 닷새 머무는 동안 올라푸르 그림슨 대통령이 탑승자(연구진과 선원)들을 자신의 저택으로 초대해 환영했고, 배가 공개돼 현지 주민들이 올라가 내부를 구경했다.

성사되지는 않았지만, 중국의 한 개발업자는 아이슬란드 북동부 땅 300㎢에 골프장을 갖춘 리조트를 건설하겠다고 제안한 바 있다. 당시 중국은 자국 부유층 관광객을 유치해 원시자연의 정취를 맛보게 하겠다고 사업 취지를 설명했으나, 아이슬란드측이 외국인의 땅 소유를 금지한 국내법을 들어 거절했다. 전문가들은 이 리조트가 관광객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북극개발에 필요한 중국인력 수용과도 관련됐을 것으로 짐작했다.

중국이 유럽나라 중 유일하게 아이슬란드와 맺은 자유무역협정이 올 들어 발효한 것도 두 나라 관계를 짐작할 만한 근거다. 아이슬란드 말고도 중국은 노르웨이가 벌이는 북극 학술연구에 비용을 대고 있고, 그린란드의 철광석 개발 등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북극권은 보통 북위 66도 33분 44초 이북을 말한다. 이 권역 안에 영토나 영해 또는 둘 다 가진 여덟 나라, 즉 캐나다, 덴마크, 핀란드, 아이슬란드, 노르웨이, 러시아, 스웨덴, 미국이 북극 나라다. 이들은 1996년 북극이사회(Arctic Council)를 결성했다. 현재 이 기구가 주도적으로 판을 짜고 있다. 같은 북극 나라지만 이들 8국은 북극에서 행사할 지분 크기가 지정학적으로 각각 다르다. 8국 중 캐나다, 러시아, 노르웨이는 국가 본토가 북극에 영토와 영해를 모두 갖고 있다. 핀란드와 스웨덴은 영해 없이 영토 일부가 북극권이다. 덴마크는 본토가 북극과 무관하지만 속령인 그린란드가 북극권이며, 미국은 본토에서 떨어진 알래스카가 북극을 끼고 있다.

2008년 그린란드 일루리사트에서 북극 나라 중 핀란드, 스웨덴, 아이슬란드 3국을 뺀 5국이 모여 북극 바다에 대한 관련국들의 권리와 의무를 밝힌 ‘일루리사트 선언’을 채택했다. 당시 이 모임이 북극 ‘해양’에 관한 것이라는 이유로 북극이사회 정회원국 중 일부가 배제됐지만 결과적으로 정회원 중에도 메이저와 마이너가 나눠진 듯한 모양새를 띠었다.

자원개발 체스게임서 포지션 선점 중

북극이사회에는 정회원 8개국 외 여러 나라와 비정부기구들이 참여한다. 우선 에스키모(이뉴잇)를 비롯한 6개 북극권 원주민 대표단체들이 참가자 자격으로 간여한다. 다음으로 지난해 5월 추가된 중국, 인도, 영국, 일본, 한국, 싱가포르 등 옵저버 12국이 있다. 이처럼 복잡하게 짜여 있다 보니 북극이사회는 정회원국이 독과점적으로 역내 권리를 누리거나, 권리에 따르는 의무를 지기 어려운 구조다. 비북극 나라 움직임에 대한 북극 나라들의 시각도 각자 다르다.

북극권에는 전 세계 미개발 석유·가스의 4분의 1 가량(석유 900억 배럴, 가수 1670조㎥)이 묻혀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철광석·니켈·우라늄 등 광물자원도 풍부하다. 현재 북극권 원유·가스전 60여 곳 중 40여 곳은 러시아 지역이다. 러시아와 중국은 미국의 셰일가스에 대항하기 위해 북극권 가스 및 북극항로 개발에 매달리고 있다.

북극을 둘러싼 중국의 공세적 행보를 놓고 미국에서 민간 차원의 우려가 표출되고 있으나 의외로 미국 정부는 이렇다 할 대응이 없는 상태다. 역외국을 견제하는 일보다 유엔해양법협정 비준이 더 화급한 극지 관련 현안인 까닭이다. 이 협정에 가입하지 않으면 대륙붕 자원 채굴 등 바다에서 챙길 수 있는 권리 중 많은 부분이 유보된다. 세계 대부분 나라가 이 협정에 합류했고, 북극 나라 중 나머지 7개국이 모두 가입국이지만 미국만 빠져 있다. 실은 워싱턴에서도 빨리 가입해야 한다는 의견이 우세하지만 일부 우파 정치인들의 고집 때문에 비준에 필요한 상원 3분의 2 지지를 채우지 못하고 있다. 보수파 반대론자들은 협정에 가입하게 되면 바다와 관련된 분쟁이 생겼을 때 협정이 정한 절차를 따라야 하는데 이 경우 ‘초국적(supernational) 기구’의 사법적 결정에 미국이 속박돼 국익이 훼손된다고 주장한다.

중국의 자원개발 의지는 남극에서도 두드러진다. 최근 4번째 기지 타이산(泰山) 건설에 착수하는 동시에 5번째 기지 터 물색에 나섰다. 200명 수준이던 연구원도 1000명으로 늘렸다. 기후변화 연구 등을 명목으로 한 탐사를 30차례 벌였으며, 350곳에 중국어 지명을 붙였다. 남극에는 현재 20개국이 연구기지 100여 개를 설치 운영하고 있다. 중국이 예산과 탐사수준을 높여가고 있는 데 반해 미국은 연 3억 달러인 남극관련 예산이 2008년 이후 동결된 상태다. 본토에서 터진 셰일가스 개발 붐이 극지 개발을 주춤하게 하는 한 요인이다.

영국 일간지은 최근 중국의 극지 탐사 움직임을 체스에 비유했다. 체스에선 포지션 선점이 중요한데, 중국은 지금 지구를 무대로 한 게임에서 향후 플레이에 필요한 발판(foothold)을 선점하고 있는 중이라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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