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룰루랄라’ 돌아온 일기예보 리드싱어 ‘나들’

<사진=김남주>

10년 투병생활 딛고 ‘퍼니 러브’로 재기

‘그댄 먼 곳만 보네요 내가 바로 여기 있는데 조금만 고개를 돌려도 날 볼 수 있을 텐데…’

1990년대 짝사랑하는 이들의 마음을 위로했던 노래 ‘인형의 꿈’. 요즘도 심심찮게 흥얼거리는 이 노래를 불렀던 ‘일기예보’가 해체됐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해체 이유가 멤버 나들(박영렬·46)의 건강문제(간경화) 때문이었다는 사실은 더더욱 몰랐다. 나들이 2집 앨범 ‘퍼니러브(Funny love)’로 돌아왔다는 보도자료를 받고 그간의 사연이 궁금했다. 11월25일 서울 시청 인근 카페에서 그를 만났다.

-‘응답하라 1994’ 등의 영향으로 1990년대 문화가 재조명받고 있어요. 1990년대 후반 일기예보의 인기는 대단했죠.
“1997년 ‘인형의 꿈’, ‘좋아 좋아’ 등을 발표했을 땐 라디오 방송에서 일주일 동안 우리노래가 150회 나간 적도 있었죠. 이 노래가 실린 3집은 50만장 정도 판매됐죠. 방송 순위에서도 3개월 간 1위를 뺏기지 않았고요. 대학 축제에 가면 몰려드는 팬들로 무서울 정도였죠.”

-언제 해체된 거죠?
“1999년 5집 활동을 끝으로요. 4집 만들 때부터 몸이 아프기 시작했어요. 5집도 간신히 녹음했어요. 이후 (강)현민이는 솔로로 나가고 저는 투병생활에 들어갔죠.”

-간경화면 술 때문에?
“그건 아니고, 간염 보균자로 유전이었어요. 어머니가 대학 2년 때 갑자기 간암으로 돌아가셨어요. 어머니가 고통 중에 돌아가셔서 늘 조심하는 편이었죠. 4집 만들고 친구의 권유로 간 검사를 받았는데, 간이 너무 거칠다는 거예요. 급속도로 간이 안 좋아지더라고요.”

-어떻게 치료받았나요?
“처음 몇 년간은 시골로 내려가 자연식을 하며 이겨내려고 했는데, 좋아졌다 다시 나빠지고 그러더라고요. 결국 사촌 동생의 간을 이식 받아 치료가 됐어요. 수술받은 지 3년 됐는데, 부작용 없이 건강하게 지내고 있어요.”

-아내가 고생이 많았겠는데요.
“경제적으로 어려운 가운데 살림하며 세 아들까지 키웠으니 많이 힘들었죠. 일도 하면서요. 정말 잘해야죠.”

-전 멤버인 강현민씨와 재결합 안 하나요?
“현민이는 ‘러브홀릭스’라는 팀으로 열심히 활동하고 있고, 저도 이렇게 있는 게 편해요.”

-앨범 반응은 어때요?
“돈 문제로 레코드점에 배포가 안 돼 어려운 면이 있어요. 옛날처럼 방송국 찾아가 1대1로 PD, 작가 만나 전해주는 방법도 안 통하더군요. 환경이 변했고, 잊혀진 가수가 된 거죠. 인터넷 음원 판매와 제 홈페이지를 통해 알리고 있는데, 조금씩 반응이 오고 있어요.”

서울 신길동 한 음식점에서 열린 제26차 골목콘서트 모습. 이 프로젝트를 통해 골목상권에 활기를 불어넣어주고 있다. <사진=나들>

2014년 ‘국민가수의 해’

-그래도 골목콘서트는 유명하던대요.
“골목상권 이슈와 맞아 떨어진 면이 있어요. 올해 1월 서민 식당에 활기를 넣어주자는 취지로 시작해 벌써 1년이 다 돼 가네요. 지금은 한 달에 두 번 공연을 하고 있어요. 저 뿐만 아니라 후배 가수들이 함께 하죠. 공연 이후 매출이 늘었다는 소식을 들을 때 행복하죠.”

-듀엣으로 활동하다가 솔로로 활동하니 불편한 점은 없나요.
“일기예보 노래 대부분이 듀엣을 염두에 두고 만든 곡이라 혼자 부르기 어려운 점이 있어요. 그래도 계속하다 보니까 익숙해지네요.”

-이번 앨범 중 가장 애착이 가는 노래라면.
“주위 분들은 ‘퍼니러브’를 많이 좋아하세요. 그래서 타이틀곡으로 했고요. 개인적으로는 ‘십 년이 지나서 꺼내든 기타’가 애착이 가요.”

-그 기타가 우리나라에 한 대 밖에 없다는 그 유명한 마틴 기타인가요?
“아마 그 모델로는 그럴 거예요. 제가 그 기타를 구하기 위해 기도까지 했을 정도이니 굉장히 아끼는 물건이죠. 기타리스트인 연석원 선배가 기타를 가르쳐 줬는데, 이 기타가 그 분 거였어요. 기타 배울 당시 그 소리를 잊지 못하고 있다가 일기예보로 활동하던 중 우연히 낙원상가에서 그 기타를 발견했어요. 연 선배가 유학을 떠나면서 중고물품으로 내놓았다고 하더라고요. 지금은 가격을 매길 수 없는 기타가 됐어요.”

-나들이란 예명은 언제부터 사용 한 거죠?
“일기예보 3집 때부터요. 당시 팀에 변화가 있었어요. 박영렬이란 이름이 너무 평범한 느낌이 들어 나들이란 예명을 만들었어요. 나의 복수형으로 나와 우리란 의미죠. 밴드 이름으로도 좋겠다 싶어 그렇게 한 거죠. 한겨레신문사에서 <나들>이란 잡지를 발행하던데, 제가 먼저죠(웃음).”

<사진=나들>

-강현민 씨가 ‘인형의 꿈’, ‘떠나려는 그대를’ 등 서정적인 노래를 잘 만들었다면, 나들씨는 ‘좋아 좋아’, ‘자꾸 자꾸’ 등 경쾌한 노래에 소질이 있어요.
“맞아요. 발라드 곡을 만들기가 어렵더라고요. ‘들국화’ 그룹을 좋아하면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는데, 제가 발라드를 만들면 록음악 분위기가 나더라고요. 안 되는 걸 고집하기보다 잘하는 걸 열심히 하자 해서 경쾌한 노래를 주로 만들었죠.”

-요즘 젊은 가수들 노래 참 잘하죠.
“음악성도 뛰어나죠. 실용음악과 등 대중음악을 전문적으로 교육하는 시스템이 갖춰졌기 때문인 것 같아요. 이론을 바탕으로 곡을 만들다보니 훨씬 세련되고 다양한 음악을 만들고 있어요. 문제는 새로움을 창조하는 일일 텐데, 조만간 세계적인 아티스트가 나올 거라 믿습니다.”

-앞으로 활동계획은요.
“다른 사람 통해 거저 얻은 인생이잖아요. 간이 언제 또 잘못될지 모르고요. 제가 어찌할 수 없는 인생 같아요. 주어진 시간을 의미 있게 사용하는 수밖에 없어요. 제 음악이 필요한 곳에 많은 도움을 주고 싶어요. 골목콘서트도 좀 더 확대해 나가고, 재능 있는 후배들이 세태에 휘둘리지 않고 음악생활에 충실할 수 있도록 멘토 역할도 하고 싶고요. 2014년에는 한 달 장기 공연도 시작할 생각이에요. 이번 앨범 마지막 곡 ‘국민가수’처럼 다시 뜰 수 있도록 응원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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