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에 ‘한국 알리기’ 대 잇는다

<사진=이오봉>

하네스 모슬러 베를린자유대 한국학 교수

자본주의 노동문제를 분석한 <노동사회에서 벗어나기> 저자이자 <한겨레> ‘세계의 창’ 고정필자인 홀거 하이데(Holger Heide·74) 전 브레멘대학 교수와 한국정치평론 <사라진 지구당, 공전하는 정당개혁>을 펴낸 하네스 벤야민 모슬러(Hannes B. Mosler·37) 독일 베를린자유대학(FU) 한국학과 교수는 부자지간이다.

모슬러 교수 역시 한국 민주주의에 대한 시론을 <한겨레21> 등 여러 매체에 기고해 한국에 잘 알려져 있다. 그는 한국어를 유창하게 잘한다. 베를린 홈볼트대학을 졸업한 뒤 1998년 한국으로 건너가 2011년 서울대 정치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베를린자유대학 동아시아연구대학원 조교수로 재직 중인 그는 독일학술진흥재단(DFG) 지원으로 지난 11월29~30일 베를린자유대학 한국학연구소에 열린 한독수교 130주년 기념 FU-코리아NET 콘퍼런스에서 ‘독일과 한국의 헌법규정과 헌법현실로서 정당해산’에 대해 발표했다. 세미나실에서 그를 만나 대물림한 한국학 연구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

-한국에 관심 갖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브레멘대학 경제학 교수였던 아버지로부터 한국에 대하여 알게 됐다. 강수돌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 한기동 박사가 아버지 제자다. 1994년 중반 고등학생 때 처음으로 6주 동안 한국 배낭여행을 했다. 특별한 계기는 없었지만, 일본과 중국에 많이들 가기 때문에 보통 사람들이 가지 않는 곳에 가보자는 마음으로 한국을 택했다. 당시 서울을 비롯해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 강원도, 제주도까지 다 돌아봤다. 인상적인 것은 음식의 맛, 강산의 멋과 사람들의 정이었다. 이후 매년 적어도 한 번씩 한국을 방문했고, 나중에 대학에서 부전공으로 공부하게 됐다.”

-한반도 통일에 대한 전망은?
“통일이 되면 좋지만, 꼭 통일만이 아니어도 좋다고 본다. 중요한 것은 현재의 분단상황을 끝내는 일이다. 현 정부의 대북정책은 도움이 별로 안 된다고 본다. 통일이 더 멀어진다. 통일은 머리에서 준비해야 한다. 서로를 너무 적대적으로 받아들이고 이해하면 통일이 늦어진다. 북한도 노력해야 하지만, 남한은 민주주의 국가인데 남남갈등부터 해결해야 통일준비가 가능하다고 본다.”

베를린자유대학 한국학연구소에서 열린 한독수교 130주년 기념 ‘베를린자유대학-코리아NET 콘퍼런스’ <사진=이오봉>

통일준비, 남남갈등부터 해결해야

베를린자유대학 한국학과(학과장 이은정)는 한국학과가 설치된 튀빙겐대학, 흄볼트대학, 보쿰대학, 본대학, 프랑크푸르트대학, 함부르크대학 등 다른 독일 대학들과 달리 한국 경제·정치 등 사회과학 분야를 집중 연구한다. 20년 전 이룩한 독일의 통일을 타산지석으로 삼아 한반도 통일정책을 연구하는 학자들이나 정·관계 인사들이 방문연구를 위해 많이 찾는다.

베를린자유대학 한국학연구소는 짧게는 1학기, 길게는 2학기 동안 머물며 강의와 연구를 하는 방문학자 제도를 두고 있다. 김황식 전 국무총리, 손학규 민주당 상임고문, 김두관 전 경남지사 등이 최근 방문연구원 자격으로 독일 통일과 복지정책에 대해 연구를 마치고 돌아갔다.

-방문학자·연구원들과 어떻게 지내는지?
“방문연구원들이 많이 온다. 우리 학생과 교수들에게 흥미로운 교류가 된다. 정치가들도 오고, 학자, 문인들도 온다. 대부분 개인 연구실은 아니더라도 개인 책상과 연구할 수 있는 시설을 제공한다. 특강과 토론을 하고 식사와 산책을 함께 하면서 서로 유익한 시간을 보낸다. 구체적인 사건이 아니라 전반적으로 느낀 것은 방문연구원들이 한결같이 독일통일을 부러워한다는 점이다. 통일의 단점에 대해 알게 되어도 그들은 현재의 분단보다 조금이라도 나은 남북관계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을 포기하지 않는다. 그런 모습을 보면 애처롭기도 하고 기대도 된다. 한반도의 미래를 어떻게 헤쳐나갈지….”

한독수교 130주년 기념 ‘베를린자유대학-코리아NET 콘퍼런스’ 토의장에서 베를린자유대 한국학과 학과장 이은정 교수(왼쪽)와 나란히 앉아 있는 모슬러 교수 <사진=이오봉>

작곡가 윤이상부터 K-팝에 이르기까지 유럽대륙에 부는 한류열풍은 한국-EU 경제교류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지속가능한 교류가 이뤄지기 위해서는 유럽 각 대학에 한국학과가 더 많이 개설되어야 한다. 얼마 전 서울대과의 인터뷰에서 모슬러 교수는 해외 한국학 발전 방안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한국학을 전공하고 연구하는 한국학자가 부족하다. 그 결과 출판물과 교재, 학술저널이 부족하고 학술대회와 학술행사 또한 규모가 작을 수밖에 없다. 한국학이 하나의 학문분야로 인정받으려면 방법론적으로 체계와 이론을 정립하여 다른 학문분야와 연계할 수 있는 수준을 갖춰야 한다.”

세계에 한국학을 전파하기 위해 교육부 산하 한국학중앙연구원과 한국학진흥사업단, 한국연구재단, 외교부 산하 한국국제교류재단과 한국국제협력단(KOICA),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한국어세계화재단과 세종학당 등이 한국학 진흥과 지원을 맡고 있다. 이들 지원사업의 장기적 발전을 위해서는 컨트롤타워 역할을 할 기구나 위원회 설치가 필요하다.

<사진=이오봉>

베를린자유대학의 한국학 연구는 1970년 초 한국어 과정으로 시작해 1990년대 초부터 일본학과 부설 한국학 세미나로 발전했다. 그동안 정교수가 채용되지 않아 부전공으로 운영됐다. 2005년 겨울학기부터 정식 교수를 채용해 한국학과 학사과정을, 2009년에 석사과정을 시작했다. 한국어, 역사, 문화, 정치 경제, 법 등 한국학 전반에 관한 연구를 한다.

최근에는 현대 한국사회에 대한 사회과학 연구에 집중하고 있다. 베를린자유대학은 고전 한국학의 인문학적 연구에 앞선 보쿰대학과 컨소시엄을 이뤄 한국학 연구를 공유한다. 베를린자유대학 한국학과는 한국정부의 지원에 의존하는 여러 나라 대학의 한국학과와 달리 스스로 발전과 도전을 모색해나가고 있다.

모슬러 교수처럼 유럽인의 지성과 인식으로 한국의 정치·경제·문화를 분석하고 연구하는 한국학자들이 유럽 곳곳에 포진해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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