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한 칼럼] 경제성장이 최선의 복지정책

한국에서 끊이지 않는 복지논쟁에 참고 되도록 미국 복지정책의 실태를 소개하고자 한다. 아래 내용은 복지현장에서 오래 일해온 의료인이자 납세자로서 파악한 사실과 의견이 포함돼 있다.

미국의 복지정책은 크게 △사회보장기금(Social Security) △노인 의료보험(Medicare) △빈곤층 의료보험(Medicaid) 등 세 가지로 나뉜다.

사회보장기금은 미국인이 66세가 될 때까지 매년 수입의 12.4%(11만3000달러까지)를 사회보장세로 낸 것을 재원으로 한다. 회사에 고용된 사람은 12.4%의 절반인 6.2%를 납부하고 고용주가 나머지 6.2%를 낸다. 66세가 되면 매달 정부로부터 보조금을 받는데, 액수는 많은 세금을 낸 35년 평균치에 물가지수를 계산해서 정한다. 올해 가장 많이 받는 사람의 경우 월 2400달러 정도 된다. 1937년 루즈벨트 대통령 때 시작했는데, 지금까지 세금으로 13조8000억 달러를 거둬 11조3000억 달러를 지불했다. 거두어들인 기금은 미국정부 신용기금(trust fund)에만 투자할 수 있다. 그 수익이 연 6.9%, 555억 달러 가량 된다. 문제는 최근 11년 동안 지출된 돈이 수입보다 많아 앞으로 20년 뒤에는 기금이 고갈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해결책은 세율을 올리고 보조금 수령 연령을 69~70세로 늦추는 것이라고 한다.

미국인은 매년 수입의 2.9%를 노인 의료보험으로 낸다. 피고용인은 2.9%의 절반인 1.45%를 내고 나머지 1.45%는 고용주가 부담한다. 65세가 되면 정부에서 제공하는 노인 의료보험 혜택을 받는다. 이것이 메디케어다. 65세가 되기 전에는 엄청난 돈을 내고 의료보험에 가입해야 한다. 보통 부부의 보험액수가 연 2만 달러 이상 된다. 의료보험을 감당할 수 없는 빈곤층 6000만 명은 국가에서 메디케이드라는 의료보험을 들어준다. 주마다 차이가 있지만 빈곤층 자녀·부모, 임산부, 장애인 등이 대상이다.

메디케이드는 쉽게 말해 정부가 병원이나 의사에게 복지를 떠넘기는 할인보험이다. 정부가 치료비를 아주 적게 지불하기 때문에 메디케이드 환자가 넘치면 병원은 재정이 어려워진다. 실제로 지난 20년 간 보스톤 인근 메트로폴리탄 카운티의 5개 병원이 문을 닫았고, 2곳이 곧 폐쇄 예정이다. 빈곤층이 많은 주 병원들은 40% 가까이 문을 닫았다.

빈곤층은 국가에서 의료보험을 들어주지만, 빈곤층이 아니면서 민간보험금을 낼 만큼 넉넉하지 못한 1700만 명은 의료보험이 없다. 4년마다 벌어지는 대통령·주지사 선거 때마다 이들 1700만 명과 빈곤층을 위한 복지공약이 줄을 잇는다. 표를 얻기 위해 상대방 후보보다 더 많고, 더 좋은 복지를 약속하곤 한다. ‘오바마케어(Obamacare)’는 오바마 대통령을 당선시킨 복지확대 공약이다. 오바마케어는 빈곤층은 아니지만 의료보험이 없는 1700만 명을 메디케이드에 포함시키는 것이 골자다.

세금 부담 중산층 불만 폭발

미국은 연방예산의 24%를 보건의료를 위해 쓰고 있다. 국방예산보다 많다.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복지에 11%를 사용한다. 전체 예산의 35%를 빈곤층을 위해 쓰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오바마케어가 추가돼 정부 지출이 늘어나게 됐다. 오바마케어 수혜대상은 연수입이 빈곤선(poverty line)의 133% 이하인 가정이다. 4인 가족 빈곤선이 연수입 2만3550달러이므로, 133%인 연 2만9700달러 이하 수입이면 정부가 메디케이드를 들어주게 된다. 재원은 물론 세금을 올려서 조달한다. 의료보험회사에는 더 많은 세금을 부과하겠다고 한다. 의료보험회사는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회사이므로 세금이 오르면 의료보험 수가를 올리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매달 꼬박꼬박 거액의 의료보험금을 지불하며 열심히 일하는 시민들은 더 많은 의료보험, 더 많은 세금을 내야 한다. 이들이 불공평하다고 느끼는 것은 당연하다.

현재 미국 연방정부와 주정부에는 저소득층을 위한 27개 의료보조 프로그램, 30개 직업훈련 프로그램, 34개 사회보장 프로그램, 24개 저소득층 아동보호 프로그램이 있다. 이들 프로그램에 연간 1조 달러 가량이 투입되고 있다. 이 돈을 빈곤층에게 현금으로 골고루 나눠주면, 이들의 연수입은 빈곤선의 4배가 된다. 3인 가족 빈곤선이 연 1만9530달러니까 이것의 4배인 연 7만8120달러가 된다는 얘기다. 전 세계에 이만큼 복지혜택을 주는 나라가 또 있을까. 그런데 메디케이드 확대로 세금이 오르게 됐다. 세금도 내고 의료보험도 들어야 하는 3인 가족 연 평균소득은 8만 달러를 약간 상회하는 정도다. 그런데 그와 비슷한 수준의 도움을 받고 있는 빈곤층은 건강보험도, 세금도 내지 않고 있는 셈이다.

손에 돈을 쥐어주는 것만이 복지가 아니다. 돈을 버는 방법을 가르쳐주고 기회를 보장해주는 것이 더 좋은 복지다. 우리는 그 평범한 진리를 미국역사를 통해 배웠다. 경제성장률을 높이는 것만큼 더 좋은 복지정책은 없었다는 사실이다. 2차 대전 끝난 뒤 미국인 32%는 빈곤층이 되었다. 그러나 경제가 성장하면서 15년만인 1960년 빈곤층은 12.1%로 감소했다. 빈곤층의 3분의 2가 자립한 것이다. 그러나 베트남전 와중에 젊은이들이 사회적 책임이나 도덕성을 도외시하는 생각과 행동이 일상화되면서 혼전 임신으로 한쪽 부모만 있는 아이들이 많이 태어났다. 학교교육과는 담을 쌓고 살았던 이들이 성장해 빈곤층이 되는 것은 필연적인 일이다.

1980년대 카터 정부 당시 경제성장이 둔화되자 빈곤층이 11.4%에서 15.2%로 급증했다. 뒤이은 레이건 대통령 때는 감세정책 등을 통해 경제가 성장하자 빈곤층이 크게 줄었다. 레이건은 빈곤층의 근로의욕을 높이기 위해 세금공제 혜택을 주고, 건강한 극빈자의 노동을 의무화하는 법을 제정했다. 1960년대에는 빈곤층의 3분의 2가 노동을 했지만 지금 빈곤층은 11%만 일하고 있다.

미국경제는 2007년까지 연 3% 안팎의 경제성장률을 유지했다. 올해는 대공황 이후 최저인 0.8%로 떨어지면서 빈곤층이 16.1%로 늘어났다. 지금은 복지정책을 확장해서 정부재정을 부풀릴 때가 아니다. 세율을 낮춰 구매력을 늘리고 경제활동 규제와 장벽을 완화해 바닥을 기는 경제를 살려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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