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낫민 감독, 베트남 눈으로 전쟁 자화상 그리다

<사진=김남주>

김대중노벨평화영화상 수상 베트남 당낫민 감독

베트남 영화계 ‘대부’로 통하는 당낫민(Dang Nhat Minh·76) 감독이 8월29일 한국을 방문했다. 제13회 광주국제영화제에서 ‘김대중노벨평화영화상’을 수상하기 위해서다. 이 상은 인류의 평화공존과 인권신장에 기여한 감독에게 수여한다. 지난해는 <부러진 화살>의 정지영 감독이 수상했다.

당낫민 감독은 베트남전을 주제로 전쟁의 잔혹성을 고발하고 평화의 중요성에 경각심을 갖게 하는 영화를 끊임없이 만들어왔다. 그의 작품 <10월이 오면>은 CNN이 선정한 ‘아시아 최고영화 18편’ 중 하나로 뽑혔다. 시상식이 열린 광주빛고을시민문화관에서 만난 그는 “베트남인들도 존경하는 김대중 대통령의 뜻이 담긴 상을 받게 돼 영광”이라고 말했다. 베트남 이주여성 홍연희(Luong Thi Hong Loan)씨의 통역 도움을?받아 베트남 영화계에 대해 묻고 들었다.

이희호 김대중평화센터 이사장이 당낫민 감독에게 김대중노벨평화영화상을 시상하고 있다. <사진=김남주>

-베트남은 물론 아시아를 대표하는 영화감독 중 한 명이다. 영화감독이 된 동기는.
“과찬이다. 아시아 다른 나라, 특히 한국엔 나보다 뛰어난 감독들이 많다. 그래서 이번 수상 소식에 깜짝 놀랐다. 영화는 나의 감정을 가장 효과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수단이라고 생각했다. 내 영화를 통해 사람들이 서로 존중하며 사랑하고 행복하길 바란다.”

-영화를 제작해온 지난 50년을 회고한다면.
“베트남전쟁 때부터 영화를 만들었다. 그때는 장비가 부족하고 기술수준도 낮아 영화 찍는 일이 무척 힘들었다. 그래선지 오히려 당시 영화들에 애착이 많다. 전쟁 끝나고 통일 이후인 1980~90년대는 효과적으로 영화를 제작하던 시기다. 시장경제로 편입하면서 민간 영화제작사들에 많은 기회가 생겼다. 반면 영화가 상업화·오락화되면서 아쉬운 점도 많다.”

당낫민 감독은 레드카펫을 걸으면서도 주변 사람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사진=김남주>

-현재 베트남 영화산업은 어떤가.
“한 해 15~20편 정도 제작된다. 그 중 정부가 2편 정도 투자하고 나머지는 민간에서 만든다. 대부분은 액션 위주의 오락영화다. 상영관은 93개, 245개 스크린이 있다. 대부분 호찌민, 하노이 등 대도시에 몰려 있다. 지난해 국내에서 제작된 영화는 17편, 해외수입 영화는 106편이었다. 주로 미국영화다. 한국영화도 제법 많이 상영된다. 지난해 영화 매출은 4300만 달러, 관객수는 처음으로 300만 명을 넘어섰다. 2008년과 비교해 거의 6배 성장한 수치다.”

‘10월이 오면’ CNN 선정 아시아 최고영화

-올해 ‘국경없는기자회’ 자료를 보면 베트남은 전형적인 언론통제국가다. 영화 제작에 어려움은 없나.
“물론 영화 제작할 때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하고 싶은 말을 못하는 것은 아니다. 은유적으로 표현할 수도 있고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2009년 부산국제영화제 심사위원으로 참가해 박찬옥 감독의 <파주>를 아시아영화진흥기구상 수상작으로 선정했다. 좋아하는 한국 감독은?
“임권택 감독을 좋아한다. <백치 아다다> <취화선> 등을 인상 깊게 봤다. 김기덕 감독의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도 기억에 남는다. 이 영화는 베트남의 불교적 색채를 많이 띠고 있다.”

-한국은 베트남에 아픔을 준 나라이기도 하다. 한국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베트남 전쟁에서 한국 군인을 본 적은 없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을 통해 한국 군인들이 베트남 여성들에게 많은 고통을 줬다고 들었다. 한국이 베트남 국민을 돕고, 투자를 통해 베트남 경제발전을 지원하면서 빚을 갚는다고 생각한다. 한국과 베트남 사람은 인성에서 비슷한 면이 많다. 그래서 베트남 사람들이 한국 영화·드라마를 좋아하는 것 같다.”

당낫민 감독의 수상을 축하하러 온 베트남 이주여성들과 기념촬영

당낫민 감독은 옛 소련에서 러시아어를 공부하고 귀국한 뒤 러시아영화 번역 작업을 하면서 영화와 인연을 맺었다. 베트남영화학교 졸업 후 1965년부터 다큐멘터리를 만들기 시작해 전쟁 속 비극과 사랑을 영화화했다. 1973년부터 본격적으로 장편영화를 연출했다. 베트남 영화제작자협회 총서기를 지냈고, 2007년 정부가 주는 ‘호찌민상’을 받았다.

2005년 제5회 광주국제영화제 인기 프로그램 중 하나였던 ‘아시아 거장 감독전’에서을 상영하면서 한국과 처음 인연을 맺었다. 그의 최근작 <전장 속의 일기>는 베트남 민족해방전선 야전병원에서 실제 근무했던 젊은 여의사 당 투이가 기록한 일기를 바탕으로 만든 영화로, 제19회 후쿠오카국제영화제에서 관객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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