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반성장과 경제민주화, 그 이해와 오해

쇼펜하우어는 이렇게 말했다. “모든 진리는 첫째 단계에서 조롱 당하고, 둘째 단계에서 심한 반대에 부딪치며, 셋째 단계에서야 비로소 자명한 것으로 인정받는다.”

동반성장을 연구하고 실천하면서 필자는 한국의 동반성장 수준이 지난 수년간 쇼펜하우어의 첫째, 둘째 단계를 거쳐 이제 막 셋째 단계로 접근하는 중이라고 생각한다. ‘동반성장(shared growth)’이란 용어가 우리 사회에서 본격적으로 회자되기 시작한 것은 2010년 12월 동반성장위원회가 민간협의체로 출범하면서부터다. 하지만 여전히 말도 많고 오해도 많다. 동반성장에 특정 색깔을 칠해 그 진정성과 핵심을 호도하려는 움직임도 잔존한다.

지난해 대통령선거와 올해 박근혜 정부 출범을 계기로 ‘경제민주화’ 논의가 급부상했다. 동반성장과 마찬가지로 경제민주화도 쓰는 사람마다 의미가 제각각이고 시각도 다르다. 1960년대 초 정부 주도의 경제개발이 시작된 이래 반세기 동안 ‘선성장-후분배’가 경제정책의 기본전략이었다. 성장과 효율을 극대화하는 것이 지상목표(선성장)였고, 분배와 형평은 부차적 고려사항이었다(후분배). 대기업을 우대하는 산업구조가 고착되었고, 중소기업은 대기업과의 수직적 관계로 전락했다.

특히 1997년 외환위기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가계와 기업부문에서 양극화가 가속화되었다. 가계부채와 중소기업 부실은 한국경제의 발목을 잡는 양대 문제로 자리 잡았다. 현재 가계부채는 1000조 원에 육박한다. 부채가 많으니 내수가 줄어준다. 중소기업과 자영업이 타격을 받는다. 지난 4반세기 동안 급속히 진행된 경제의 세계화에 의해 국내적 산업연관관계가 단절되었다. 이로 인해 수출과 내수 간,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경기, 일자리의 연계성이 크게 약화되었다. 국내 소비, 투자 위축은 성장둔화와 양극화 심화를 가져왔다. ‘양극화 심화 ⇒ 가계부채와 중소기업 부실 누적 ⇒ 내수 부진 ⇒ 성장 둔화 ⇒ 양극화 심화’의 악순환을 낳았다.

동반성장은 21세기의 시대정신

한국경제를 ‘서서히 뜨거워지는 물 속의 개구리’에 비유한 맥킨지 보고서 평가는 동반성장의 맥락에서 볼 때 매우 의미심장하다. 양극화 개선 없이는 성장둔화를 피할 길이 없다. 동반성장의 출발점은 바로 이런 문제의식에서 나온 것이다. 21세기에는 지난 반세기 동안 자리잡은 불공정 분배관행을 공정하게 개선함으로써 지속가능한 성장을 추구하자는 ‘뉴 노멀 성장전략’, 즉 동반성장이 절실하다.

동반성장은 ‘공존을 통한 성장’과 ‘분배를 통한 성장’을 각각 함축한다. 핵심 메시지는 “공존과 분배를 전제로 해야만 지속가능한 성장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동반성장은 21세기 우리 사회의 시대정신(Zeitgeist)이다. 동반성장은 기업과 경제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21세기 글로벌시대를 살아가는 삶의 철학이자 새로운 사회공동체를 만들기 위한 근본가치다.

한편 ‘경제민주화’는 자본주의 경제에서 대·중소기업, 노동자, 소비자들이 서로 대등한 관계에서 경제활동을 영위하는 것을 일컫는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은 물론 노동자와 소비자들까지 기존의 수직관계에서 벗어나 수평관계로 선택의 자유를 누리게 되는 것이 경제민주화다. 어떤 개별 경제주체도 상대방과 자유롭게 거래할 수 있는 동시에 어떤 경우에는 거래하지 않을 자유도 있는 상태다.

기업이 근로조건을 내놓았을 때 노동자가 이것을 받아들이거나, 받아들이지 않을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가능하려면 노동자가 최소한의 생활수단을 확보할 수 있어야 하고, 새로 찾을 일자리가 많아야 하며, 한 직종에서 다른 직종으로 옮길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되어야 한다. 또 대기업이 구두주문, 납품가 후려치기, 어음결제 등 불공정거래를 시도할 때 중소기업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을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현실적으로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격차가 크지 않아야 한다. 재벌개혁이 경제민주화 논의의 초점인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경제민주화가 이뤄진 사회는 어떤 모습일까? 중소기업 부문이 강건헤 좋은 일자리가 많고 사회안전망이 적정 수준으로 갖춰지고, 경제력 집중 대신 노동권과 소비자 권리 등 공동체 구성원의 경제적 자유가 보장된다. 경제민주화는 경제적 측면의 동반성장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특히 ‘공존과 공정한 분배’에 초점을 맞춰 이를 이루려는 중요한 수단이다.

보수-진보 색깔론부터 뛰어넘어야

경제민주화는 동반성장의 필수조건이라 할 수 있다. 그만큼 동반성장은 넓은 개념이다. ‘동반성장론’이 튼실하게 뿌리내리려면 보수세력이든 급진세력이든 색깔론부터 뛰어넘어야 한다. 동반성장론은 보수세력에겐 급진이고 급진세력에겐 보수로 보이기 쉽다. 대기업 등 보수세력은 기존의 불공정 분배틀에 기초한 기득권이 일부 조정되는 것에 대해 급진이라며 불편해하고, 노동운동가 등 급진세력은 부분적 조정이 보수적 접근법에 기초한 눈속임이라고 매도한다.

동반성장을 이루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우선 초과이익공유(협력이익배분)를 실행해야 한다. 대기업이 목표한 것보다 높은 이익을 올리면 그 일부를 중소기업에 돌려 중소기업이 기술개발, 해외진출, 고용안정을 꾀하도록 하자는 것이다. 초과이익의 적지 않은 부분이 납품가 후려치기에 연유한다. 또 중소기업 적합업종을 선정하여 대기업이 더 이상 ‘지네발식’ 확장을 못하도록 해야 한다. 중소기업의 사업영역을 보호하기 위해 대기업들의 신규참여 확대를 금지하는 업종을 선정해 중소기업 자생력을 키워주자는 취지이다. 마지막으로 정부가 조달청을 통해 재화나 서비스를 조달할 때 예컨대 80% 이상을 중소기업에 직접 발주하도록 하는 등의 노력이 필요하다.

중소기업이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은 사람이다. 우수인력을 중소기업으로 유도하기 위해서 학자금 융자나 군복무 혜택을 주는 것도 방법이다. 정부의 R&D 자금 배분을 대기업 위주에서 중소기업 위주로 바꿀 필요가 있다.

동반성장으로 우리가 얻게 되는 것은 무엇일까? 무엇보다 성장이 촉진되고 지속적 성장의 기초가 된다. 대기업은 돈은 많으나 투자대상이 부족하고 중소기업은 투자대상은 있으나 돈이 없다. 투자증진을 위해서는 대기업에는 첨단, 핵심기술을 많이 제공해야 한다. 중기적으로는 R&D의 방향전환, 즉 D에서 R로의 점진적 전환이 필요하고 장기적으로는 교육혁신을 통해 국민 전체의 창의성을 제고해야 한다. 단기적으로는 대기업으로 흐를 돈이 합리적으로 중소기업에 흘러가게 함으로써 중소기업의 투자를 촉진하면 단기적 성장을 이루고 지속적 성장의 기초를 쌓을 수 있다.

하지만 경제주체들이 상호공존을 위한 특별한 노력과 정성을 기울이지 않는다면 동반성장은 영영 이상으로만 남게 될 것이다. 정부의 강력한 정책의지 위에 대기업의 선도적 변화와 중소기업의 자조가 어우러진 삼위일체, 이것이 바로 동반성장의 핵심동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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