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협상 재개, 미-이-팔 ‘동상이몽’
교착상태 타개 필요성엔 공감, 속셈은 달라
3년 가까이 교착상태에 빠졌던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중동 평화협상이 재개되면서 그 배경과 왜 이 시점에 이뤄지게 됐는 지 관심이 쏠린다.
미국의 중재하에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협상대표들은 29일(현지시간) 오후 미국 워싱턴DC에서 회동, 평화협상 재개 방안을 논의했다.
그러나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국경선 확정, 팔레스타인 난민, 동예루살렘 합의 문제 등에서 양측의 의견 차이가 커 적지 않은 난항이 예상된다.
이스라엘, 팔레스타인은 미국이 마련한 협상 테이블에 앉기는 했지만 각자 다른 속셈을 품은 가운데 미국은 이번 협상을 계기로 중동권에서 입지를 강화할 기회를 얻게 될 것으로 보인다.
◇ 미국, 중동에서 ‘정치적 복귀’ 발판 마련
미국이 이-팔 평화협상 재개에 가장 큰 역할을 했다는 데는 이견이 거의 없다.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은 지난 2월 국무장관직을 맡은 이후 중동 지역을 6차례나 방문할 정도로 중동 평화협상 재개에 가장 적극적으로 나섰다.
그렇다면, 미국은 왜 이 시점에 평화협상 중재에 나선 것일까.
미국은 2011년 초 ‘아랍의 봄’ 이후 중동에서 입지가 크게 약화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집트와 시리아, 리비아에서 정권이 전복되고 나서 유혈 사태가 발생해도 이렇다 할 ‘해결사’ 역할을 하지 못했다.
지난해 9월 이슬람 예언자 무함마드 모욕 동영상을 계기로 대규모 반미 시위가 이슬람권에서 들끓었고 이란-이스라엘 핵 분쟁, 시리아 유혈사태 해결에도 소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리비아에 벵가지에서는 크리스토퍼 스티븐슨 미국 대사가 무장 세력의 공격을 받고 숨지는 사건까지 발생했다.
미국 정부로서는 ‘아랍의 봄’ 이후 여러 정책적 실패를 거듭하고 나서 중동권에서 정치적 복귀를 노릴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됐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지난 대선에서 재선에 성공한 뒤 평화협상을 추진한 점도 정치적 부담을 덜 수 있게 하는 한 요인으로 분석된다.
이-팔 분쟁에 정통한 한 외교 소식통은 30일 “오바마 대통령이 현재로선 재선 성공에 대한 부담이 없어서 미국의 전략 지역인 중동에서 이-팔 분쟁이란 중요한 일에 적극적으로 나서 미국의 입지를 강화하려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 이스라엘, EU 제제 피하고 ‘시간 벌기’로 이용할 수도
이스라엘이 미국의 중재로 평화협상 재개에 동참한 이유는 자국에 대한 경제 제재를 피하고 국제사회로부터 정착촌 건설에 따른 비판을 무마하려는 ‘시간 벌기용’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이스라엘은 2010년 9월 팔레스타인과 협상이 중단되고 나서 미국, 유럽연합(EU) 등 국제사회의 반대에도 팔레스타인 점령지역 내 유대인 정착촌 건설을 강행해 왔다.
이 때문에 이스라엘은 현재 EU로부터 전방위 제재 위기에 놓여 있다.
EU는 지난해부터 정착촌에서 생산되는 제품에 대한 불매운동을 검토해온 끝에 올해 말까지 시행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다.
EU는 중동평화를 위해 정착촌 문제 해결이 선결 조건이라는 판단으로 이스라엘 측에 다양한 압박을 가해 왔다.
결국, 이스라엘이 EU의 제재를 피하기 위한 ‘시간 벌기용’으로 이 시점에 평화협상 테이블에 앉기로 했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게다가 이스라엘 내각에서는 지난 1월 치러진 총선 이후 평화협상 재개에 관한 우호적인 분위기도 형상된 것으로 관측된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이끄는 보수 집권당이 총선 후 중도 성향의 정당과 연정을 꾸렸기 때문이다.
네타냐후 총리는 중도 좌파의 하트누아당과 연정을 구성하면서 이 당 대표이자 전 외무장관인 치피 리브니를 법무장관으로 기용했다.
당시 리브니는 팔레스타인과 평화 협상에 주도적인 역할을 맡을 것으로 예상됐고 실제 리브니는 이스라엘 측 협상 대표로 지금 미국을 방문 중이다.
이러한 정황으로 볼 때 이스라엘의 평화협상 재개는 정착촌 건설에 따른 대내외의 비판과 제재를 피하는 동시에 변화한 정부 분위기를 보여주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이런 가운데 이스라엘은 평화협상 재개에 앞서 팔레스타인 수감자를 석방하는 조건으로 ‘이스라엘 스파이’ 조너선 폴라드의 석방을 케리 장관에게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해군 정보국 분석가로 활동한 폴라드는 중동권에서 벌어지는 미국의 스파이 행위와 관련한 기밀문서 사본을 이스라엘에 넘겨준 혐의로 1987년 체포돼 종신형을 선고받고 노스캐롤라이나 연방 교도소에 복역 중이다.
◇ 팔레스타인도 교착 상태 벗어나 경제적 이익을 챙길 기회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인 마무드 압바스에게는 이번 평화협상 재개가 자신의 입지도 강화하고 팔레스타인의 경제적 이득을 취할 기회로 작용할 것으로 분석된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는 이스라엘과 3년의 교착 상태에서 벗어나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점을 팔레스타인인들에게 보여줄 필요가 있는 시점에 있었다.
특히 ‘아랍의 봄’ 이후 이집트를 포함해 이-팔 분쟁을 중재하려는 중동 국가도 전혀 나오지 않으면서 답답한 상황이 계속됐다.
그러던 중 오바마 정부가 평화협상 재개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면서 출구 전략을 모색할 기회를 얻게 됐다.
더 나아가 케리 장관은 중동을 방문한 지난 5월 평화협상을 거론하며 팔레스타인에 40억 달러(4조5천억원 가량) 규모의 투자를 유치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케리 장관은 당시 양측이 평화 협상을 재개하지 않는다면 이 기회를 잡지 못할 것이라며 팔레스타인에 압박을 가하기도 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