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산정책연구원] 중동, 주변 4강 다음으로 중요한 파트너
*이 글은 아산정책연구원이 발행하는 ‘이슈브리핑’에서 에서 제공했습니다.
지중해 관점에서 조명한 중동의 지정학
중동은 우리의 주요 교역권이다. 우리는 원유 수입의 87%, LNG 수입의 42%, 건설 수주의 59%를 중동에 의존하고 있다. 또한 중동이 축적한 오일머니는 1조 3천억 불 규모의 국부펀드로 전환되어 우리기업의 소중한 재원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렇듯 우리에게 있어 주변 4강 다음으로 중요한 파트너는 중동이다. 비록 지리적으로는 멀리 떨어져 있지만 경제적 측면에서 긴밀하게 얽혀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중동의 존재를 중요하게 인식하지 않고 있다.
우리는 이란 핵 문제의 심각성과 대이란 제재의 필요성에 공감하지만 문제 해결의 과정에서 주도적 위치에 있지 않다. 그러나 우리는 무엇인가 해야만 한다. 리비아 사태 역시 우리의 의사와 무관하게 발생했으나 진행 및 처리 과정에서 마찬가지로 일정한 역할을 해야만 한다. 시리아 사태도 관망자의 위치에서만 바라볼 수는 없을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중동의 정치 질서와 지정학을 파악해야 함은 물론 역내 주연, 조연, 엑스트라의 특성을 분석하여 대처해야 한다.
우리가 중동에서 필요로 하는 것은 자원과 시장 그리고 돈이다. 반면 중동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은 산업 다변화 지원과 투자진출 증대다. 서로 필요한 사항을 주고받는 과정에서 유목 부족의 특성, 아라비아 상인의 기질, 미국과 유럽이 참여하는 지중해 질서, 자원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걸프 지정학 등에 대한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
특히 중동은 지중해 공동체의 일원으로 유럽과 불가분의 관계에 놓여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지난 천 년간 지중해의 주연은 1강(强)인 터키였고 조연은 1약(弱)인 유럽이었으나 산업혁명 이후 유럽은 주연으로 터키는 조연으로 뒤바뀌었다. 이후 석유시대가 도래하면서 조연급 엑스트라였던 걸프지역이 주연급 조연으로 부상했고 0.5약(弱)에서 1약(弱)으로 위상이 제고됐다.
최근 아랍의 봄에서 나타나는 각 행위자의 위상과 역할은 이러한 지정학과 무관치 않다. 또한 작금의 이란 핵 문제의 근원은 0.5약(弱) 시절 골목대장이던 이란이 1약(弱) 시대로 접어들면서 적응하는 과정으로 해석할 수 있다. 즉 현재의 주연인 서방, 과거의 주연인 터키, 주연급 조연인 이란, 부상하는 조연인 UAE와 사우디아라비아를 둘러싸고 중동 질서의 큰 그림을 그려보는 것이 필요하다.
7C~17C 중동국가의 부흥기
지중해는 서구문명의 요람이다. 이집트, 페니키아, 카르타고, 그리스, 로마 등 서구문명의 주역들이 모두 지중해 연안국이다. 유럽의 역사와 문화를 상징하는 로마가 476년 멸망한 이후 지중해는 유럽 중심의 역사에서 사라져 버렸다. 이후 1400년간 유럽은 지중해 무대에서 조연으로 전락했다.
7세기 마호메트의 등장 이후 수립된 우마이야 왕조는 시리아에서 북아프리카를 거쳐 이베리아 반도에 이르는 사라센 제국을 이룩했고 유럽을 지중해 북안에 묶어 놨다. 이후 압바스 왕조로 이어진 아랍 왕조는 1055년 아시아에서 이주한 셀주크 투르크가 수도 바그다드를 정복하면서 마감됐다. 셀주크 투르크는 12~13세기 몽고족의 침입으로 수명을 다했다.
이어서 흥기한 오스만 투르크가 1453년 비잔티움을 함락시킨 후 발칸 반도를 공략하며 북아프리카의 알제리까지 석권해 지중해 패권을 장악했다. 이 제국은 1923년 케말 파샤에 의해 전복될 때까지 지속됐다. 서로마 멸망 이후 유럽이 암흑의 천 년을 보내는 동안 투르크는 지중해를 지배하고 유럽과 아시아를 연결하면서 경제와 문화를 발전시켰다. 투르크 제국은 지중해 북안의 유럽을 야만시하면서 우월감을 과시했다.
그러나 투르크 제국의 선진문화는 18세기 유럽이 산업혁명으로 재기하면서 쇠퇴하기 시작했다. 대서양을 통해 세계의 바다를 지배하기 시작한 유럽은 근대화에 성공한 후 지중해 남안을 넘보기 시작했다. 이집트에 진출한 유럽은 아라비아 반도에서 반(反) 투르크봉기를 부추기면서 투르크 제국을 약화시켰다. 투르크 제국은 결국 1차 세계대전 시 독일 편에 가담하여 패배하고 영국과 프랑스가 진출해 옴에 따라 분열됐다.
투르크 제국의 동쪽에 있는 걸프만에서는 사산 페르시아 왕조가 천 년 이상 지속되다 651년 사라센 제국에 의해 멸망했다. 이후 걸프만 지역은 무굴제국의 통치를 거쳐 16세기 초 사파비 왕조를 시작으로 카자르 왕조와 팔레비 왕조 치하에 놓였다. 뒤이은 석유의 발견은 지중해 무대의 변방에서 유명무실하던 걸프 지역을 역사의 무대로 등장시켰다.
중동 질서도 본질적으로 지중해 문명에서 형성
중동은 북아프리카 지역과 이스라엘, 시리아와 이라크 주변지역, 이란과 아라비아 반도를 포함한다. 지리적으로 지중해의 동안과 남안, 걸프만 연안 지역을, 역사ㆍ문화적으로는 투르크 제국과 페르시아를 포함한다.
유럽과 중동은 매우 근접해 있다. 중동 질서도 본질적으로 유럽의 정치ㆍ경제ㆍ역사ㆍ문화의 뿌리인 지중해 문명에서 형성되어 걸프지역으로 파급되었다. 그러나 정치ㆍ문화적 이유로, 사라센 및 투르크 제국이 유럽을 구분했고 유럽의 흥기 이후에는 유럽 제국주의 가 중동을 구분하고 걸프지역을 중동에 포함시켰다. 하지만 유럽과 중동은 지중해 공동체로 간주되어야 한다. 그리고 지중해 문명권의 동쪽에 종교 및 경제적 이웃이라 볼 수있는 걸프지역이 있다. 이들이 주연과 조연의 역할을 바꿔가며 조화를 이루어온 것이 중동의 지정학이다.
지중해 및 걸프 지역은 5세기 서로마의 멸망까지 로마 독주의 시대였다. 이후 이 지역에서 1400년간 사라센과 투르크 제국이 강자로 군림했고 유럽[1약(弱)] 및 페르시아[0.5약(弱)] 세력이 합류했다. 이는 1강(强) 1.5약(弱)의 3자 구도로 해석할 수 있다. 18세기 후반 발발한 유럽의 산업혁명은 이러한 지중해권의 지정학을 바꿔 놨다. 근대화를 이룩한 유럽은 북아프리카 진출을 시도하면서 투르크 제국의 분열을 가속화시켰다. 1798년 나폴레옹 군대의 이집트 원정은 이러한 움직임의 서막을 열었다. 이는 1강 1.5약 3자 구도의 주연이 유럽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유럽의 위협 속에 19세기 투르크 제국의 술탄은 근대화를 추진했지만, 보수 세력의 쿠데타로 인해 100년의 세월을 낭비하다 독일과 손을 잡았다. 그러나 1차 세계대전의 격랑 속에 독일과 함께 패전함에 따라 제국은 해체의 길을 밟았다. 영국은 투르크 제국 내 아랍 민족주의를 부추기면서 반(反) 제국 봉기를 유도했고 제국이 와해된 이후 프랑스와 함께 중동을 분할해 투르크 제국을 조연으로 격하시켰다.
영국과 프랑스가 중동을 분할할 때까지만 해도 중동의 지역구도는 주연이 바뀌었을 뿐 1강 1.5약 3자 구도에 변화가 없었다. 그러나 20세기 초 하심 가 등 유력 부족 가문이 반 투르크 봉기에 참여하고 2차 세계대전 후 여러 왕조가 창건됨에 따라 중동은 복잡한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더욱이 이후에 발생한 여러 혁명과 냉전 구도하에서 미국과 소련의 간섭이 시작되었고 탈냉전이 야기한 여러 변화는 중동의 복잡성을 더욱 심화시켰다.
이란의 운명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카자르 왕조는 러시아의 남진과 영국의 걸프만 진출로 인해 제구실을 하지 못하다가 1925년 팔레비 왕조로 대체됐다. 그러나 팔레비 왕조도 영국의 이익 실현에 동조하는 역할 이상을 하지 못했고 1979년 이슬람혁명을 맞이해 현재의 이란 이슬람 공화국에 이르고 있다.
중동 21개국?대부분?신생?왕조로 출발 ????
현재 중동 국가는 21여 개국이고 인구는 3.5억 명이다. 이들 대부분은 신생 왕조로 출발했다가 혁명을 통해 공화정으로 전환했다. 여기에 이스라엘이 인위적으로 추가됐다. 1차 세계대전 이전까지 2천 년 동안 존재하지 않았던 국가가 생겨난 것이다. 사막이 많아서 다수가 유목생활을 해왔던 이곳엔 석유 8,115억 배럴과 천연가스 81.8조 세제곱미터가 매장되어 있다. 따라서 과거 지중해 연안을 따라 형성된 활동무대가 석유와 가스 덕분에 걸프지역으로 이전되었다. 점차 걸프지역은 중동의 가장 중요한 곳이 되었고 이로 인해 중동이 국제무대에서 새로운 의미를 가지기 시작했다.
2011년은 중동정세에 지각변동이 일어난 해다. 튀니지의 벤 알리 대통령이 물러났고 이집트의 무바라크 대통령이 뒤를 따랐다. 이어 유혈사태를 거쳐 리비아의 카다피가 실각했다. 시리아 역시 혁명의 과정 속에 놓여 있다. 대외 관계에 있어서 핵무기 개발을 둘러싼 국제적 갈등이 걸프만 북안에서 지속되고 있다. 이러한 중동의 갈등과 긴장은 지중해 연안과 그 연장선상에 있는 지역의 문제다.
리비아 사태는 파리 정상회의에서 시작하여 파리 정상회의로 종결됐다. 현재 진행 중인 시리아 사태는 지중해 연안을 배회하며 협의가 이루어지고 있다. 이란 핵 문제는 E3+3 이 협의 중이다. 즉 중동 문제에서 유럽의 역할이 두드러지고 있는 것이다. 유럽의 연장선상에 있는 미국과 러시아가 주요 행위자로 추가되었지만 현재는 역할이 모호하다. 주연과 조연이 바뀌고 행위자의 수도 많아지는 가운데 과거의 3자 구도는 그 모습이 많이 변형되었다. 이처럼 중동 문제는 풀기 어려운 숙제가 돼버렸으나 중동 질서의 근본은 변하지 않았다.
문제의 핵심은 유럽과 중동의 뿌리가 같다는 점에 있다. 중동문제는 중동만의 문제가 아니다. 지중해 시각에서 바라보면 문제의 본질을 발견할 수 있다. 지중해를 남과 북으로 인위적으로 나누어 놓고 원래 그렇다고 인식하는 데서 오류가 발생한다. 지중해는 하나이고 연장선상에 걸프지역이 있다. 그 안에 중요한 단위가 부족이고 돌연변이 현상을 유발하는 요인이 자원이다. 지중해라는 무대에서 주연과 조연 그리고 엑스트라가 누구인지 구분하면 모든 문제의 답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글=정태인 외교통상부 아중동국 심의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