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 직전 읽는 편지] “형은 어쩌면 살인자야!”
형 죽음만 중요해? 왜 모두를 죽음으로 몰아?…‘자살부담금’이라도 물려야 돼?
형! 지금 무슨 생각하는지 다 알아. 내가 정말 안다니까.
형이 마포대교 위에 선 것은 절대 형이 못나서 그런 게 아니야. 머리 위에서 형을 짓밟고 선 ‘자본’과 말로만 공평한 ‘국가’, 형 눈물 못 본 척 외면해온 ‘사회’가 못난 거야. 분명해.
하지만 형! 내 애길 들어봐. 속는 셈 치고 들어봐. 내 생각에 자살은 범죄야. 범죄 중에서도 가장 악질적인 ‘살인 범죄’야. 왜 그럴까. 먼저 형수와 조카들이 죽을 확률이 급격히 높아져. 가족에게 씻을 수 없는 정신적 상처와 경제적 고통을 심화시켜 죽음에 더 빨리 이르게 하는 것이지.
전동차로 뛰어 들어 자살하는 사람 예를 들어 볼게. 그 사람 때문에 사고 전동차 운전자는 심한 정신적 외상(Trauma)을 겪게 돼. 죽을 확률이 급속히 높아지겠지. 그 뿐인가? 운행 중이던 모든 열차가 꽤 긴 시간동안 멈춰야 해. 자살자는 이처럼 타인들에게 심대한 불편과 정신건강을 위협하는, 공공의 적 ‘테러리스트’야.
형 정말 자살하려고 그랬어? 형이 뭔데 형수와 조카의 생존을 위협하고 타인들의 시간을 빼앗고 스트레스를 가중시키고 건강을 해쳐? 왜 남의 사망확률을 높여? 형이 자살하는 바람에 제 시간에 약을 먹지 못해 치료시기를 놓쳐 위험해지는 사람이 없다고 장담할 수 있어?
다들 힘들어. 임금, 납품가는 10년째 동결인데 물가는 3배를 뛰었대. 실질소득이 팍팍 줄어드는 거지. 자살자들이 요즘처럼 늘어나면 그 처리하랴, 예방하랴 세금 더 걷어야 해. 세금부담 증가로 가처분소득마저 줄면 스트레스가 늘어 건강이 더 악화돼. 성큼성큼 죽음에 가까워지게 되는 셈이지.
힘들고 팍팍해도 열심히 살아가려는 사람들 위해 복지 한다잖아. 거기에 써야할 돈 자살하는 사람들 수습하느라 다 써봐. 열심히 살아보려는 약자들 더 힘들어지잖아?
자살자는 모방 범죄의 원인제공자이기도 해. 자살을 감행한 자가 자살을 망설이던 사람들을 빨리 실행에 옮기도록 종용하는 셈이지. 자살자 때문에 타인의 자살시기가 크게 앞당겨지는 점, 이것도 자살자에게 ‘살인’ 혐의를 적용할 충분한 근거가 될 수 있는 것 아닌가?
‘오죽하면 그런 극단적인 선택을 했을까’라고 이해는 해. 하지만 ‘자살’이 ‘살인’ 수준의 범죄라는 인식이 없다면 한국에서 자살률은 줄어들지 않아.
‘죽음’을 최고의 형벌로 사고하기 때문에, 스스로 죽어버리면 더 이상의 형벌이 없으리라는 사고가 용인되면 안 돼. 그래선 이 자살 행렬이 멈추지 않아. 자살자가 ‘살인’을 저지르면서도 아무런 죄책감도 없이 자신의 죽음만 생각하도록 내버려둬선 곤란해. 당연히 형도 마찬가지야. 형도 형의 죽음만 생각해선 안 돼. 그건 너무 이기적이고 악독해.
형! 그거 알아? 지구촌 백과사전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2011년 현재 한국의 자살률은 인구 10만 명당 31.7명으로 지구촌에서 1등이야. 우리가 그런 나라에 살아. 2012년 통계로 보면 더 기막혀. 인구 10만 명당 33.5명으로 해를 거듭할수록 2위와의 격차를 벌이고 있지.
동아시아에서 중국(6위, 2011년)과 일본(7위, 2011년)이 한국과 함께 모두 10위권 안에 랭크됐어. 중앙아시아 카자흐스탄(4위, 2008년)이, 남아시아 스리랑카(10위, 1996년)도 10위 안에 들었네. 유독 동남아시아에서는 필리핀(23위)과 싱가포르(45위)가 50위 안에 들었을 뿐인데.
자살자가 요즘처럼 늘어나면 한국 정부는 어쩌면 유족들로부터 ‘자살 부담금’을 걷자고 할지도 몰라. 한 500만 원쯤? 형! 내 얘기 황당해? 하지만 웃지 마! 항상 상상을 초월했잖아.
형! 내 생각에 자살은 다른 죽음과 많이 달라. 가족과 친구, 친지들에게 분명히 해를 끼쳐. 자살자 때문에 그들이 당뇨병 환자, 아니면 바닷물에 잠겼던 자동차처럼 변한다고 하면 비슷한 표현이 될까.
내 말이 자살자들의 고뇌와 영혼을 모독한다고 욕해도 좋아. 내가 하릴 없는 몽상가라고 놀려도 좋아. 예비 자살자들이 ‘자살은 범죄, 그것도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을 죽이는 살인 범죄’라는 사실만 깨닫는다면 나는 어떤 비난과 조롱도 감수하겠어.
형! 나라면 죽으면서까지 범죄를 저지르진 않아. 일생의 단 한번 멋지고 품격 있게, 명분 있게 죽고 싶어. 죽는 순간까지 나의 존재 이유였던 가족과 무고한 이웃들에게 피해와 고통을 안겨줄 순 없어. 나쁜 놈들과 싸우다가 죽던가. 아무튼 난 아름답게 죽을 거야.
차라리 ‘자살률 세계1위’를 만든 자들과 싸울 거야.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에서 지구촌 사람들의 기억에서 ‘자살률 세계1위 대한민국’을 지울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