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성교육 없으니 ‘나만 잘 살면 그만’이라 생각해”
김병일 국학진흥원장 “타인 배려 유교 가르침 배웠으면”
김병일 前 기획예산처 장관이 조선시대 유교문화의 중심지인 경상북도 안동에서 국학의 세계화에 나섰다.
김 前 장관은 2년 전 안동에 있는 한국국학진흥원 원장으로 취임했다. 그를 안동으로 이끈 것은 도산선원에서 만난 퇴계 이황의 정신이다.
9일 안동에서 만난 김 원장은 “선비수련원에 참여하려고 서울에서 안동을 매주 다녔다. 가까운 사람에게 내가 이렇게 대하면 안 되고 이렇게 대해야 한다는 내용인데, 그게 필요하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나. 듣다 보니 좋더라. 젊은 사람들에게 더 필요한 내용”이라고 말했다.
오랜 공직 생활 뒤 봉사활동을 꿈꾸던 그에게 또다시 기관장 자리는 내키지 않았지만 7개월을 고사한 뒤 원장직을 수락했다. 그는 “도시에서 매연을 맡거나 골프 치러 다니는 것보다는 퇴계 선생을 느끼는 것이 낫겠다 싶어 결국 이곳에 왔다”고 했다.
유교문화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선비정신은 어떤 것일까.
김 원장은 이 시대의 참선비로 고 김수환 추기경을 꼽았다. “김 추기경은 이 시대 최고의 선비다. ‘자신을 낮추고 남을 높인다’는 박기후인(薄己厚人)의 전형적인 삶을 살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 추기경은 지난 2000년 유림이 주는 심산상을 받기도 했다. 당시 수상을 고사했던 그는 받은 상금 700만 원에 300만 원을 더해 심산사상연구회에 돌려줬다.
“검소하게 생활하면서 아낀 것을 남을 위해 쓰셨다. 사람들은 타인에 대해 쉽게 흉을 보는데 김 추기경은 남을 이해하려고 노력할 뿐 아니라 나쁜 면에 대해서는 보살핌이 모자라 부끄럽다고 생각한 분이다. 우리의 참선비들은 그렇게 살았다”고 했다.
나를 낮추고 남을 높이는 겸양과 공경의 삶은 물질과 정신 모두에서 나온다.
참선비로 꼽히는 퇴계 이황도 그런 삶이었다. 의복을 20년간 입어 낡고 헤져 추위를 견딜 수 없게 되자 그제야 손자에게 새 옷 사는 것을 알아보라고 했다는 일화도 있다. 가난한 백성을 생각하며 반찬의 가짓수를 줄여 손님상도 제대로 대접할 수 없었다고 한다.
김 원장은 “있다고 다 쓰는 게 아니다. 내가 쓸 만큼만 쓰고 남과 함께 하려는 마음, 이런 것이 대동(大同)사회이다. 만물일체의 사상이다. 그런 삶을 살다 보면 나만 잘 먹고 잘 살면 되고 내 자식만 유산 많이 물려줘야 한다는 생각이 나올 수가 없다. 지식보다 인성교육이 먼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최근 학생이 교사에게 폭력을 휘둘렀다는 뉴스에 대해서도 교육의 문제라고 얘기했다.
“지식은 자신의 능력을 키우는 것이고 인성교육은 남에 대한 배려를 배우는 것이다. 예전에는 지식보다 인성을 먼저 가르쳤다. 많이 배운 사람은 인격적으로 존경받는 사람이었다. 퇴계 선생이 존경받는 것은 단지 학문이 높아서가 아니라 평생을 가까운 사람부터 진심으로 대해온 그분의 삶을 높이 사기 때문이다”
한편 우리나라는 한·중·일 가운데 유교문화의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모두 갖추고 있는 나라라는 것이 김 원장의 설명이다.
“중국은 종가, 위패, 종손 등 남아 있는 소프트웨어가 대부분 사라졌고 일본도 유교의 역사가 길지 않다. 반면 우리나라는 공자나 주자가 가르친 내용을 아직도 실천하고 있다. 박물관에 모셔둔 유물이 이곳에서는 살아 움직이고 있는 것”이라고 밝혔다.
특히 유교 사상의 내용을 구현하는 소프트웨어 중에서도 사람이 하는 맨웨어(manware)가 가장 중요하다고 했다. 유교의 선비정신을 오늘날 인성교육에도 적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 원장의 집무실에는 ‘예인조복(譽人造福)’이라는 문구가 걸려 있다. 퇴계 이황의 16대 종손인 이근필 선생이 쓴 이 한자는 ‘다른 사람을 칭찬하는 것이 복을 가져온다’는 의미이다.
“남에게 좋은 얘기를 해주면 행복한 삶을 사는데 보탬이 된다. 복은 가까이 있다. 가까운 사람에게 잘해야 한다.”
퇴계 이황 선생이 옆에 있는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