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목받는 아시아 예술가] ①필리핀 화가 ‘레슬리 드 차베즈’
*문화체육관광부는 ‘2012 아시아 창작공간 네트워크 사업’의 일환으로 9월4일부터 서울 안국동 송원아트센터에서 ‘근대 이후 아시아 예술의 공공성’이라는 주제로 전시회를 개최하고 있다.?전시마감은 10월4일.
이번 전시회에는 전 세계적으로 반향을 불러일으킨 리크릿 트라반자(태국)를 비롯해, 국제적으로 역사적 사건을 예술언어로 승화시키면서 명성을 얻고 있는 레슬리 드 챠베즈(필리핀), 중국의 근현대사를 사회주의 리얼리즘적 요소로 담아낸 비디오아티스트 쩡윈한(중국) 등 11명이 참여했다. ?
각 나라를 대표하는 이들의 작품을 통해 그 나라가 안고 있는 문제를 엿볼 수 있다. 작품에 대한 해설과 이들의 이력을 소개한다.?작품해설은 도록을 참고했다. -아시아엔(The AsiaN)
예술의 사회적 역할 고민하는 젊은 작가 레슬리 드 차베즈
필리핀 마닐라 태생의 레슬리 드 차베즈 (Leslie de Chavez, b. 1978)는 자국이 겪어왔던 식민주의의 역사와 종교, 제국주의 등의 민감한 소재를 다루며 예술이 사회에서 가질 수 있는 역할과 기능, 반향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하는 젊은 작가다.
빼어난 회화적 기량과 감각을 바탕으로 주목을 받아온 작가는 지난 몇 해 동안 자신이 속한 사회에 대한 신랄한 비유, 즉 현실에 대한 대응을 시대적 아이콘이나 심볼을 재구성하여 제시하기 시작했다. 자본주의의 마스코트라고 할 수 있는 맥도날드의 광대 캐릭터 로날드를 차용해 상업화에서 이루어지는 몰개성과 부정부패를 단적으로 표현하는 것이나 필리핀의 대표적인 산물인 바나나를 작업소재에 빈번하게 등장시키는 것, 영혼을 잃은 듯 검게 패인 눈동자를 가진 자국인들에 대한 염세적 묘사는 이 모든 것을 상징하는 도상으로 읽혀진다.
또 작가가 과거에 제시했던 전시 타이틀-경제적으로 자립하지 못하고 타 강국에 원조를 받고 있는 불안정한 공화국이라는 의미의 ‘바나나 리퍼블릭 (Banana Republic)’과 필리핀인들이 권력 투쟁의 피해자가 되고 있는 현실에 대한 ‘깊은 한숨 (Buntong Hininga)’ 또한 그간의 분투를 증명하는 이력이다.
레슬리 드 차베즈가 믿고 있는 사회와 예술에 대한 가치관은 확고하고 분명하다. 그것은 노력과 열정을 반영한 작품으로 현실에 대한 성찰을 유도한다. 개념이나 주제의식 없이 시각적인 공격으로 어필하는 작품들이 범람하는 동시대 미술계에서 그의 예술이 구별되는 이유다. <아라리오 갤러리 자료 참조>
그는 1999년 University of the Philippines College of Fine Arts를 최우수학생으로 졸업하고 2002년부터 본격적인 작업을 시작했다. 2003년 필리핀의 Kulay Diwa Galleries 에서 첫 개인전을 가졌으며 한국에는 2005년 고양 스튜디오 레지던시 해외 입주작가로 선정되면서 알려지기 시작했다.
2007년 아라리오 갤러리와 전속계약을 맺으며 ‘Red-eyed Brother’ 전시로 주목을 받았고 이후 스위스의 Avanthay Contemporary 와 필리핀의 Silverens Galleries 에서 전시했다.
대안공간 루프, 난징 트리엔날레, 독일 Leipzig 국제 예술 프로그램, 대만 국립현대 미술관에서 기획한 아시아 아트 비엔날레에 참여했다. 다수의 수상과 레지던시 경력을 가지고 있으며 동남아시아 현대미술에 주력한 전시에 공동 기획자로 활동을 하는 등 다양한 움직임을 보여주고 있다.
<작품해설> 검은색에 저항했지만 결국 검은색으로 머물러 버린
레슬리 드 차베즈의 폭로와 냉소는 그의 나라와 그의 민족들이 당면한 위태로움을 여실히 드러낸다. 검은 바탕에 덧입혀지는 색은 그가 드러내려는 의지와 행동이다.
그러나 검은 바탕은 너무나도 짙다. 무한히 덧입혀지더라도 그 색을 영영 오염시켜 버릴 듯도 하다. 어쩌면 한결같이 영원할 결과를 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가 경험해온 그의 조국은 식민통치와 무소불위의 독재라는 망치질 아래 놓인 붉은 쇳덩어리일까.
뜨겁게 저항하지만 결국엔 두드림으로 가꾸어지고 굳어버리는 모습 말이다. 검은색에 저항했지만 결국 검은색으로 머물러 버린 그의 작품은 그의 조국과 민족을 넘어 우리에게까지 말한다. 현재가 처한 사회 경제 정치적인 요소의 부조리와 문제에서 영원히 자유로울 수 없다고. 하지만 이것은 우리의 처절한 절명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안일한 안위의 순간이야말로 죽음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김남주 기자 david9303@theasian.asia
*한 작품을 클릭하면 슬라이드로 감상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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