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기칼럼] 참이슬 ‘점자소주’와 금강산 ‘점자명함’
아시아엔은 오는 11월11일 창간 3돌을 맞습니다. 그동안 독자들께서 보내주신 성원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아시아엔은 창간 1년만에 네이버와 검색제휴를 맺게 됐습니다. 하지만 제휴 이전 기사는 검색되지 않고 있어, 그 이전에 발행된 아시아엔 콘텐츠 가운데 일부를 다시 내기로 했습니다. 독자 여러분께 좋은 정보가 되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편집자>
지난 주말, 평소 ‘처음처럼’을 즐겨 마시는 기자는 삼겹살에 ‘참이슬’을 시켰다. 그런데 두 병째 주문한 소주병에 점자가 새겨져 있는 게 아닌가?
‘아니 소주병에 점자라?’ 일행 중 누군가 인터넷 조회를 했다. 2007년 1월10일자 <매일경제> 관련기사가 보였다.
“진로(대표 하진홍)가 올 1월부터 출시되는 ‘참이슬 후레쉬’ 소주병에 시각장애인용 점자 표기를 도입했다. 시각장애인용 점자 표기는 ‘참이슬 후레쉬’ 360㎖ 제품 병 목부분에 새겨졌으며 점자 내용은 회사명 ‘진로’로 했다. 시각장애인이 촉각으로 제품을 쉽게 식별할 수 있도록 영문마크 ‘JINRO’와 ‘두꺼비 아이콘’도 양각으로 돌출시켰다. 진로는 소주 전 제품으로 점자 표기를 확대할 방침이다.” [채경옥 기자]
제법 술꾼으로 호가 난 기자가 술병에 점자가 새겨져 있다는 걸 처음 발견하다니···. 지금 이 글을 쓰기 전 ‘점자 소주’를 넣어 인터넷 조회를 해봤다. 블로그에 몇 건이 더 있다.
네이버 블로그 ‘여행을 떠나자’(2008.8.19)에 보니 “참이슬 소주에 보면, 이렇게 점자가 새겨져 있습니다. 알고 계셨나요? 역시. 깔끔한 ^^ 소주병만큼이나 깔끔한 배려네요.”
‘지구벌레의 꿈꾸는 마을’(2009.9.24)도 소주병의 점자를 소재로 다루고 있다.
그런데 소주회사들이 병을 재활용해 공유하다 보니 ‘진로’ 점자가 새겨져 있지만, 다른 주류회사의 병에 ‘진로’ 점자가 발견되기도 한다. 어떤 참이슬병에는 ‘선양’이라고도 적혀 있다. 병이 비슷하게 생겨 서로 교환해가며 병을 사용하는 까닭이다.
한 블로거는 “음료수병에 점자를 새겨 시각장애인들이 쉽게 고를 수 있도록 편의를 줬으면 한다”고 썼다.
어떤 주당은 “술을 마시면서 가장 먼저 확인하는 것은 ‘점자표기’가 있느냐 하는 것”이라고 할 정도니 주류회사들이 귀담아 들어야 할 것 같다. 술병의 점자 표기는 약 종류의 점자표기와 더불어 ‘생명’이 걸린 일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다.
기자는 6~7년 전 점자명함을 소지하고 있었다. 필자는 한국기자협회 회장 임기만료 한 달을 앞둔 2005년 12월 호주에서 열린 IFJ 집행이사회에 참석했다. 2007년 IFJ 총회를 한국에 유치하기 위해서였다. 한국은 3년마다 열리는 총회를 2001년 개최한 데다, 2007년 총회엔 러시아 등 7개국이 신청을 하여 매우 불리한 상황이었다. 필자는 먼저 점자명함을 20여 명의 집행위원들에게 나눠주고 프리젠테이션을 했다.
“방금 나눠드린 명함은 점자로 새겨져 있습니다. 제가 1년에 만나는 시각장애인은 10명 남짓 입니다. 하지만, 그들에게 점자명함을 드리면 그렇게 좋아할 수가 없습니다. 그것이 바로 제가 점자명함을 사용하는 이유이고, 그들이 기뻐하는 이상으로 저도 행복합니다. 지금 지구상에 우리 기자들의 손길을 기다리는 곳이 있습니다. 바로 북한땅이고 북한 주민들입니다. 그런데 지금 평양이든 개성이든 북한을 가는 일은 아주 어렵습니다. 단 한 곳 예외가 있습니다. 금강산입니다. 우리 그곳에서, 세계에서 단 하나 남은 분단의 땅 한반도에서 평화와 자유를 맘껏 토론합시다.”
다음 날 아침 IFJ 크리스토퍼 워런 회장과 에이든 화이트 사무총장이 숙소로 찾아왔다. “한국은 2001년 정기총회를 했는데 2004년 그리스에서 하고, 다시 2007년 하기는 어렵다. 그 대신 금강산에서 특별총회를 개최하는 안을 집행위원들이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특별총회는 IFJ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2007년 봄, 전세계 100여 개국의 300여 기자들이 금강산에서 세계평화와 언론자유를 토론하는 특별총회가 열렸음은 물론이다.
필자는 점자명함 하면 당시의 일들이 주마등처럼 떠오른다. 싱가포르에서 날아와 함께 해준 아시아기자협회 이반 림 부회장(현 회장)과 몽골, 중국, 말레이시아 등의 부회장들은 한국개최의 필요성을 연명으로 작성해 집행위원회에 제출해 주었다. 이들의 간절한 바람이 점자명함의 ‘배려정신’과 함께 집행위원들의 마음을 움직이지 않았을까 싶다.
태풍 볼라벤이 한반도와 주변국들에 피해주지 않고 물러가면 점자 있는 걸로 술 한잔 기분 좋게 해야겠다.
이상기 기자 winwin0625@theasian.as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