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후 평양①] ‘이념 공간’서 ‘사회적 소비공간’ 탈바꿈
평양이 서울에게, 서울이 평양에게
[아시아엔=이주홍 <코리아헤럴드> 기자] 평양은 통일 후 자본주의 시대를 맞아 어떻게 변화할까? 조동호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저서 <평양이 서울에게, 서울이 평양에게>에서 장기적으로 북한 지방도시의 위상은 올라가는 반면 평양의 위상은 하락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조 교수는 “현재 북한경제는 시장부문과 계획부문으로 ‘이중구조화’가 진행되고 있고, 앞으로 시장의 확대로 이어질 것”이라며 “이는 평양뿐 아니라 북한 전역, 특히 중국 접경지역에서 ‘분권화’로 연결돼 지방의 발달을 촉진시킬 것”이라고 전망했다. 과거 강력한 중앙통제와 계획경제 시스템 하에서 자원분배가 인위적으로 평양에 집중됐다면, 앞으로는 자연적으로 지방의 각 지역으로 나뉘어지며, 이에 따라 지방이 발전할 것이라는 설명이다.
조 교수는 “서울이 경제적 요인으로 인해 확대돼 왔다면, 평양은 이와 달리 경제적 요인으로 인해 축소되는 경로를 밟게 될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현재 ‘사회주의 도시’ 평양은 평등이라는 사회주의 본래 취지에 어긋나는 소득격차, 주거격차, 산업불균형 등의 문제로 홍역을 치르고 있다. 다수의 전문가들은 이것이 사회적 양극화와 불안한 주거, 환경오염, 높은 물가와 같은 ‘자본주의적 모순’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사회주의적 생산과 분배 시스템의 모순’으로부터 기인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최막중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교수는 “통일 후 국가소유의 토지가 사유화되는 과정에서 도시계획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북한 주민들에게 통일과 관련해 가장 큰 관심사는 정치경제 이념보다 안정적이고 풍요로운 삶”이라며 “북한 주민들 사이에 통일이 보다 많은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는 인식을 퍼트릴 필요가 있다”고 했다.
최 교수는 “주택이나 토지, 부동산 등은 주민들의 삶의 기반으로서 더 나은 삶을 영위하기 위한 필수조건”이라며 “특히 체제전환 시 재산권의 재분배는 권력 엘리트들의 이해관계를 통일로 이끄는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역설했다.
실제로 많은 동유럽 국가에서는 ‘신흥재벌(oligarch)’이라 불리는 과거 공산당 엘리트들이 국유재산 매각과 부동산 투기 행위에 적극 개입함으로써 막대한 부를 축적했다.
최 교수는 이와 관련 “통일 후 기존 거주자들의 점유권을 인정하고, 이를 점차 소유권으로 전환시킬 것”을 제안했다. 이로써 북한 주민들은 부동산거래를 통한 자산의 증대를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또 시장경제를 활성화시키고 주민들의 대규모 남한 이동을 줄일 수 있는 방안이라고 최 교수는 말했다.
북한 전문가들은 “통일 후 이주제한 정책이 풀린다면 많은 사람들이 평양으로 몰려들 것”이라고 예측한다. 전문가들은 ‘도시화’ 과정에서 평양의 토지와 주택 가격이 형성되고 건설수요가 상승할 것이라고 말한다.
평양의 아파트들은 대부분 1970~80년대 질 낮은 콘크리트로 지어졌기 때문에 대규모 재건축·재개발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최막중 교수는 늘어나는 인구와 이를 수용하기 위한 대규모의 신규건설을 위해 평양 외곽지역에 위성도시를 개발할 필요성이 커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현수 단국대 교수(도시계획부동산학부)는 독일 통일과정에서 서독이 동독을 흡수한 것이 아니라 화폐 통합을 통해 동독 주민들이 통일을 원하도록 만들었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그는 “남북한의 경우에도 통일 후 토지를 점진적으로 사유화할 것”을 제안했다. 그는 “이는 북한 주민들의 자산형성과 함께 북한경제를 빠르게 회생시키고 정부의 통일비용을 최소화하는 데 유익하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기업이 투자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며 “기업은 수입원에 대한 명확한 예측 없이는 투자를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토지에 대한 감정평가가 기업들의 대북투자의 선결조건”이라며 “이를 위해 한국정부와 국내·해외 기업들이 시장친화적인 북한 정권을 지원하고 시장메커니즘을 잘 규제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주거복지 차원와 관련해 저소득층과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공공임대주택을 대량 확보하는 것과 도심의 생태적, 사회적, 문화적 시설들을 잘 보존하는 것을 통일정책의 핵심과제로 뽑았다.
도시계획 전문가들은 서울의 한양도성, 종묘, 경복궁, 비원 등의 사례처럼 북한에서도 신시가지에 개발예정지를 미리 확보하고 주택건설 수요를 유도하는 것이 도심의 역사유적을 보존할 수 있는 방안이라고 입을 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