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선 구둔역, 추억 속으로


경기도 양평군 지평면의 중앙선 구둔역이 16일 새로운 구둔역으로 업무가 이관되면서 폐역된다.

추억의 간이역인 구둔역은 1940년 보통역으로 영업을 시작해 지금까지 기차여행객, 간이역 동호회, 사진동호인 등으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아왔으나 중앙선 복선전철 개통으로 신 구둔역으로 이설되면서 추억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 다행히 등록문화재(2006년 12월4일 지정)로 지정된 바 있어 역사는 철거되지 않고 남아있게 됐다.

황성적 부역장(오른쪽)과 담소 나누는 유춘일 옹

이 마을에서 60년을 넘게 사신 유춘일 옹(96)은 한국전쟁 후 구둔역에서 상당 기간 역무원으로 일했다면서 구둔역이 문 닫는 것을 몹시 아쉬워했다.

“문을 잠그지 않고 열어두면 내가 관리하고 손님들에게 안내도 해줄 수 있는데…. 돈도 안 받고 해줄 수 있거든. 그러니 부역장이 얘기?해서 날 좀 시켜줘!”라며 떼(?)를 쓰신다.

“나랑 같이 근무했던 당시 동료들은 다 뒤졌어(웃음). 이제 마지막 소원이라면 죽는 날까지 이 문화재를 여기서 관리하다 죽으면 좋겠어….”

지나가는 화물열차를 바라보는 유춘일 옹. 잠시 추억에 잠긴 듯 하다.

매일 구둔역에 마실 오는 할아버지는 구둔역의 ‘구둔(九屯)’이 무슨 뜻인지 아느냐며 ‘구둔’은 ‘아홉 번 진(陣)을 친다’는 뜻으로 임진왜란 당시 왜군이 이 역 뒷산에 아홉 번 진을 쳤다는 데서 유래한 이름이라고 했다. 또 6·25 때 주변은 모두 폭격을 맞아 쑥대밭이 됐지만 구둔역은 별 피해 없이 처음 생길 때 모습 거의 그대로라고 했다.

“가을에 또 와, 은행 따 줄게. 은행이 몸에 굉장히 좋거든”이라며 집으로 돌아가시는 할아버지의 뒷모습이 다소 쓸쓸해 보였다.

소원나무에 소원적는 신근숙 씨(오른쪽) 일행

“구둔역이 없어진다고 해서 멀리 전남 무안에서 일부러 왔다”는 신은숙(33) 씨 일행은 역내 소원나무에 소원을 적으며 “예전 역 주변에서 반딧불이 축제할 때 정말로 예뻤다”면서 구둔역이 사라지는 것을 아쉬워했다.

이주 준비로 바쁜 황성적 부역장

이곳에 부임한 지 1년여 된 황성적 부역장은 “부임한 지 1년밖에 되지 않았지만, 그동안 추억을 되짚으며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았고 특히, 영화 ‘건축학개론’ 촬영 이후 찾는 사람들이 더 늘었는데 추억이 사라지는 것 같아 아쉽긴 하나 폐역이 돼도 역사(驛舍)는 남아있으니 여전히 많이 찾아주면 좋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오는 16일 역이 이관하는 관계로 신역사 이주 준비로 분주한 황 부역장은 “지금껏 역무원실의 문을 잠근 적이 없어서 어느 열쇠가 맞는 열쇠인지 잘 찾아봐야 한다”며 열쇠 꾸러미의 열쇠를 골라가며 문 잠그는 연습(?)을 했다.

광장에서 바라본 구둔역

구둔역의 이관은 16일이지만 덕소-원주간 중앙선 복선전철 완전 개통은 9월25일이다. 주말 혹은 휴일에 구둔역을 찾아 추억을 더듬어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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