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일 이어준 북미원산 아카시 나무
숲 전문가, “한국민족의 얼 말살 위해 일제가 심었다”는 오해 해소돼야
추석이나 설 명절에 조상 묘 주변, 심지어 봉분에까지 아카시 나무가 자라고 있는 것을 보면 당장 뿌리째 뽑아내거나 씨를 말려버려도 시원찮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해마다 잘라내고 잘라낸 자리에 석유도 붓고, 가능한 것은 뿌리째 뽑아냈는데 이듬해 또 그 질긴 생명력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그 질긴 생명력에 소름이 돋기도 한다.
아카시나무의 강한 생명력은 독특한 생식 특성 때문이다. 일반 식물들은 가지와 몸체를 잘라버리면 그대로 죽거나 어렵사리 회생하지만 아카시 나무는 윗동을 잘라버리면 위로 자랄 ‘성장 모멘텀’이 뿌리로 집중돼 뿌리가 급속도로 번식한다.
숲 해설가 연호진 선생은 지난 1일 경기도 포천 광릉수목원에서 기자와 만나 “아카시는 콩과 식물이므로 황폐한 땅에서도 잘 자란다”고 전제, “전쟁으로 폐허가 된 남한 땅이 울창한 숲으로 거듭난 것은 싸리나무, 오리나무와 함께 아카시 나무를 많이 심은 덕택”이라며 “식량 등 다른 지원도 좋지만 북한에 아카시를 심으면 여러모로 좋다”고 말했다.
연 선생에 따르면, 아카시의 강력한 생존력과 깊고 강하게 흙을 파고드는 뿌리의 왕성한 번식력은 산사태를 막아주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남한에서 유통되는 꿀의 60~70%는 아카시나무에서 나오는 한편 재질이 단단해 각종 목재로서 경제적 가치도 높다. 60년을 자라면 몸무게를 이기지 못해 저절로 쓰러져 죽으니 신재생에너지의 일종인 ‘바이오매스’로도 쓸모가 없지 않고, 화목(火木)보일러용 땔감으로도 좋다.
일부 한국인들이 이런 ‘괜찮은’ 아카시 나무를 혐오하게 된 다른 이유가 하나 있다. 일본이 한국을 식민통치할 당시 한국의 민족혼을 말살하기 위해 대거 심었다는 오해가 그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전혀 근거 없는 말이다.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아카시나무는 강화도조약(1876년) 이후 개방된 조선에서 일했던 우선회사(郵船會社, 해운회사) 인천지점장 일본인 사까끼가 1891년(고종 28년) 중국 상하이에서 묘목을 구입, 지금의 인천 자유공원에 처음 심었다고 한다. 원산지는 북아메리카다.
일본이 한국의 민족혼을 말살할 목적으로 미국산 나무를 상하이에서 들여와 조선 땅에 심을 이유가 있었을까.
한국의 정부나 지식인 사회, 심지어 언론도 이런 오해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경향신문 기사(1994년 1월23일치)에 따르면, 이승만 정권은 아카시를 뽑으라는 특별훈령을 내리기까지 했다. 한겨레신문은 지난 1995년 3월15일치 신문에 “일제가 실은 아카시 나무 뽑아내자‘라는 ‘독자기고’를 실었다.
국경을 초월해 오해가 있다면 분명히 풀고 넘어가는 것이 민중들의 인지상정이다. 전쟁과 적대, 봉쇄된 국경이 절실히 필요한 지배자들은 안 그렇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