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내 안에 중국·한국 있다”

크메르 문명과 동아시아 유교문화가 어우러진 새로운 목적지

한국 사람들이 베트남을 방문하면 분명 ‘기시감(旣視感,d?j? vu)’이 들 것이라고 했다. 베트남 사람들도 대부분 몽골반점이 있다고, 그래서 거슬러 올라가면 선조들이 같을 수 있다고도 했다.

주한베트남사회주의공화국 대사관 양정직(楊正織) 1등 서기관

두 달 전부터 주한 베트남사회주의공화국 대사관에서 두 번째 한국 근무를 시작한 37세의 양정직(楊正織) 1등 서기관은 “베트남의 4000년 역사, 한국의 5000년 역사에서 공통점은 중국 옆에 있다는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라며 이 같이 말했다.

양 서기관은 24일 ‘한-ASEAN 센터’가 주최한 세미나에서 여러 베트남 얘기를 들려줬다. 세미나에 참석한 몇몇 베트남 전문가들은 양씨가 약간 어눌하지만 구수하고 유머러스한 한국말로 진행한 이날 세미나를 마치자 “지금껏 알고 있던 것만큼 베트남을 새로 배웠다”고 즐거워했다.

양 서기관은 발표 내내 한국과 베트남의 같은 눈높이 지점들을 짚어줬다. 그게 왜 중요한지는 말하지 않았다. 한국인들이 ‘인연’과 ‘연고’를 지나치게 중시하고, ‘다른 것’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이기 때문일까.

분단국가의 경험, 동병상련

S라인 모양 베트남 지도의 딱 중간쯤에 ‘비무장지대(DMZ)’라는 표기가 눈에 띈다. 과거 남북으로 갈렸을 당시 경계가 됐던 곳으로, 남북이 갈라진 한반도의 DMZ와 위치상으로 비슷하다. 그러나 베트남의 DMZ는 철책 대신 벤하이 강이 남북의 경계를 갈랐다.

1960년대 월남 사이공의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 중 하나인 ‘통일궁’은 당시 고딘 디엠 대통령이 관저로 사용했었다. 남북분단의 상징으로 한국인들이 보면 남다른 감회에 젖을 것이라는 게 양 서기관의 설명이다. ‘한국과 달리 베트남은 통일을 했다’는 자부심을 은연 중에 표현했지만, 나쁘지 않았다. 어쩌면 그는 그런 표현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기자의 열등감, 자격지심 때문에 그렇게 느껴졌을 가능성이 높다.

국토의 딱 중간쯤에 위치한 후에(Hue)시는 베트남 봉건왕조의 고도(古都)가 그대로 간직된 도시. 한국의 경주에 견줄 만하다. 한국의 한강과 비슷한 흐엉강(香江)에서 배를 탈 때면 사기꾼들을 조심해야 한다고 한다. 분명히 사기꾼들에게 배삯을 지불하고 승선했는데, 선장이 “배삯 내세요”라고 손을 내미는 기막힌 일이 간혹 있다는 것이다. 사기꾼들은 멀어져 가는 배를 향해 손을 흔들며 유유히 사라진단다. 베트남 인민위원회 관광국 직원 표찰을 단 사람을 반드시 확인하고 표를 끊으라고 당부했다. ‘그런 표찰 만드는 기술은 한국이 좀 더 앞서 있을 텐데’라는 익살맞은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중첩되는 중국과의 인연

1914년 조성돼 호치민에서 ‘가장 요란한 곳’으로 불리는 벤타잉 시장(市場)은 2012년 현재 화교들이 상권 50%를 장악하고 있다. 1979년 중국이 베트남 영토를 침략하기 전까지는 80%가 화상(華商)들이었다고 한다. 1000년 가까이 베트남을 지배해온 중국은 “중월전쟁 때 베트남 사람들이 호치민 일대의 화상들에게 보복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베트남 사람들은 “우리는 보복하지 않았다. 전쟁 소식을 듣고 도망갔다가 다시 호치민으로 돌아온 사람들이 꽤 많다는 점을 보면 알 수 있다”고 반박했다.

이 외교관은 요즘 베트남 젊은이들이 하노이 소재 ‘문묘국자감’ 비석에 쓰인 한자(漢字)를 읽지 못하는 점을 부끄럽게 생각한다고 했다. 중국과 국경을 맞대고 수천 년 간 교류와 갈등을 지속해온 역사를 공유하고 있다는 점을 되새겨볼 때, 중국과 한국의 유교적 전통과 문화는 엄연한 베트남 문명의 일부를 차지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요즘 젊은이들은 한자와 유교적 문화가 주는 보수적인 분위기에 중압감을 견디지 못한다는 설명이다.

베트남 젊은이 뿐 아니라 한국의 젊은이도 별다를 바 없다고 귀띔해주면 양 서기관이 다음 강연 때 써먹으려나.

베트남의 남다른 점

베트남도 남중국해 표기 때문에 중국과 여전히 ‘기 싸움’을 벌이고 있다. ‘동해(東海)’라고 표기하는 날까지 싸움은 계속될 전망이다. 이 얘기를 듣고 갑자기 양국의 이해관계를 떠난 제3의 기준으로 지구촌의 바다를 표기하는 캠페인을 벌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호치민 일대의 땅은 원래 캄보디아 영토였다. 17세기 베트남이 정복해 빼앗은 것이다. 베트남은 이처럼 근대국가의 국경이 형성되는 시기에 다른 나라의 땅을 빼앗은 경험이 있는 나라다. 허구한 날 빼앗긴 경험뿐인 한국과 다르니, 부러워해야 하나 욕을 해야 하나. 아무래도 미국과 베트남 전쟁 중에 베트남에 파병한 경험이 있는 한국이 욕할 처지는 아닌 것 같다.

양 서기관은 “100년 식민 지배기간동안 프랑스가 베트남을 위해 남긴 것은 오직 알파벳 하나 뿐”이라고 말했다. 최근 들어 한자(漢字)를 다시 교육과정에 포함시키려는 움직임이 있다고 한다. 아쉬웠다. 조금만 더 일찍 양국이 머리를 맞대고 서로를 염려했다면, 지구촌에서 가장 우수한 알파벳을 공유할 수 있었을 텐데.

하롱베이의 절경.

나도 호치민 여자가 좋다

북베트남에 있는 수도 하노이는 정치 도시다. 반면 과거 ‘사이공’으로 불리던 호치민시는 경제와 문화, 과학기술의 도시다. 호치민이 최대 도시, 수도 하노이가 두 번째 큰 도시다.

호치민으로 대표되는 크메르, 동남아문화권의 남베트남 사람들은 기질이 화끈하다. 의사결정도 즉흥적이고 통이 커서 돈 벌기도 돈 쓰기도 잘한다고 한다. 사업이 흥하면 ‘대박’ 망하면 완전히 ‘쪽박’을 찬다고 한다.

반면 중국 윈난성(雲南省)과 국경을 접한 북베트남의 하노이쪽 사람들은 신중해 의사결정도 늦고 검소한 게 한국 사람들과 비슷하다고 한다. 하노이 여자들은 돈 잘 쓰고 시원시원한 호치민 남자들을 좋아한단다. 하노이 남자들 역시 가냘프고 부드러운 여성미 때문에 호치민 여자들을 좋아한다고 한다.

이렇듯 호전적이고 활달한 호치민 사람들, 얌전하고 말수가 적으며 신중한 하노이 사람들이 만나면 대화가 잘 안 된다고 한다. 그렇다. 대화가 잘 안 돼도 서로 좋아하고 사랑할 수 있는 것이 인간의 순리다. 다른 것을 틀렸다고 강변하는 사람들이 외려 순리를 거스르는 사람들임을 새삼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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