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정일의 이·아·세] 철원 ‘노동당사’와 ‘도피안사’
답사는 어느 계절에 가느냐에 따라 또 다른 상념을 전해주는 묘미가 있는데, 철의 삼각지(철원, 평강, 김화)의 철원 답사가 더욱 그렇다. 해방 이후 철원군청이 있었던 관동리와 궁전리를 병합하여 관전이라고 이름 지은 이곳에 노동당사가 있다.
철원 노동당사는 강원도 철원군 철원읍 관전리에 있는 옛 조선노동당 철원지부 당사 건물이다. 1946년 철원 지역의 주민들이 건립한 지상 3층 건물인데, 한국전쟁 때 피해를 입어 외부 벽체와 계단실만 남고 내부는 폐허로 남아 있다. 건물 외벽과 내벽에는 한국전쟁 당시의 상혼을 증명하는 총탄과 포탄 자국이 벌집처럼 남아 있다. 민족 분단과 전쟁 비극을 증언하는 중요한 자료로서, 현재 안보 관광지로 활용되고 있다
노동당사에서 걸어서 한 시간 남짓 거리의 동송읍 관우리 화개산(花開山)자락에 도피안사가 있다. 속세를 넘어 이상 세계에 도달한다는 의미를 지닌 이 절은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승려인 도선이 창건한 사찰이다.
대한불교조계종 제3교구 본사인 신흥사(神興寺)의 말사인 이 절은 신라 경문왕 5년인 865년 도선(道詵)이 향도(香徒) 1,000명과 함께 이 절을 창건하고 삼층석탑과 철조비로자나불좌상을 봉안하였다.
금강산 <유점사본말사지>楡岾寺本末寺誌)』에 수록되어 있는 이 절의 사적기를 보자.
“도선국사가 철조비로자나불상을 조성하여 철원의 안양사(安養寺)에 봉안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불상을 운반하는 도중에 불상이 없어져서 찾았더니 도피안사 자리에 안좌하고 있었다. 이 부처가 머물 곳은 이곳이라 여긴 도선국사가 절을 창건하고 불상을 모셨다고 한다. 도선국사는 이 절을 800여 개의 비보국찰(裨補國刹) 중의 하나로 삼았고, 이 절을 감싸고 있는 화개산이 마치 연꽃이 물에 떠 있는 연약한 모습을 나타내고 있기 때문에 석탑과 철불로 산세의 약점을 보완하여 국가의 내실을 굳게 다지고 외세의 침략에 대비하였다고 한다. 나라의 비보사찰로 명맥을 이어오던 이 절은 1898년 봄 큰 화재로 전소된 뒤 주지 월운(月運)이 강대용(姜大容)의 도움을 받아 법당을 짓고 불상을 봉안하였다. 그러나 한국전쟁 당시에 불에 타서 폐허가 되었다. 그로부터 9년이 지난 1959년 제 15사단장인 이명재 장군이 꿈을 꾸었는데, 땅속에 묻혀 있는 불상이 나타나 가슴이 답답하다고 하였다. 이상한 꿈이라고 여긴 그가 다음 날 전방 시찰을 나갔는데, 갑자기 갈증을 느껴서 근처 민가에 들어갔더니 지난 밤 꿈속에서 땅속에 묻힌 불상과 함께 보였던 여자가 그 집 안주인이었다. 깜짝 놀란 이명재 장군이 그 여인과 도피안사를 찾아가 땅을 뒤지다가 땅 속에 묻혀 있던 철불을 찾아냈는데, 꿈에서 본 불상이었다. 도피안사 철불(858년 조성됨)은 장흥 보림사의 철불과 함께 신라 말기 9세기 후반을 대표하는 철불로 보림사 철불처럼 조성기가 철불 뒤편에 새겨져 있다. ‘1,500여명의 향도香徒가 결연傑然하여 조성했다’는 기록과 함께 ‘함통咸通 6年 기유 정월’이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어 경문왕 5년인 865년 이 불상이 조성되었음을 알 수가 있다. 그 뒤 이명재 장군과 15사단 장병들이 법당을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법당과 요사채, 창건 당시 조성된 1962년 국보로 지정된 철조비로자나불좌상과 1963년 보물로 지정된 철원 도피안사 삼층석탑이 있다.”
도피안사에서는 매년 10월 백마고지를 비롯한 철원전투에서 죽은 혼령들을 위한 수륙재를 열고 있다.
도피안사 뒷산인 도솔산 정상에 서면 월하리 일대와 백마고지, 김일성 고지, 3자매 고지, 그리고 한국 전쟁 당시 너무 많은 폭격을 받아 산이 아이스크림처럼 녹아내렸다는 아이스크림 고지가 한 눈에 보인다.
태봉국 수도였던 구 철원 일대가 겨울 속에 잠겨 있고, 가끔씩 두루미가 날아서 북쪽 하늘로 사라지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