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정일의 시선] 겨울은 세상의 소란 속에서도 깊어가고

찬바람 버텨내는 깊은 산 소나무 <사진 최재훈 경인일보 기자>

당신의 마음속 도둑은 무엇인가?

조선시대 최고의 명재상으로 알려진 황희와 함께 쌍명상雙名相으로 손꼽히는 허조는 수신제가를 이룬 사람으로도 유명하다.

그는 평생 동안에 걸쳐 한 번도 닭이 운 뒤에 일어난 적이 없다는 절도로 엄격하게 자기 생활을 통제하며 산 사람이다. 그가 밤중에 단정하게 책상 앞에 앉아 있을 때 집안에 도둑이 들어 물건을 훔쳐간 적이 있었다. 그때 허조는 졸지도 않으면서 마치 진흙으로 만들어 놓은 허수아비처럼 앉아 있었다. 도둑이 간 지 오래되어 집안 사람들이 도둑을 맞은 것을 눈치 채고 그를 쫓았지만 붙잡지 못하고 분통을 터트리며 눈 뜨고 있으면서 도둑맞은 것을 탓하자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이보다 더 심한 도둑이 마음속에서 싸우고 있는데, 어느 여가에 바깥 도둑을 걱정하겠는가?”

이 말은 <정암집靜菴集>에 실린 글인데, 이 고사는 수산이 삼매경을 나타내는 것으로 후세 사람들이 곧잘 인용하는 글이다.

어떻게 사는 것이 바른 것인가 그른 것인가, 분간할 수 없는 이 시대, 눈 뜨고도 도둑을 맞는 일이 비일비재한 이 시대에, 스스로가 스스로를 이겨내지 못하고 매 순간 흔들리면서 “세상의 풍파는 나이 들어도 그치지 않는다”는 백거이의 시 구절을 떠올리는 마음이여, 겨울은 세상의 소란 속에서도 깊어가고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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