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상익의 시선] 한승헌 변호사 “두고두고 후회될 거 같았어”

“세상이 바뀌니까 나를 가지고 남들은 정의니 용기니 그렇게 표현하는데 내가 행동했던 것들은 솔직히 그런 숭고한 차원은 아니었지. 늪에 빠져있는 사람을 보고 외면했다가 나중에 양심의 가책을 받고 후회하면 힘들 것 같았기 때문이야. 타인의 불행을 보면서 비껴서거나 도망치면 두고두고 후회가 될까 봐 어쩔 수 없이 정면으로 받아들인 거지. 사실은 무서웠지만 물러나지 못한 거야. 결국 인생이란 어느 마디에서나 또 다른 선택의 문제가 아닐까?”(본문에서) 사진은 방송 인터뷰하는 생전의 한승헌 변호사

변호사회관의 로비에는 “정의의 붓으로 인권을 쓴다”는 구호가 매달려 있다. 변호사의 소명을 알려주는 글귀다. 회관 앞에는 조영래 변호사의 동상이 있다. 그는 분신자살한 노동자 전태일에 대한 글을 써서 세상에 알린 사람이었다.

한동안 주간지인 <일요신문>에 ‘사건과 사람’이라는 제목으로 글을 연재했다. 변호사 선배인 한승헌씨의 뒤를 이어 그 코너를 맡았었다. 한승헌 변호사는 독재정권 시절 진실을 폭로하는 글을 썼다가 감옥에 가기도 하고 자격이 박탈되기도 했었다. 한번은 한승헌 변호사를 개인적으로 만나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그때 내가 이런 질문을 했다.

“감옥에 들어가는 날 심정이 어땠어요?”

폭로하는 글을 쓰다 보면 철창 속의 내 모습이 눈앞에 어른거리기도 했다. 마음의 대비를 해두어야 덜 비겁해 질 것 같았다.

“변호사 자격으로 업무상 가던 구치소와는 차원이 달라. 죄수복으로 갈아입고 플라스틱 식반과 젓가락을 가슴에 안고 교도관을 따라 감옥의 복도를 걸어갔지. 구석의 한 감방으로 들어가 뒤에서 ‘철커덩’하고 문을 닫는 금속성 소리가 들리는데 천둥이 치는 느낌이더라구. 혼자 한 평 짜리 좁은 감방에 앉아 두리번거렸지. 낙서가 적힌 축축한 벽이 보이고 구석에는 엽서 만한 전도지들이 놓여 있더라구. 진실한 글을 썼는데 감옥에 갇힌 신세가 되니까 억울해서 속이 아픈 건 말도 못해. 어떻게 내가 닥친 상황을 이겨 나갈까 속으로 안간힘을 썼지.”

그의 말을 듣는 나도 감옥에 갇힌 꿈을 꾼 적이 있다. 어둠 침침한 감옥의 철창 안 콘크리트 바닥에 앉아 있는데 아무도 도와주는 사람이 없다. 나는 고립무원의 상태에서 절규를 하다가 깨기도 했다. 나는 선배인 한승헌 변호사의 다음 말을 조용히 기다리고 있었다.

“그래도 인간이 적응하지 못할 환경은 없나 봐.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참을 만해지더라구. 그러던 어느 날이었어. 밤늦게 감방문 아래 식구통이 열리면서 우유에 찐빵을 섞은 식기가 들어오는 거야. 놀랐지. 그 다음날 밥을 날라다 주는 소지에게 물어보니까 감옥 맨 끝 방에 있는 사형수가 내게 선물로 보냈다는 거야. 내가 사형제도 의 폐지를 주장한 글을 쓴 적이 있는데 그것에 대한 감사의 표시라는 거야. 교도소 규칙까지 위반하면서 내게 찐빵과 우유를 보내준 거야. 놀랍기도 하고 가슴이 뭉클했어.”

억울한 피해를 당하거나 감옥에 있으면 사람들은 더욱 정의에 민감해 지는 것 같았다. 그가 덧붙였다.

“세상이 바뀌니까 나를 가지고 남들은 정의니 용기니 그렇게 표현하는데 내가 행동했던 것들은 솔직히 그런 숭고한 차원은 아니었지. 늪에 빠져있는 사람을 보고 외면했다가 나중에 양심의 가책을 받고 후회하면 힘들 것 같았기 때문이야. 타인의 불행을 보면서 비껴서거나 도망치면 두고두고 후회가 될까 봐 어쩔 수 없이 정면으로 받아들인 거지. 사실은 무서웠지만 물러나지 못한 거야. 결국 인생이란 어느 마디에서나 또 다른 선택의 문제가 아닐까?”

나는 그의 말에 전적으로 공감했다. 나도 변호사를 하면서 성경 속 사마리아인 같이 우연히 길가에 피를 흘리고 쓰러져 있는 사람들을 보았다. 지독한 고문을 당하거나 죽음을 당한 경우였다. 그런 사실을 말하면 내게 피해가 올 수도 있었다. 외면하고 도망치고 싶었다. 무섭기도 했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못했다. 내 속에 있는 어떤 존재가 내 입을 사용해서 세상에 대고 외치고 글을 쓰게 했다. 나의 행동이 위선이라면서 침을 뱉고 야유하는 사람도 많았다. 내 스스로도 위선인가? 하고 점검해 보기도 했다. 위선이라면 감당해야 할 수모가 너무 컸다. 조사과정에서 형사들은 마치 먹잇감을 본 하이에나떼처럼 나를 괴롭히기도 했다. 사회적으로 튀는 듯한 글을 쓰는 걸 보니 정치를 하려고 하느냐고 비아냥 댔다. 글에 부자의 패륜을 지적하는 걸 보니까 좌파가 아니냐고 묻기도 했다. 검사는 대질 신문을 한다면서 상대방을 불러 나를 마음껏 물어 뜯게 하기도 했다. 법정에서도 판사들은 의심이 가득한 냉랭한 눈길로 나를 내려다 보았다. 친구들 중에는 원래 미련한 내가 잘나고 싶어 그런 행동을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나는 내 속 있는 어떤 존재의 아바타인 것 같았다. 비겁해 지고 싶은데도 겉은 다른 행동을 하고 있었다. 내 속의 그런 존재를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 양심이라고 해야 할지 내 안에 또 다른 내가 있다고 해야 할지 성령이라고 해야 할지 지금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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