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김영관 시인 <느림보 달리다>…”넘어져도 다시, 느릿느릿 땀 맺힐 만큼”

느림보 달리다 표지

<아시아엔>에 ‘오늘의 시’를 쓰고 있는 김영관 시인이 11월 11일 두번째 시집 <느림보 달리다>를 냈습니다. 김 시인은 시집 이렇게 말합니다. “떨리네요. 마음 내려놔야지 하면서도 읽어주신 분들에게 어떤 얘기들이 나올까 궁금도 하고요.” 이 시집을 낸 다우출판사의 <느림보 달리다> 소개 글을 전재합니다. <편집자> 

부끄러움도 시가 됩니다…일상의 언어를 볶고 끓여 차려 낸 맛깔난 시 한 상

때론 화산을 품은 사내의 거친 외침처럼, 때론 봄볕이 간지러운 아기의 옹알이처럼 직설적이고 순수한 언어로 독자들의 묵직한 감동을 불러일으켰던 김영관의 두 번째 시집. 불의의 사고를 당해 요리사의 꿈을 접고, 지금은 삶의 낱말을 다듬고 볶는 언어의 요리사가 되어 차려 낸 맛깔난 시 한 상. 자신을 ‘굼벵이’라고 일컫는 시인은 건강했던 과거의 기억, 장애의 불편과 현실의 한계 속에 희망을 찾는 일상의 속내를 이번 시집에도 솔직하게 드러내고 있다.

“가슴이 먹먹하다” “슬프지만 힘이 난다”는 시평은 누구나 아프고 힘든 순간이 있고, 이를 이겨내는 것에서 삶이 더욱 빛난다는 데 공감하기 때문일 것이다. 좌절과 절망 속에 우연한 인연처럼 다가온 시는 그에게 기도이자 치유의 도구다. ‘넘어져도 다시, 느릿느릿 이마에 땀이 맺힐 만큼’ 여전히 시를 쓰며 자신을 이겨내는 중인 그의 시에서 용기를 배우고, 슬픔을 제련하는 시 쓰기에 도전하고픈 욕구를 느끼게 한다.

혼잣말이어서 더 절절하다…삶이 끝났다고 느꼈을 때, 시가 등불이 되었다

마치 혼잣말을 내뱉듯 생생한 입말로 쓴 김영관의 시는 일상의 눈물과 웃음을 생생한 언어로 진솔하게 담아낸다. 비록 절망의 심연에 빠졌더라도 ‘느린 듯 멈춤 없이 가는 그의 하루(최명숙 시인)’가 오롯이 들어있고, 좌절을 이겨내는 시인의 안간힘과 천진함에 ‘와락 눈물이 나고, 슬며시 웃음이 나는(신영란 작가)’ 땀 냄새 나는 시가 더 절절한 울림을 준다.

시인은 세상을 향해 마음을 열고, 생각을 익히고, 솔직하게 자신을 드러내는 것을 시라고 여긴다. ‘철없는 한탄과 분노, 부끄러움도 시가 되는’ 깨달음이 세련된 멋진 시보다는 공들인 시를 쓰는 시를 쓰겠다는 다짐이 되었다. 시 한편을 쓰기 위해 온 힘을 다해 낱말을 찾고 생각을 익히고 말의 아름다움을 즐기는 치유의 시간을 다른 이와 나누고 싶어 한다.

시는 그에게 세상 밖으로 문을 여는 시간이자 ‘인생의 가치는 무너지지 않는 것이 아니라 무너졌을 때 다시 일어나는 것’에 있다는 자각의 계기가 된 것처럼, 한 사람이라도 그의 시를 읽고 고개를 끄덕이거나 절망에 빠진 누군가가 ‘나도 글을 써봐야겠다’라고 마음먹는다면 대성공이라는 게 시인의 바람이다. 불교 문화예술 모임 ‘보리수아래’에서 시를 쓰고 함께 토론하고 응원하며 자신이 성장한 것처럼 말이다.

<느림보 달리다> 차례

시인의 말
추천사 최명숙
추천사 신영란

1부 나는 겁쟁이랍니다
굼벵이|그날에|기억이란 거 무섭다|꿈은|끝없는 망상|나는 겁쟁이랍니다|나는 나|나에게 몽골은요|나 처음|난 왜|내가|내 책상|녹색 세상|울어라 목 놓아 짖어라|인간관계

2부 사람 냄새
눈물이 나|눈부신|느림보 달린다|늘|닭대가리|따스함|때때로|만해마을|무너지지|민폐|비가 오는 오늘|사람 냄새|사십 살|살려주세요

3부 새로 시작
새것|걸어보네|그 기자의 발자국|나는 없다|내 그릇|내 주둥이 무섭다|늘 밤입니다|떡국|새로 시작|새해 아침|설|식목일|쓰다|아름다움|아버지 아버지 나의 아버지|어김없는 하루|어디까지|어릴적 살던|어쩌라구

4부 -인간 영관 사용법-
언어장애를 가진 어느 장애인의 발버둥|귀와 입은|없다|여긴 어디|옛 그길|-인간 영관 사용법-|인정 안 함|일인삼색|잔소리|저에게 보리수아래는요|적어보네요 남겨보네요|처음….|철부지|그냥 평범하게|놓아지지 않는|해와 달은|홀로서기


책 속에서

19p
굼벵이 뛰어봐라 답답해 속터진다
이리로 뛰어봐라 저리로 뛰어봐라
굼벵이 말 좀 해라 뭐라고 하는 건데

27p, 28p
나는 겁쟁이였고
겁쟁이고
겁쟁이일겁니다
(….)
항상 겁에 질려 살면서도
고치지 못하는
멍청이 겁쟁이랍니다

34p
나 처음 겪어보는 내 마음 내 팔다리
내 것은 확실한데 내 말을 듣지 않네
분명히 내 것인데 정말로 내 것인데
말을 생각 않고 듣는 척하고 있네

39p
더 높이 높이
저 높은 곳을 향하여
힘내본다.
힘들지 않은 것처럼
힘들어 본 것 없는 거처럼

49p
느릿느릿
나는 느릿느릿 달리고 있다
최선을 다해
이마에 땀 맺힐 만큼
겉옷이 땀에 다 젖을 만큼

57p
답답함에 땅에 적어 나가는 글자에 몇 개가
세상 밖 밝은 곳으로 올려주네
무너지지 않는
무너질 수 없는
단단한 탑이 되어

78p
시간은 멈추어도
똑같이 걸어가고
걸어가고
걸어가도
저에게는 늘 밤입니다

82p
세뱃돈 받는 즐거움은 어제
세뱃돈 얼마 줘야 하나 고민하는 오늘

84p, 85p
나무를 심습니다
(….)
누구나 편안히 쉬었다
갈 수 있는 나무로 가꾸려 합니다
많이 지쳐 보이는
너 좀 쉬다 가라고

89p
많은 일 웃고 울고 더없이 모진 세월
그 세월 무거운 짐 짊어진 내 아버지
이놈두 어깨 한켠 짐 되어 업혀있네
한없이 존경합니다 아버지 내 아버지

97p
쟤 또 제정신 아니다
가엽게 보거나 미친 인간 보듯 한다
내가 하는 말은 하나도 알아듣지 못했으면서
다 이해한다고 니 말도 일리가 있다고
우리는 이해한다고
그래놓고 자기들끼리 수근덕거린다
쟤 또 저렇다고…

104p, 105p
머리 다친 이후로…
다 알아도 되는 거 아니면 저에게 말해 주지 마세요…
저에게 비밀이란 없습니다…
지키려고 노력한다고 지켜지는 게 아니더라구요..
(….)
순간 감정변화가 심해
제가 하는 말이나 행동은
진심은 아니니
너무 상처받지 마시구요

119p
그냥 평범하게
걷고 싶습니다
그냥 평범하게
말하고 싶습니다
그냥 평범하게
웃고 떠들고 싶습니다
(….)
평범하게가
저에게는
가장 어렵고
가장 힘든 일이 되었습니다

124p, 125p
다치면서 못 했던 것들,
다치기 전에도 아직은 아닌 것 같아 못 했던 것들,
해보고 싶은 것들은 점점 많아지네요…
(….)
홀로서기
이제 조금씩은 이루어 나가야 할
제 인생의 마지막 과제 같네요

지은이 김영관 시인은?

시로 희망을 쓰는 마흔 살 청년입니다.
한때 요리사로서 맛있는 인생을 꿈꿨지만 불의의 사고를 당한 후, 지금은 언어를 다듬고 볶고 끓이며 세상과 소통하고 있습니다. 일상의 소박한 입말을 시어로 삼는 그의 시는 때론 맵고, 뜨겁게 끓기도 하지만 마침내 잘 숙성된 말맛이 일품이라는 평을 듣습니다.

햇볕 잘 드는 군포시 책상 앞에서 혼잣말처럼 쓴 이 시들이 누군가에게 치유와 위로 가 되길 희망하며, 멋진 시보다 공들인 시를 쓰는 평생 시인으로 남고 싶어 합니다. ‘보리수아래’라는 시 쓰기 모임을 통해 창작과 낭송 등의 활동을 이어나가며 『아시아엔』 등에 꾸준히 시를 발표하고 있습니다. 『시, 그대 노래로 태어나다』 『꽃과 별과 시』 등 음반의 작사가로 참여하였으며, ‘대한불교조계종 신행수기 공모전’에서 중앙신도회장상을 수상했습니다. 첫 시집 『시에는 답이 없어 좋다(2020년, 도서출판 도반)』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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