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시] ’11월’ 오세영(1942~ )
지금은 태양이 낮게 뜨는 계절,
돌아보면
다들 떠나갔구나.
제 있을 꽃자리,
제 있을 잎자리,
빈들을 지키는 건 갈대뿐이다.
霜降.
서릿발 차가운 칼날 앞에서
꽃은 꽃끼리, 잎은 잎끼리
맨땅에
스스로 목숨을 던지지만
갈대는 호올로 빈 하늘을 우러러
시대를 통곡한다.
시들어 썩기보다
말라 부서지기를 택하는 그의
忍冬,
갈대는
목숨들이 가장 낮은 땅을 찾아
몸을 눕힐 때
오히려 하늘을 향해 선다.
해를 받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