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모] 박동선 한국차인연합회 이사장

박동선 회장(앞줄 왼쪽에서 두번째) 사무실에서 이기현 사장 등과 함께.

어제(9월 20일) 새벽 5시경에 카톡으로 박동선이 9월 19일 오후 6시30분경에 향년 89세의 나이로 별세했다는 부고를 받았다. 빈소는 서울 순천향대학교병원 장례식장 특5호실, 임종예배 9월 20일 오전 10시, 입관예배 9월 20일 오후 2시, 발인예배 9월 21일 오후 2시로 알려왔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박동선 회장과 필자 부부

필자는 한국파인트리클럽 산하 대구파인트리클럽 제13대 회장을 역임한 미국 뉴올린스 거주 이기현 Crown Products 사장 소개로 10여년 전에 박동선 회장을 처음 만났다. 그 후 이기현 사장이 주최한 만찬 모임에서 몇 차례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박동선 회장이 주최한 만찬 모임과 박 회장 회사에서 열린 간담회에도 참석한 바 있다. 

박동선 회장은 그림과 도자기를 좋아하며, 사무실에는 다실(茶室)이 있어 손님들에게 차를 대접한다. 그는 1977년 도범(道梵) 스님 권유로 다도(茶道)에 입문하게 되었으며, 한국차인(茶人)연합회 이사장을 역임했다. 그는 전통 차문화를 연구하고, 차를 마시면서 깊은 이야기를 할 기회가 생긴다고 말했다.

박동선 회장은 1935년 평안남도 순천에서 태어났으며, 서울에서 사업을 한 부친(박미수)의 권유로 17세 때인 1952년 도미하여 시애틀 소재 에디슨고등학교에 다녔다. 워싱턴에 있는 조지타운대학(1789년 설립)에서 총학생회장으로 활동했다. 졸업 후 31세 때인 1966년 ‘조지타운클럽’을 설립했다. 클럽을 개장하자마자 린든 존슨 대통령의 딸이 피로연(披露宴)을 열어 유명해졌다.

박동선씨는 사교클럽인 ‘조지타운클럽’을 통하여 30대 때부터 미국의 정계 주요 인사들과 친분을 쌓았다. 두터운 인맥을 바탕으로 그는 워싱턴과 서울을 오가며 미국의 대한(對韓) 쌀 수출과 한국의 미 의회 로비를 중계했다. 국가 중대사에 공식 채널 못지않게 민간외교가 필요할 때가 많다. 그는 자신은 로비스트가 아니며, 인맥을 통한 민간외교를 한다고 말했다. 박동선 회장은 별세하기 전까지 미국, 일본 등 각국의 주요 인사들과 교류했다.

1978년 4월3일 미 하원 윤리위의 공개증언에 앞서 선서하는 박동선씨 <사진 연합뉴스>

속칭 ‘코리아게이트(Koreagate)’는 1976년 10월 24일 미국 <워싱턴포스트>가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로 박동선씨와 중앙정보부 등이 미국 국회의원과 공직자들에게 뇌물을 뿌렸다”고 보도하면서 불거졌다. 미국 내 친한(親韓) 분위기 조성을 위한 목적의 이 뇌물은 1970년대에 들어서 매년 50만-100만 달러씩 전달된 것으로 전해졌다. 박동선씨는 1978년 미 사법당국의 수사를 거쳐 미 의회 공개 청문회에 출석해 증언했으며, 돈을 받은 현직 의원 1명이 유죄판결을 받고 7명이 의회 차원에서 징계를 받는 것으로 사건이 마무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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