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덕권 칼럼] ‘고집불통’ ‘내로남불’ 총선 후에도 ‘소통’ 못하면 대한민국 ‘No 희망’
고집불통(固執不通)인 사람이 많다. 고정관념의 틀을 깨지 못해 생기는 폐단일 것이다. 우리가 안고 살아가는 괴로움의 대부분은 고정된 관념 때문에 생기는 경우가 많다.
내 생각대로 되지 않을 때 우린 괴로움을 느끼게 된다. 그러기 때문에 고정관념의 틀을 깨지 않으면 세상이 달라지지 않는다. 내 생각은 그렇지 않은데, 상대방이 ‘꼭 이렇게 해라’ 하고 이야기할 때, 고집 세고, 고정관념이 큰 사람일수록 내 생각에 대한 미련 때문에 상대 의견을 받아들이기 어렵다. 내가 옳다면 상대방도 옳을 수 있음을 가슴 깊이 명심해야 한다.
‘아니야 그래도 이것만은 내가 옳아!’라고 고집할 때, 이미 그것은 옳지 않은 것임을 알아야 한다. 세상 어디에도 100% 옳은 것은 없는 법이다. 얼마 전 치른 총선 때 우리는 고집불통의 현장을 똑바로 보았다. 어쩌면 그렇게 양 진영이 똑같을까? 상황에 따라, 인연에 따라 옳은 것이 있을 뿐이다. 어차피 바꾸지 못할 바에는 빨리 내 고집을 포기해 버려야 한다. 내가 옳으면 상대방도 옳을 수 있다. 그것이 바로 중도(中道)다. 중도란 우유부단하게 무조건 상대에게 이끌리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중도란 분한 마음 때문에, 자존심 때문에, 마음 속 분별심 때문에 정견(正見)의 잣대가 흔들려선 안 된다는 얘기다. 텅 빈 마음으로 상대 의견을 내 의견처럼 몽땅 받아들여 볼 수 있는 열린 마음을 가져야 한다.
고정된 법은 없다. 이것도 법이요, 저것도 법일 수 있다. 마음을 열고 보면, 세상엔 참 옳은 의견이 많다. 이건 이래서 옳고, 저건 저래서 옳을 수 있는 마음이 되어야 한다. 이건 이래서 안 되고, 저건 저래서 안 되는 어두운 마음은 결코 도심(道心)이 아니다.
내 생각이 옳다는 고집을 버리고, 활짝 열린 중도의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본다면 세상은 이미 내 앞에 활짝 열려 있음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걸 우리는 소통(疏通)이라고 한다.
소통이란 ‘막히지 않고 잘 통함’, ‘뜻이 통하여 서로 오해가 없음’이라고 사전에 쓰여 있다. 소통의 반대는 불통이다. 불통의 사전적 의미는 ‘회선이나 연락선이 끊겨서 통하지 않음’ ‘타인의 생각이나 견해 따위를 이해하거나 받아들이지 못함’이다.
허준의 <동의보감>에 ‘통즉불통(通卽不痛) 불통즉통(不通卽痛)’이란 말이 있다. ‘통(通)하면 아프지 않고, 통하지 않으면 아프다’는 뜻이다. 이렇게 서로 주장하는 내용과 정보가 다르면, 소통이 아닌 불통이 되고, 내 관점만을 고수하든지, 연결이 되지 않으면 먹통이 된다.
누구나 말이 통하는 사람과 함께 살고 싶어한다. 이런 갈망이 있다는 말은 역설적으로 말이 통하는 사람도 드물다는 말일 것이다. 사람들은 보통 다른 것을 틀렸다고 말하고 싶어한다. 그렇지만 ‘다르다’는 것과 ‘틀리다’는 것은 정말 다르다.
인간(人間)이란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사는 존재다. 사이가 좋으면 좋은 사람이고, 사이가 나쁘면 나쁜 사람이 된다. 혈액순환이 안 되면 아프고 혈액순환이 잘 되면 건강한 것이다. 정신적으로 건강한 사람은 소통을 잘하는 사람이라고 판단해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고정관념의 틀을 깨지 않으면 정신과 육신이 다 병든 사람이라 할 수 있다. 고정관념의 틀을 깨는 방법을 알아보자.
첫째,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본다.
문제를 해결할 때 기존의 방식과는 다른 방식을 시도해 보거나 문제를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이다.
둘째, 창의적인 사고력 기른다.
창의적인 사고력을 기르기 위해서는 다양한 문제를 해결해 보거나, 새로운 아이디어를 생각해 보는 등의 노력이 필요하다.
셋째, 타인의 의견을 존중한다.
타인의 의견을 듣고 자신의 생각을 수정하거나 발전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넷째,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실패를 통해 새로운 경험을 쌓고, 자기 생각을 발전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