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난이 배추의 전설’ 김영환 지사, 이번엔 ‘괴산 43톤 괴물’ 가마솥 어떻게?

괴산군 무쇠솥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김영환 충북지사, 괴산의 43.5톤 가마솥에 이런 사과문을 붙이겠다고 한다. 전설의 못난이 배추에 이어 도시농부 동원한 고추, 깻잎으로 확장시키고 있는 도지사다운 추진력이다. 

충북 괴산에는 43.5톤의 초대형 가마솥이 있다. 가마솥은 괴산군이 군민 화합을 위한다는 취지로 성금 등 5억6000여 만원을 들여 지었다. 2005년 7월 완공해 1년여 사용하다 취사용으로 쓸 수 없어, 방치한 국내 최대 무쇠솥이다. 둘레 17.85m, 상단 지름이 5.68m, 높이는 어른 키보다 커 2m를 넘는다.

솥뚜껑의 무게만 5톤을 넘는 세계 최대다. 법주사의 초대형 가마솥보다 용적이 8배에 이른다. 80kg 들이 쌀 50가마를 한번에 밥으로 지을 수 있다. 4만명이 먹을 수 있는 양이라며 기네스북 운운했다.

하지만 가마솥은 덩치만 컸지 활용도가 떨어졌다. 기네스북에 이미 오른 호주의 질그릇보다 더 작았다. “군민 4만이 한솥밥을 먹겠다.” 이 호언장담도 역시 실패했다. 솥바닥이 두꺼워 애초 밥 짓기가 불가능했던 것이다. 옥수수·감자 삶기, 창포물 끓이기 등 이벤트도 했다. 온갖 아이디어들이 다 시들해졌다.

2007년부터 사실상 이 초대형 가마솥은 방치 상태다. 올 2월 김영환 충북지사가 SNS에 글을 올렸다. “거대한 낭비와 허위의식의 초라한 몰락!” 시인답게 날카로운 어휘 구사를 했다. “실패학 교과서에 빼놓지 못 할 메뉴”라고도 꼬집었다. 그러면서, 새 활용법을 찾아야 한다고 역설한 거다.

이 가마솥은 군민 성금이 투입돼 함부로 처분할 수 없다. 너무 무거운 몸집으로 이전 비용이 커 옮기기도 힘들다. 17일 향산 한영용 아우와 나는 김영환 지사의 전화를 받고 괴산군으로 방향을 잡았다. 일요일인데도 아침부터 두어 군데 돌고, 괴산군청 부군수실에서 오후 3시 만났다.

17일 충북 괴산군청 부군수실에서 김영환 지사

김 지사는 오전에 보은군 등을 돌며, 방치된 폐석재공장의 활용 방안을 제시한 뒤였다. 지역의 규제를 완화, 핫플레이스로 뜬 ‘공장형 대형 카페’를 아이디어로 제시했다. 김 지사는 ‘못난이 김치’로 인기몰이를 했다.

그는 괴산군 청천면에서 초등과 중학까지 나왔다. 청주에서 중국집 주방장으로 일하던 부친이 살기가 팍팍해지자 시골 청천으로 옮겼다. 지사가 되기 전, 괴산 청천면 강변에 농막을 짓고 주말에 귀촌을 해 배추농사를 했다. 그때 ‘못난이 배추’ 상품화의 아이디어를 냈다.

수확기 인력 부족으로 차떼기로 가져가는 상등품 배추 외에는 밭에 버려지기 일쑤였다. 그때도 실험적으로 도시농부 아이디어를 냈다. 지금 충북도는 농민이 3만6000원 내면 도가 2만4000원을 매칭 지원한다. 도시 은퇴자가 괴산으로 와 4시간 일하면 6만원씩을 지급한다는 프로젝트다. 45만명의 도시농부 리스트를 확보해놓았다. 10%만 와도 4만5000명이다. 여기에 6만원 일당 은퇴자 5000명을 합치면 5만명으로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단다.

일손이 부족한 이웃 경북 지역에선 동남아 일꾼 일당이 15만~17만원까지 치솟았다. 도시농부 덕에 충북은 12만원에 묶여 있다.

김 지사가 휴일인데 괴산군청에 온 이유다. 농협 직판장에서 ‘못난이 김치’는 인기 상한가다. 괴산에서 못난이 김치를 시작한 만큼 확장해 못난이 부추 깻잎 고추도 시도해본 거다. 그가 음식 전문가 향산 한영용을 부른 이유였다.

괴산 부군수와 지역 상공회의소장, 도청 담당자까지 불러 관련 대책을 숙의했다. 오송 참사로 한때 궁지에 몰린 김영환 지사가 만회를 위해 ‘열일 하는 모습’이 보기에 좋다.

충북은 바다가 없다. 그래서 김 지사가 내놓은 게 ‘레이크스 충북’ 르네상스였다. 도내 수많은 청정호수를 관광상품으로 만들려는 아이디어다. 거기에 바다목장도 있는데, 호수목장은 없나? 내수면 어업의 활성화로 중앙정부 예산을 받아올 구상도 한다. 키울 핵심 어종으로 고가의 캐비아를 생산할 철갑상어나 빠가사리, 메기 등 매운탕 어종까지…

온갖 규제로 방치하다시피한 청남대도 김 지사가 살아 숨쉴 관광자원으로 거듭나게 했다. 윤석열 대통령에게 ‘도끼 상소’라도 하듯, “대통령님께!”로 청남대를 되살렸다. 청남대에서 먹고 자고를 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충주호 밤과 아침 절경을 관광객이 볼 수 있다. 아직은 극소수만 예약제로 이용하고 있다.

주차 인프라와 객실 수도 획기적으로 늘린다. 무엇보다 김 지사의 아이디어가 놀랍다. 청남대가 위치한 광활한 비경의 충주호에는 큰 섬과 작은 섬이 있다. 큰 섬 면적이 놀랍게도 22만㎡다. 8만평 가까운 이 섬의 절경을 놀리고 있다.

김영환 지사가 측량과 직원에게 드론 촬영을 시켰다. 이번 주 초에 직접 배를 타고 섬을 둘러볼 거라고 한다. 캠프 데이비드보다 더 나은 접빈관을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미국 대통령과 일본 수상을 초청할 때, 제주도나 부산 대신 이곳에서 쉴 수 있게 말이다. 세계수준의 갤러리도 만든다는 안도 있다. 그의 아이디어는 무궁무진하다. 청남대 활용을 극대화할 구상까지 내비친다. 충북은 문화와 교육 불모지대다. 그래서 공약을 내걸었건만, 절반을 장악한 도의회 반대에 부딪히곤 한다. 충북에는 도립미술관이나 도서관, 공연장도, 변변한 야구장이나 축구장조차 없는 문화예술 및 스포츠 사각지대다.

체조경기장부터 지어 국제행사에 대비할 구상이다. 김 지사는 도 문화재로 지정된 도청 본관도 고품격 갤러리로 재단장할 계획이다. 지금 도청 인근에 새 청사를 짓고 있다. 도청 담부터 허물었다. 파격 조치를 한 것이다. 토요일 일요일에는 주차장도 무료 개방한다. 도청 앞 한켠에 잔디광장도 곧 완성된다.

을지훈련 때만 사용하는 방대한 지하 벙커엔 전 세계 유례없는 벙커미술관을 세운다. 일제 때 만든 옛 지사 관사는 풍광이 멋지다. 관사는 보존하고 뒤에 아담한 석조건물을 세워 이미 멋진 미술관으로 변신했다. 충북도 청사는 1937년 일제 때 준공됐다. 인근 산업장려관은 1년 앞서 바우하우스 풍으로 세웠다. UN산업개발기구가 11년 간 사용하기도 했다. 그후 공공기관들이 잠시 입주해있다 빠져나갔다. 방치되다시피 한 곳이 86년 만에 환골탈태 했다.

그 중 내 눈길을 사로잡은 게 있다. 갤러리 등 전시공간인 2층 실내의 중간 벽의 부서진 잔흔들을 ‘수몰지구’라는 컨셉트의 설치 미술로 수준 높게 변모시킨 거다. 눈이 황홀할 정도로 기막힌 걸작이다. 이범찬 시설팀장은 조성하 특보를 수시로 찾아가 이런 격조 있는 공간을 만드는데 일조했다. 김영환 지사의 진두지휘로 도청 일대는 앞으로 품격 있는 문화예술타운으로 상전벽해할 것이다.

김 지사가 어떻게 살고 있을지 궁금했다. 상상력이 뛰어난 시인답게 끊임없이 아랫사람들 발품을 팔게 한다. 괴산의 가마솥 관광자원 활용방안도 전국에 이미 현상 공모를 했다. 그가 느닷없이 “괴산에만 이런 가마솥이 340개나…”라 했다. 향산은 “호남에는 700개가 훨씬 넘는다”고 맞장구를 쳤다. 가마솥 앞에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습니다”라고 큰 글씨로 사과문을 지사 명의로 붙이겠다고 했다.

그것도 아이디어다. 노영민 전 대통령비서실장 등이 김영환의 중도하차를 노린단다. ‘주민소환 운운’ 말이다. 충북 경제단체들은 주민소환 움직임으로 지역의 경제적 손실이 우려된다고 반대했다. 23개 경제단체로 구성된 충북경제단체협의회는 ‘주민소환 관련 경제계 성명’도 냈다.

“오송 참사와 관련해 진행되는 김영환 지사의 주민소환으로 지역의 사회·경제적 손실이 발생한다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도민 모두에게 돌아올 것이다.” 이어 “불안 심리를 키우는 위험을 매듭짓고 경제살리기와 민생안정에 집중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충북은 전국에서 투자 유치(36조)가 가장 많다. 대기업들이 몰려있는 서울(17.3조)보다 더 많다. 경제성장률도 6.4%로 전국 수위 권이다. 출산율도 전국에서 3위를 기록 중이다. 2차전지 국가특화단지, K-바이오 스퀘어 정책 등 첨단산업 중심지로 거듭난 덕분이다. 지역 경제인들은 ‘충북 발전의 골든타임’을 놓쳐선 안 된다고 주창한다. 충북의 미래를 정할 ‘중부내륙특별법 연내 제정’도 눈앞에 두고 있다. 그러나 불순한 의도로 김영환 지사를 흔드는 세력이 있는 모양이다.

도청 내 일부 공무원까지 보이지 않는 손의 지휘로 가세하고 있다. 갈등과 분열은 충북의 발전에는 백해무익이다. 지역의 도약을 위해 민·관·정이 힘을 모을 때다. 김 지사 역시 누차 언급하지만, ‘1인의 100보와 함께 100인의 1보’ 리더십에도 신경 쓰시길…

과기부 장관 시절 국무회의장에서. 왼쪽부터 김대중 대통령, 진념 노동부 장관, 김영환 지사


#김영환 약전

1955년, 충북 청주 중국집 주방장 5남매 중 장남으로 났다. 5살까지 청주에 살다가 괴산군 청천면으로 이주하였다. 이후 청천에서 초등, 중등을 거쳐 청주고를 졸업하고 연세대 치대에 73학번으로 입학했다. 노동운동에 뛰어드는 바람에 2번 제적당했다.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복역한 운동권 출신이다. 수배 중 전기기술 등 각종 자격증들도 취득했다. 전기기술자로 일하면서 시인으로도 활동했다. 자작 시집이 한때 베스트셀러에 오르기도 했다. 1988년에 치과대를 졸업하고 개업했다.

정치 역정은 파란만장이다. 1996년 제15대 총선에서 국민회의 후보로 경기 안산 갑구에 당선됐다. 김대중의 총애를 받아 일약 정세분석실장에 발탁된다. 당시 필자는 정치부 기자로 그와 첫 대면했다. 2000년 제16대 때 새천년민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서 재선한다. 이후 새천년민주당 대변인을 역임했다. 2001~2002년 과학기술부 장관도 했다. 여기까지가 전성기였다.

2003년 열린우리당 분당 때 새천년민주당에 잔류한다. 2004년 새천년민주당 최고위원과 대변인을 지냈다. 노무현 대통령 탄핵을 주도한 정치인 중 한명이다. 2004년 17대 총선 때 새천년 후보로 출마했으나 탄핵 역풍으로 낙선했다. 같은 해 11월 치과를 개업하여 본업이던 치과의사로 돌아간다. 그러고도 당을 바꿔, 두번 더 배지를 달았지만 우여곡절이 많았다.

윤석열 대통령의 후보 시절 캠프에 직책 없이 잠시 출근했다. 그렇게 범윤 계보로 그의 당선을 도와, 충북 지사로 금의환향을 했다. 당선 후 관사에 입주하지 않고 인수위 때부터 괴산 자택에서 출근했다. 전임 지사의 아파트 관사는 처분했다. 2022년 7월 1일, 민선 8기로 취임했다.

“충북을 새롭게, 도민을 신나게” 캐치프레이즈 그대로 단디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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