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준이는 왜 학교에 화염병을 던졌을까?
연쇄방화로 수감된 다문화 청소년 현준 “지독하게 차별하는 세상 원망”
지구촌학교의 작은 동물원에 새 식구가 왔습니다. 검은 귀를 쫑긋거리는 바둑무늬 토끼입니다. 사랑하는 주인을 잃은 탓인지 웅크리고 있습니다. 수감된 현준이(가명) 또한 웅크리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열일곱 살 현준이는 방화로 구속된 다문화 청소년입니다.
현준이를 접견하기 위해 성동구치소를 찾아갔습니다. 강제 연행되는 이주노동자를 보호하려다 구속 수감되었던 곳입니다. 16년이 흘러간 뒤에 다시금 그 자리에 서니 감회가 새로웠습니다.
제가 서 있던 자리엔 연쇄 방화범이 된 러시아 다문화 청소년이 서 있습니다.
부모 사랑을 받지 못한 탓인지 체구가 아주 왜소했습니다. 수의(囚衣)를 입은 현준이는 토끼처럼 겁먹은 표정이었습니다. 토끼도 할아버지도 걱정 말라고 했더니 고개만 끄덕였습니다.
현준이는 왜 다녔던 학교에 화염병을 던졌을까요? 현준이는 왜 동네 주택가 곳곳에 불을 질렀을까요?
현준이 아빠는 한국 사람이고 엄마는 러시아 사람입니다. 모스크바 유학 도중에 만난 여인과 사랑에 빠진 것입니다. 공산당 간부의 딸이었던 엄마 또한 아빠를 사랑했습니다. 그래서 눈빛이 푸르른 연년생 두 아들을 낳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국경을 초월한 사랑에도 큰 문제가 끼어들었습니다. 체제와 문화, 관습의 차이로 인한 갈등의 골이 깊어지면서 여인은 끝내 남편과 두 아들까지 둔 채 떠나고 말았습니다.
엄마를 잃은 두 살과 한 살짜리 아이는 친할머니 품에 안겨 서울에 왔습니다. 하지만 아내를 찾기 위해 모스크바에 남았던 아빠는 의문의 죽음을 당했습니다. 두 아이는 졸지에 부모 없이 자라게 됐습니다. 그쯤에서 불행이 멈췄으면 좋으련만 엄마에게 버림받은 사실과 아빠의 의문사를 알게 된 현준이는 우울증을 앓기 시작했습니다. 또래들은 그런 친구를 러시아 튀기라고 놀리며 때리고 따돌렸습니다.
외톨이가 된 아이는 중학교 1학년 때 자퇴한 뒤에 가출까지 했습니다. 할아버지 사업은 부도가 났고 손자를 찾아 나섰던 할머니는 교통사고로 돌아가셨습니다. 어머니와 같은 존재였던 할머니가 자신 때문에 돌아가셨다는 심한 죄책감. 지독하게 차별하는 세상을 원망하며 화염병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다니던 학교, 차별했던 학교에 화염병을 던졌습니다.
러시아 엄마 떠나고 한국인 아빠 모스크바서 의문사?
혼혈아라는 이유로 학교와 사회로부터 따돌림을 당한 다문화 청소년! 방화범으로 붙잡힌 현준이가 경찰에게 이렇게 진술을 하고 있습니다. “불을 보면서 쾌감을 느꼈고 즐거웠습니다.”
누가 이 아이에게 화염병을 만들고 던지게 했을까요? 단일민족 깃발을 나부끼며 차별을 자행한 우리가 아닐까요? 누가 이 아이에게 돌을 던질 수 있을까요? 이 아이가 이렇게 된 것에 속죄하는 심정으로 편지를 썼습니다.
“그동안 얼마나 외롭고 힘들었니. 그 아픔 때문에 방황하고 가출하고, 그래서 사고를 친 것을 생각하면 나도 가슴이 아프다. 그래서 너에게 사과하고 싶다. 그리고 한 가지 부탁을 할게. 이제부터 현준이는 혼자가 아니란다. 이것만은 분명히 새겨주었으면 좋겠다. 하나님이 너를 지키시고 사랑하시고 너를 치료하시며 낫게 하실 것이다. 분명한 것은 현준이는 지금의 고난을 이겨낼 것이고 그래서 사랑받는 한 사람으로서 축복받는 인생을 살게 될 것이라고 나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리고 5월엔 현준이 할아버지와 함께 현준이 동생을 면회하러 갔습니다. 동생은 형보다 먼저 구속이 되었는데 그 이유는 형과 비슷합니다. 그 동생은 왜소한 형과 달리 유럽의 귀족처럼 잘생긴 훈남입니다. 형이 당하기만 했다면 동생은 차별과 왕따에 주먹으로 대응했습니다.
지난 8일 열린 현준이 재판에서 현준이 할아버지는 “손자를 제 품에 보내 달라!”고 눈물로 호소했습니다. 하지만 판사님은 사회복귀에 대한 우려를 표시했습니다. 화재의 위험성과 피해자에 대한 합의가 없던 점을 지적했습니다. 서울가정법원에 소년범으로 송치하면서 정신감정 의뢰를 지시했습니다.
현준이에겐 할아버지가 유일한 보호자인데 건강이 심각한 상황입니다. 뇌경색과 동맥경화가 심각하고 손발이 떨리는 증세마저 보이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희 병원에서 할아버지의 건강을 꼼꼼하게 챙기기 시작했습니다. 또한 현준이의 석방을 위한 탄원서를 썼습니다. 현준이를 보살피고 싶다고!
“다문화가정에서 출생한 ‘오바마’는 흑인에 대한 차별과 정체성 혼란을 겪으면서 술과 마약에 손댔던 위험한 청소년이었습니다. 그런데 미국 대통령이 됐습니다. 우리 사회가 정군의 손을 잡아준다면 정군 또한 위험한 청소년에서 희망의 재목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가능한대로 제가 정군 형제를 책임지고 보살피겠습니다. 사랑의 힘을 믿는 저에게 정군을 맡겨주시기를 간청하면서 재판장님의 선처를 통해서 사랑의 위대한 능력이 증거되기를 간구합니다.”
눈물이 납니다. 똑같은 DNA를 가지고 태어났는데 피부색이 다르다고
그토록 버림받고 따돌림 받은 아이들의 고통스런 지난날들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