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묵상] 존재감 입증의 유혹···”나? 이런 사람이야”

” ‘좋아요’와 댓글의 숫자, 구독자와 팔로워수, 조회수 이런 것들은 이 시대 가장 중요한 숫자가 되어가고 있습니다.(중략) 다윗도 그게 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드러내야 하는 자리에서 ‘나 이런 사람이야’라는 것을 말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러다가 크게 한 번 혼이 나고서야 정신을 차립니다.”


사무엘하 24장

“이에 왕이 그 곁에 있는 군사령관 요압에게 이르되 너는 이스라엘 모든 지파 가운데로 다니며 이제 단에서부터 브엘세바까지 인구를 조사하여 백성의 수를 내게 보고하라 하니“(삼하 24:2)

다윗이 대대적인 인구 센서스를 실시합니다. 나라 전역의 가가호호를 직접 다니며 파악하는 방식의 전수조사였습니다.

현재 우리나라 같은 경우에는 전수조사가 아닌 표본조사를 합니다. 전수조사보다 간소화된 표본조사를 하는데도 예산이 1000억원 정도가 들어갑니다. 어쨌거나 인구 조사는 적지 않은 비용과 인력이 소모되는 국가 프로젝트인 것이 분명합니다.

다윗의 인구 조사는 약 10개월이 걸렸습니다. 중요한 것은 다윗이 상당한 비용과 시간을 투입하면서까지 왜 이 일을 진행했냐는 것입니다.

다윗은 자기가 어떤 왕인지를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일생의 업적과 성과를 증명해줄 근거가 필요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숫자를 세었습니다. 수치와 통계만큼 강력한 근거가 있을까요?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오늘날도 숫자는 개인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가장 관심을 끄는 항목입니다. ‘좋아요’와 댓글의 숫자, 구독자와 팔로워수, 조회수 이런 것들은 이 시대 가장 중요한 숫자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이것을 세어보는 일에 굉장한 관심을 쏟습니다.

나는 어떤 숫자를 왜 세고 있을까요? 그 숫자와 나 자신을 동일시 하고 있거나, 그 숫자와 그 사람을 동일시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집이 몇 평짜리인가, 차는 얼마짜리를 타나, 연봉 얼마짜리 인생인가, 전교에서 몇번째인가 하는 이런 숫자들을 가지고 나를 평가하고 또 누군가를 판단하는 근거로 삼고 있지는 않은지 질문해 봅니다.

기독교인들은 무엇을 셀까요? 성경을 몇번 읽었나, 금식을 며칠까지 해봤나, 신앙생활은 몇년이나 했나?

목회자는 무엇을 셀까요? 성도 숫자는 얼마인가, 몇 층짜리 교회 건물인가, 세례를 몇 명이나 줬나, 몇년도에 안수 받았나, 헌금은 얼마나 들어왔나.

다윗도 그게 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드러내야 하는 자리에서 ‘나 이런 사람이야’라는 것을 말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러다가 크게 한 번 혼이 나고서야 정신을 차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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