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묵상] 아버지 다윗의 속사정
사무엘하 13장
큰 오빠 암논이 이복 누이 다말을 강간합니다. 다말의 오빠였던 압살롬은 이 사실을 알고 분노가 머리 끝까지 차올랐습니다. 아버지 다윗도 이 상황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했을까요? 이 세상의 많은 아버지들은 동일한 상황에서 어떻게 반응했을까요?
“다윗 왕이 이 모든 일을 듣고 심히 노하니라”(삼하 13:21)
아버지 다윗의 반응입니다. 다윗은 분개했습니다. 당연히 화가 났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 어떻게 했을까요? 다윗은 화가 난 것으로 끝이었습니다. 아무 조치를 취하지 않습니다. 모든 일을 들었다면 다윗은 뭐라도 했어야 하는 것 아닐까요? 암논을 불러다가 혼이라도 냈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다윗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아버지가 이 일을 그냥 덮고 넘어가는 듯한 분위기가 느껴지자 압살롬은 본인이 직접 나섭니다. 손수 큰 형에게 죄값을 묻습니다. 암논은 결국 압살롬의 손에 살해 당하고 맙니다. 다윗이 뭐라도 했다면 온 집안에 피바람이 부는 것은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요?
다윗은 홀로 분노하는 것 말고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밧세바를 범한 그가 큰 아들 앞에서 떳떳할 수 있었겠습니까? 그는 암논을 꾸짖는데 결코 당당할 수 없었습니다.
죄는 그런 것입니다. 다윗은 나름대로 죄의 값을 치렀지만 그는 여전히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죄의 값은 상상 이상으로 혹독합니다. 지우고 지워도 다시 피어나는 곰팡이처럼 치르고 치러도 해결하기 어려운 것이 죄의 삯입니다.
건물에 결정적인 결함이 생겼을 때는 보수 작업이 아닌 재건축이 근본적인 해결책입니다. 마찬가지로 죄인인 우리에게는 회복이 답이라기보다 죽었다가 다시 태어나는 것이 답입니다. 회복은 일시적 임시 방편일 뿐입니다.
거듭나야만 해결되는 것이 죄의 문제입니다. 죽었다가 살나야 합니다. 새로운 피조물만이 죄로부터 자유롭습니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지신 이유입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 5: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