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묵상]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로워지다
사무엘하 6장
“여호와의 궤가 다윗 성으로 들어올 때에 사울의 딸 미갈이 창으로 내다보다가 다윗 왕이 여호와 앞에서 뛰놀며 춤추는 것을 보고 심중에 그를 업신여기니라”(삼하 6:16)
법궤가 성으로 들어올 때, 다윗은 춤을 추었습니다. 다윗이 추었던 춤은 어떤 춤이었을까요? 다윗이 왕의 품격에 맞는 춤을 추었다면 미갈이 업신여겼을까요? 아마도 춤이라고 하기에는 민망한, 격도 없고 폼도 없는 막춤을 추었을 것입니다. 너무 열심히 추느라 자기 하체가 다 드러나는 것도 몰랐습니다. 다윗은 자신이 왕이라는 사실을 잊어버려야만 출 수 있는 춤을 추었던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잊어버렸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얼마나 체면을 차리고 따지는지 모릅니다. 사람들은 체면이 구겨지는 것을 힘들어 합니다. 세상은 그렇다 치고, 교회는 어떤가요? ‘어느 교회 다니세요?’ 이렇게 물어보면 대답이 대략 두 가지입니다. 자신있게 교회 이름을 말하는 경우와 ‘그냥 동네 작은 교회 다녀요’ 라고 하는 경우입니다.
장로 제도 자체가 없는 교단도 호칭 장로라는 직분을 만들어서 장로라고 부르고 불리길 원합니다. 비슷하게 신앙생활 했던 어느 교회다니는 내 친구는 장로로 불리는데, 나는 집사로 불리면 면이 서질 않는 것이죠. 그렇게 우리가 면을 세우고 챙기는 동안 어느새 자유를 잃어버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다윗은 하나님의 임재 앞에 서자 자신이 왕이라는 사실이 하나도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직위를 잊고 호칭을 잊었습니다. 그리고는 뛰어 놀았습니다.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가 있느니라”(고후 3:17)
다윗은 누구보다 자유로웠습니다. 사람들의 평가와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웠습니다.
주 안에 있다는 것, 그리고 주 앞에 있다는 것은 있는 모습 그대로 존재할 수 있는 용기입니다. 호칭과 지위와 체면과 시선으로부터 벗어나 마음껏 춤 출 수 있는 자유입니다.
왕이라는 자신의 체면을 끝까지 세워주길 바랐던 사울 왕과 왕으로서의 체면 따위는 신경 쓰지 않았던 다윗의 가장 큰 차이가 아닐까요? 사울은 자신이 왕이었고 다윗에게 왕은 하나님 밖에 없었습니다.